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취업제한 제도가 퇴직 법관들에게는 유명무실한 사실상 ‘프리패스’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5년간 퇴직한 법관들 중 취업제한 규정에 따라 재취업이 제한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1일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최근 5년간(2016년 1월 ~ 2021년 8월) 퇴직자 취업심사결과>에 따르면, 5년 8개월간 행해진 36건의 취업심사에서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모두 취업이 ‘가능’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특히 소병철 의원은 “그 중에서도 7건은 삼성SDI(주), ㈜KT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대기업으로 취업이 제한되는 기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사유’가 인정된다는 이유로 취업승인이 떨어졌다”고 밝혔다.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2017년 2월 퇴직하고 한 달 뒤 한샘(주) 감사가 됐다. 부산고등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2017년 2월 퇴직하고 3월에 BNK금융지주 사외이사가 됐다. 2017년 6월 퇴직한 대법관은 2018년 3월 산한금융지주 사외이사가 됐다.

대구고등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2017년 2월 퇴직하고 2018년 11월 에어부산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이 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2020년 2월 퇴직하고 3월에 SK텔레콤 비등기임원이 됐다.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2021년 2월 퇴직하고 한 달 뒤 KT 상무가 됐다.

또 사법연수원장 출신 변호사는 2019년 2월 퇴직하고 2020년 3월 롯데하이마트 사외이사가 됐다. 서울회생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2019년 2우러 퇴직하고 2020년 3월 호반건설 사외이사가 됐다. 서울가정법원장은 2021년 2월 퇴직하고 3월에 유진투자증권 사외이사가 됐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2018년 2월 퇴직하고 2020년 12월 삼성SDI 전무(법무팀장)가 됐다. 서울고법 판사 출신 변호사는 2020년 2월 퇴사하고 12월에 삼성디스플레이 전무가 됐다. 서울고등법원 판사 출신 변호사는 2017년 2월 퇴직하고 2019년 11월 삼성전자 전무가 됐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국가나 지자체의 정무직 공무원, 법관 및 검사 등과 각 기관별 규칙에서 추가로 정한 공직자(취업심사대상자)는 퇴직일로부터 3년간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기관(취업심사대상기관)에는 취업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취업심사대상자의 업무와 취업심사대상기관과의 밀접한 관련성이 없다는 확인을 받거나 취업승인을 받은 때에는 예외적으로 취업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상세한 기준은 각 기관별로 정한 규칙에 따른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대법원은 ‘공직자윤리법의 시행에 관한 대법원규칙’으로 법관 외에도 5급 공무원과 5급 상당의 임기제공무원을 취업심사대상자로 정하고 있으며, 자본금이 10억원 이상이고 연간 외형거래액이 100억원 이상인 영리 목적의 사기업 등 일정 규모 이상의 기관에 취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취업심사대상기관에 해당된다 하더라도 ‘그 전문성이 증명되는 경우로서 취업 후 영향력 행사 가능성이 적은 경우’ 등 특별한 사유가 인정되면 취업이 가능하다.

검사장 출신인 소병철 의원은 “최근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로부터 거액의 고문료를 받아 논란이 되고 있는 권순일 전 대법관의 경우엔 화천대유가 대법원 규칙에서 정하고 있는 취업심사대상기관에 해당하지 않아 이러한 취업심사마저 받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는 통로로서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마스터 키’가 돼 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소병철 의원은 “퇴직공직자의 취업제한제도는 퇴직공직자와 업체 간의 유착관계를 차단하고 퇴직 전 근무했던 기관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 공무집행의 공정성을 해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라며 “그런데 이렇듯 원칙과 예외가 전도되어 운용되고 있다 보니, 취업제한제도의 무용론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소병철 국회의원은 “특히 법관의 경우는 법을 적용하고 심판하는 공직자로서 다른 공직자보다도 더 엄격한 법과 윤리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취업심사제도의 허점을 이런 식으로 남용하고 있다는 것은 입법의 취지를 몰각시키고 공직자로서의 권위도 스스로 저버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소병철 의원은 “현재 취업제한 관련 규정은 엉성한 그물처럼 이리저리 다 빠져나가게 돼 있어 유명무실한 제도가 됐다”며, “규칙 개정을 통해 취업심사대상기관의 범위를 더 확대하고, 취업을 승인하는 예외적인 사유도 더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소병철 의원은 끝으로 “대법원이 더 엄격한 잣대를 스스로에게 적용함으로써 법관에 대한 국민적 신뢰와 공직윤리를 바로 세우고 다른 공직사회의 모범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대전지검장, 대구고검장, 법무연수원장 등을 지내고 21대 국회에 입성한 소병철 의원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활동하고 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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