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고위험 펀드상품인 DLF 불완전 판매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문책경고’에 불복해 소송을 냈는데, 법원은 손태승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번 재판 과정에서 우리은행 상품 판매 문제점이 드러났다. 우리은행 상품선정위원회에서 벌어진 ‘위원 투표 결과 조작’, ‘평가표 위조’ 행태 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재판부로부터 따끔한 질타를 받았다.

우리은행은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고 위험관리기능과 내부통제장치로 상품선정위원회를 만들었으나, 실제로도 위원회에서 각종 왜곡 행태가 저질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은행 본점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우리은행이 2019년 판매한 사모펀드인 ‘독일국채금리연계 DLF’의 손실률이 사회적으로 문제되자, ‘DLF 상품선정 및 판매 적정성 등’에 관한 부분검사를 했다.

금감원은 2020년 3월 우리은행에 “DLF 불완전판매,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 사모펀드 투자광고 규정 위반 등의 위법ㆍ부당행위가 있었다”는 내용의 검사결과를 통보했다.

금융감독원장은 그러면서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에게 임직원들의 위반행위들에 대한 감독자로서 “금융관련 법규를 위반하고 금융질서를 심히 문란하게 했다”는 이유로 ‘문책경고’ 처분을 했다. 동시에 우리은행에 기관경고, 과태료 197억원 부과 등의 처분을 했다.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

문책경고 이상 중징계를 받으면 연임과 금융권 취업이 제한된다. 이에 손태승 회장은 문책경고 취소 청구 행정소송을 냈다.

손태승 회장은 “설령 처분사유가 일부 인정되더라도, 우리은행의 DLF 판매 관련 고객 피해 회복 노력, 내부통제 혁신 노력 등을 고려하면 징계처분이 달성하려는 공익이 추상적이고 불분명한 반면, 그로 인해 입는 취업제한 등 신분상 불이익과 우리은행의 경영상 불이익이 현저히 커 비례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손태승 회장은 “금융감독원장은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를 불이행한 다른 금융기관에 대하여는 경영유의, 개선조치만을 해온 것과 달리, 우리은행에만 원고들 등 임직원에 대해 중한 제재처분을 했으므로 평등원칙에도 반한다”며 반발했다.

금융감독원은 “제재기준에 따라 적정한 범위 내에서 처분을 했고, 원고들의 내부통제기준 마련 관련 업무 불이행에 기인한 DLF 불완전판매로 인해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사모펀드 시장에 대한 신뢰가 크게 저하된 점까지 고려하면, 원고들에게 어떠한 감경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맞섰다.

서울행정법원

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 제11부(재판장 강우찬 부장판사)는 지난 8월 27일 “금융감독원장은 2020년 3월 5일 원고 손태승 우리은행금융 회장에 대한 문책경고 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하는 등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금융구제법은 내부통제에서 준수해야 할 기본적인 의무사항과 내부통제를 확보하고 이행할 최종적인 책임을 부담하는 내부통제의 주체와 이를 구체적으로 이행할 절차 및 위반에 대한 제재조치를 매우 엄격하고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특히, 내부통제기분을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규정할수록 대규모로 업무가 분화돼 있는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나 이사들은 민사법적으로 이사들에게 부여돼 있는 감시의무 이행을 다한 것으로 보게 될 여지가 커져, 적어도 감시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주주대표소송 등에 따라 손해배상책임을 추급당할 가능성은 줄어들게 된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그러나 금융회사가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면서 최고경영자나 고위 임원들에 대한 제반 정보의 통지절차를 제대로 구비하지 않을 경우, 내부통제기준은 이미 마련했으니 감시의무는 다했으되 최고경영자나 이사들은 몰랐다는 이유를 들어 감시의무와 관련한 법적 책임을 면하게 해주는 방편으로 전락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내부통제기준에 포함돼야 할 내용 중 이사와 최고경영자에 대한 각종 정보의 유통과 통지 제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이는 바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지위에 있는 회사 경영진의 법적 책임을 명화하게 하는 초석이 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부에 따르면 2017년 8월 이후 신규 출시한 우리은행 해외금리연계 DLF 상품 360개 중 357개(99.2%)가 상품선정위원회나 공평협(공정가액평가실무협의회) 심의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2019년 이 사건 DLF에 대한 최초 상품선정절차에서 상품선정심의회 의결은 서면으로 진행됐는데, 위원 1명이 ‘반대’ 평가표를 제출하자, 상품출시 담당직원은 임의로 반대 위원을 친분 있는 다른 직원으로 교체한 뒤 새로 ‘찬성’ 평가표를 징구하는 방식으로 투표 결과를 조작했다.

