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고속도로에서 자동차의 고장 등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동차 운전자는 고속도로 갓길 통행을 금지한 도로교통법 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갓길(도로법 길어깨)이란 도로를 보호하고 비상시에 이용하기 위해 차도에 접속해 설치하는 도로의 부분을 말한다.

A씨는 2018년 4월 승용차를 운전해 고속도로 갓길로 통행하다가 교통경찰관에게 단속돼 범칙금 6만원의 납부통고서를 받았다. 또 A씨는 “정당한 사유 없이 고속도로 갓길로 약 500m를 통행했다’는 도로교통법 위반 범죄사실로 벌금 2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이에 A씨는 정식재판을 청구해 전주지방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자, 2020년 2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도로교통법 제60조(갓길 통행금지 등)는 “자동차의 운전자는 고속도로 등에서 자동차의 고장 등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행정안전부령으로 정하는 차로에 따라 통행하여야 하며, 갓길(도로법에 따른 길어깨)로 통행해서는 안 된다”, “다만, 긴급자동차와 고속도로 등의 보수ㆍ유지 등의 작업을 하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돼 있다.

또 벌칙 조항으로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科料)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정문

헌법재판소는 지난 8월 31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도로교통법 제60조 제1항 본문 중 ‘자동차의 운전자는 고속도로 등에서 자동차의 고장 등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갓길로 통행해서는 안 된다’는 부분과 처벌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선고했다.

‘부득이한 사정’ 부분의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 위배 여부에 대해 헌재는 “고속도로 등은 자동차들이 일반도로에 비해 고속으로 주행해 중대한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긴급자동차 등이 위험 발생 지역에 접근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기 때문에, 고속도로 등에서 비상시에 신속히 갓길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제거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할 수 있게 하려면 평상시에는 이에 대한 통행을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에 금지조항은 자동차의 운전자가 고속도로 등에서 갓길로 통행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예외적으로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헌재는 “‘부득이’의 사전적 의미는 ‘마지못하여 하는 수 없이’로, 금지조항은 부득이한 사정의 하나로 ‘자동차의 고장’을 예시하고 있다”며 “고속도로 등에서 자동차가 고장이 나는 경우, 긴급하게 차로로부터 대피하지 않으면 고속으로 주행하는 다른 자동차들과 연쇄적으로 추돌해 인명과 재산에 상당한 피해를 야기하는 대형 교통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헌재는 “이에 자동차의 고장은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로서 갓길 통행이 허용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헌재는 “자동차가 고속도로 등을 통행하는 중에는 다양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법률에 구체적이고 일의적인 기준이 제시될 경우 갓길 통행이 불가피한 예외적인 사정이 포섭되지 않는 등으로 인해 오히려 비상상황에서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금지조항은 이러한 점을 감안해 갓길 통행이 허용되는 예외적인 경우를 규정하면서 다양한 상황을 포섭할 수 있는 ‘부득이한 사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헌재는 “갓길의 설치 이유와 갓길 통행을 허용하는 도로교통법 조항, 그리고 ‘부득이’의 사전적 의미를 더해 보면, 금지조항이 규정한 ‘부득이한 사정’이란 사회통념상 차로로의 통행을 기대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을 의미한다고 해석된다”며 “그렇다면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수범자는 금지조항이 규정한 부득이한 사정이 어떠한 것인지 충분히 알 수 있고, 법관의 보충적인 해석을 통해 그 의미가 확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

헌재는 “그러므로 이 사건 금지조항 중 ‘부득이한 사정’ 부분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처벌조항의 책임과 형벌 사이의 비례원칙 위배 여부에 대해 헌재는 “고속도로 등은 자동차들이 일반도로에 비해 고속으로 주행해 중대한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긴급자동차 등이 위험 발생 지역에 접근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어 비상시에 이용하기 위해 갓길이 설치된 것이므로, 갓길이 본래의 설치목적에 따라 이용될 수 있도록 갓길 통행 금지의무의 준수를 담보할 필요성이 높다”고 말했다.

헌재는 “따라서 행정질서벌의 부과만으로는 갓길 통행을 충분히 억제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형벌이라는 수단을 선택한 입법자의 판단이 명백하게 잘못됐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헌법재판소는 “처벌조항은 법정형을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로 선택적으로 규정하면서 그 하한에 제한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처벌의 정도가 중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나아가 처벌조항으로 규율되는 행위는 도로교통법 제162조가 규정한 ‘범칙행위’에 해당하므로 같은 법에서 정한 ‘범칙행위의 처리에 관한 특례’를 적용받게 된다”고 말했다.

헌재는 “따라서 갓길 통행 금지의무를 위반한 자에게는 그의 선택에 따라 형사적 제재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고 전과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절차가 추가적으로 보장돼 있다”며 “그러므로 이 사건 처벌조항은 책임과 형벌 사이의 비례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저작권자 © 로리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