[로리더] 한국인과 결혼해 우리말이 서툰 외국인 부모도 이혼 후 자녀의 양육자로 지정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한민국은 공교육 등 교육여건이 확립돼 있어 미성년 자녀가 한국어를 습득하고 연습할 기회를 충분히 보장하고 있고, 외국인 배우자의 한국어 소통능력 역시 사회생활을 하면서 본인이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면 계속 향상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이번 판결은 다문화가정의 존중 및 아동의 복리라는 차원에서 가정법원의 양육자 지정에 관해 중요한 원칙과 판단기준을 제시해 의미가 크다.

대법원에 따르면 한국 남성 A씨는 2015년 베트남 여성 B씨와 혼인해 한국에서 2명의 자녀를 낳고 살았다. 그러던 중 갈등이 지속돼 B씨가 큰 딸을 데리고 집을 나가 별거에 들어가게 됐다. 1년이 지난 후 각자 서로를 상대로 이혼청구를 했다.

B씨는 대한민국에 입국하자마자 바로 2차례에 걸친 출산을 겪어 한국어 소통능력이 부족한 편이다. B씨는 별거 직후 취직해 월 200만원 정도의 수입이 있는 상황으로 자신의 어머니 도움을 받으면서 별다른 문제없이 큰딸(이혼소송 진행 당시 만 3~4세임)을 양육하고 있다.

A씨는 자신의 명의로 된 아파트는 있으나 뚜렷한 직업이 없는 상황에서 대출금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큰딸에 대한 양육자를 자신으로 지정해 줄 것을 주장했다.

1심인 전주지방법원은 A씨와 B씨의 양측 이혼청구를 받아들였다. 아이들에 대한 친권자 및 양육자로는 A씨를 지정했다.

이에 B씨가 항소했으나, 항소심은 B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현재 B씨의 거주지 및 직장이 안정적이지 않아 아이들의 양육환경, 양육능력에 의문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B씨가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의 어머니가 아이들의 양육을 보조할 것으로 보이는데, B씨의 어머니는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아 아이들의 언어습득 및 향후 유치원, 학교생활 적응에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자 B씨가 상고했고,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청사

대법원 제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지난 9월 30일 A씨(한국 남성)와 B씨(베트남 국적 여성)가 서로 자녀들의 친권자 및 양육자를 자신으로 지정해 줄 것을 청구한 이혼사건에서, A씨를 큰딸에 대한 양육자로 지정한 원심판결을 일부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미성년 자녀의 양육자를 정할 때에는, 미성년 자녀의 성별과 연령, 그에 대한 부모의 애정과 양육의사의 유무는 물론, 양육에 필요한 경제적 능력의 유무, 부와 모가 제공하려는 양육방식의 내용과 합리성ㆍ적합성 및 상호 간의 조화 가능성, 부 또는 모와 미성년 자녀 사이의 친밀도, 미성년 자녀의 의사 등의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미성년 자녀의 성장과 복지에 가장 도움이 되고 적합한 방향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또 별거 이후 재판상 이혼에 이르기까지 상당기간 부모의 일방이 미성년 자녀, 특히 유아를 평온하게 양육해온 경우, 이러한 현재의 양육 상태에 변경을 가해 상대방을 친권자 및 양육자로 지정하는 것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양육 상태가 미성년 자녀의 건전한 성장과 복지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방해가 되고, 상대방을 친권자 및 양육자로 지정하는 것이 현재의 양육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보다 미성년 자녀의 건전한 성장과 복지에 더 도움이 된다는 점이 명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외국인 배우자의 한국어 소통능력과 양육적합성

재판부는 “대한민국 국민과 혼인을 한 후 입국해 체류자격을 취득하고 거주하다가 한국어를 습득하기 충분하지 않은 기간에 이혼에 이르게 된 외국인이 당사자인 경우, 미성년 자녀의 양육에 있어 한국어 소통능력이 부족한 외국인보다는 대한민국 국민인 상대방에게 양육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라는 추상적이고 막연한 판단으로 해당 외국인 배우자가 미성년 자녀의 양육자로 지정되기에 부적합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대한민국은 공교육이나 기타 교육여건이 확립돼 있어 미성년 자녀가 한국어를 습득하고 연습할 기회를 충분히 보장하고 있으므로, 외국인 부모의 한국어 소통능력이 미성년 자녀의 건전한 성장과 복지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오히려 가정법원은 양육자 지정에 있어 한국어 소통능력에 대한 고려가 자칫 출신 국가 등을 차별하는 의도에서 비롯되거나 차별하는 결과를 낳게 될 수 있다는 점, 외국인 부모의 모국어 및 모국문화에 대한 이해 역시 자녀의 자아 존중감 형성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 등에 대해서도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외국인 배우자의 한국어 소통능력 역시 사회생활을 해 나가면서 본인이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면 계속해 향상될 수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큰딸의 친권자 및 양육자로 원고를 지정하고 이를 전제로 양육비, 면접교섭에 관해 정한 제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원심의 판단에는 친권자 및 양육자 지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큰딸에 대한 현재의 양육 상태에 변경을 가해 원고를 친권자 및 양육자로 지정하는 것이 정당화될 만한 사정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B씨는 A씨와 별거 당시 만 2세인 큰딸을 별거 이후 사실심 변론종결 시까지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계속해 평온하게 양육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B씨의 양육 환경, 애정과 양육의사, 경제적 능력 등에 어떠한 문제가 있다거나 A씨에 비해 적합하지 못하다고 볼만한 구체적인 사정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B씨의 한국어 소통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A씨에 비해 양육자로서 부적합하다고 볼만한 주요한 사정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원심은 양육을 보조할 B씨의 어머니가 한국어 소통능력이 부족해 큰딸의 언어습득, 향후 유치원, 학교생활 적응이 우려스럽다고 하나, 막연한 추측을 넘어서 실제로 큰딸의 건전한 성장과 복지에 있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볼만한 어떠한 사정들이 있는지에 대해 납득할 만한 이유 제시가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외국인인 B씨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면서 한국어를 제대로 습득할 기회를 가졌을 것이라고는 보이지 않고, A씨로부터 교육기회를 제공받은 일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혼 소송이 진행된 시점에서 B씨의 한국어 소통능력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향상될 수 있다는 사정을 쉽게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이 판결을 통해 양육 상태의 변경을 가져오는 양육자 지정에 있어 고려되어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와 외국인 배우자의 양육적합성 판단에 있어 한국어 소통능력이 어떻게 고려되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선언함으로써, 다문화가정의 존중 및 아동의 복리라는 차원에서 가정법원의 양육자 지정에 관하여 중요한 원칙과 판단기준을 제시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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