또한 상품선정위원회의 리스크총괄부 소속 위원 2명이 평가표를 제출하지 않자 상품출시 담당직원은 ‘펀드상품 선정위원회 결의록’에 해당 위원 2명의 찬성 여부란에 ‘공평협 통과결과’로 갈음한다는 취지를 기재하고, 위 2명의 의견을 ‘찬성’으로 처리했다.

그 결과 우리은행 DLF는 ‘위원회 9명 중 9명 참석, 찬성 100%’로 처리돼 상품선정위원회를 통과함으로써 출시됐다. 이 밖에도 비슷하게 처리해 상품이 출시되기도 했다.

우리은행 집합투자상품위탁판매업무지침(펀드 지침)에 따르면 상품선정위원회 구성은 WM추진부장, WM추진부 2명, 개인영업전략부 1명, 리스크총괄부 2명, 트레이딩부 1명, 본점영업부 1명, 금융소비자보호센터 1명 등 9명이다. 또 “위원회 인원 중 .9/8 이상 출석과 출석인원 70% 이상 찬성 시 가결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우리은행 본점

◆ 우리은행 상품선정위원회…투표 결과 조작, 평가표 위조 등

재판부는 우리은행의 상품선정위원회의 흠결을 조목조목 꼬집었다.

재판부는 “우리은행의 내부통제기준은 새로운 금융상품 선정 및 판매 과정에서 ‘금융소비자 보호 및 시장질서 유지 등을 위해 준수해야 할 업무절차’의 중책이 되는 핵심적 사항을 흠결해, 실질적으로는 위 법정사항을 흠결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우리은행 스스로 상품선정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든 이상 최소한 조직내부에서 합의제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주체는 의결 결과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됐는지 여부, 즉 ‘개별 구성원 개개인 자신을 포함하는 위원회의 최종적인 의사’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래야 자신을 포함한 위원들의 의사가 왜곡 없이 투명하게 전달 반영돼 사전에 마련된 표결 기준에 따라 공정한 결론에 도달했는지 확인할 수 있고, 그 결과에 대해 의사결정에 참여한 위원으로서 걸맞는 책임이 부여될 수 있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그러나 우리은행 펀드 지침은 상품선정위원회의 위원 구성, 소집절차, 상품 선정절차 및 방법, 선정평가 방법 등 위원회의 운용에 관해 규정하면서, 위원회 의사결정 절차의 핵임인 심의 및 의결에 관해서는 정족수 외에 아무런 절차를 규정하지 않았고, 심지어 심의 및 의결에 참여한 상품선정위원회들에게 다른 위원들의 의견이나 최종적인 의결 결과를 전달, 통지하는 절차조차도 마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분화된 조직 내부의 최종 의사결정이 무엇인지조차도 확인할 길이 없게 함으로써 내부통제절차의 기본이 되는 정보전달 및 정보유통의 전제조건 자체를 완전히 형해화시킨 것일 뿐 아니라, 전달될 정보 자체가 무엇인지조차 특정할 수 없게 마든 것이므로, 이는 결국 실질적으로 정보유통에 관한 최소한의 핵심적 사항마저 흠결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봤다.

특히 재판부는 우리은행 상품선정위원회의 ‘투표 결과 조작’, ‘평가표 위조’ 행태 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재판부는 “실제로 우리은행이 상품선정절차와 관련해 정보유통의 핵심적 절차 사항을 흠결한 결과, 상품선정위원회에 참여한 위원들은 의사결정(심의와 의결 모두 서면)에서 자행된 ‘임의 위원 교체를 통한 투표 결과 조작’, ‘불출석 위원에 대한 출석 및 찬성 의견 의제’, ‘평가표 위조’ 등으로 인해 위원회의 의사결정이 왜곡된 사실을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결국 상품선정위원회는 상품개발 추진부서의 과도한 영업이익 추구를 통한 과도한 위험 인수(소비자에 대한 위험 전가)를 견제하는 내부통제시스템으로서 전혀 기능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우리은행 이 사건 DLF는 원금 100% 손실이 가능해 위험등급 1등급의 매우 높은 위험 상품이다.

재판부는 “위와 같은 반복된 투표 조작 등은 상품선정위원회에게조차 최종 의결 결과를 통지하는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았기에 비로소 가능했던 것으로, 이는 단순히 상품 출시 담당직원 개인의 일탈 문제가 아니다, 우리은행 상품선정위원회 내부 정보유통의 핵심적인 사항마저도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위원회’라는 형식과 달리 합의제 의사결정기구로서 기능할 기본적인 전제조건조차 마련하지 않은데 기인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이런 가운데 우리은행 경영진은 시중은행 중 펀드 판매 1위 달성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WM그룹의 사업계획 하에 DLF 등 펀드 상품의 출시ㆍ판매를 전사적으로 독려했으며, 영업점 성과평가기준에서도 상품 판매 배점은 높게 부여하는 반면 고객수익률 및 소비자보호 배점은 낮게 부여하는 등 영업이익 극대화 전략을 강하게 추진해왔다”고 지판했다.

재판부는 “우리은행 경영진의 과도한 이익 추구에 제동을 걸어주고,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 갖추어야 할 견제시스템으로서의 상품선정절차를 마련함에 있어서는 그러한 견제적 기능과 관련한 정보가 해당 상품 선정 및 판매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의사 결정과정에 반영되도록 하기 위해 ‘최소한 갖추어야 할 정보유통과정이나 절차’를 반드시 포함시키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행정법원

◆ 재판부 “금감원은 우리은행 내부통제 실패 중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 사실만을 처분사유로 삼았어야”

재판부는 이렇게 우리은행의 행태를 질타했으나, 결론에서는 손태승 회장과 우리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피고가 문책경고 처분의 사유로 삼은 5개 위반사실 중 세 번째를 제외한 처분사유는 모두 인정되지 않고, 세 번째 위반사실만으로 원고에 대해 향후 3년간 임원 취임이 제한되는 문책사항, 감봉 등 중징계를 부과할 만큼 원고들이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재량권의 일탈ㆍ남용의 위법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금융감독원의 주장과 같이 우리은행 내부통제 실패로 인해 DLF의 불완전판매라는 금융사고와 그로 인한 대량의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현행 금융사지배구조법령 아래에서는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이 아닌 ‘내부통제기준 준수의무’ 위반으로 금융회사나 임직원에 대해 제제조치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금융감독원은 이 사건 처분을 함에 있어 우리은행 내부통제 실패 중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 사실만을 처분사유로 삼았어야 하나, 이 사건 DLF 불완전판매로 인한 대량 피해가 발생하자 사후적으로 내부통제 마련 시점에는 사전 예측하기 어려웠을 다양한 형태의 내부통제기준 위반ㆍ남용 행위 등을 들어 이를 방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실상 내부통제기준 자체의 ‘흠결’이 아닌 ‘내용상의 미흡’ 또는 ‘운영상 문제점’을 위반사실 처분사유로 잘못 구성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문책경고 처분은 금융감독원이 적용될 법리를 오해해 근거법령이 허용하는 제재사유의 범위를 벗어나게끔 처분사유를 구성한 탓에 대부분의 처분사유가 인정되지 않아 적법한 재량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금융감독원으로서는 적법하게 처분사유를 구성해 원고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제재를 가할 수 있을 뿐”이라며 “이 사건 처분은 결과적으로 유지될 수 없어 위법하므로 취소돼야 한다”고 밝혔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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