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내의 다양한 목소리를 원천 차단하고 제왕적 대법원장의 의사에 반하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독재적 발상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민주주의와 인권, 정의의 최후의 보루임을 자처하는 사법부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 사안이다. 이 과정에서 법원행정처가 시도했던 방법 또한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라 자부하는 판사들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치졸한 것이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판사사찰과 같은 법관 블랙리스트 등 사법행정권 남용 즉 사법농단 의혹 사태에 대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혹독한 판단이다.

민변 김호철 회장이 15일 대법원 동문 앞에서 사법농단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민변)
민변 김호철 회장이 15일 대법원 동문 앞에서 사법농단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민변)

민변(회장 김호철)은 지난 5월 25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의 조사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즉각 “사법농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T/F”(사법농단 T/F)를 결성하고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다각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 왔다.

‘민변 사법농단 T/F(단장 천낙붕)’에서는 특별조사단의 조사보고서 이외에도, 진상조사위원회 및 추가조사위원회의 각 조사보고서, 언론을 통해 공개된 98개의 법원행정처 문건 등을 법적인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현 단계에서 진상규명을 위해 요청된다고 판단했다.

이런 문제의식 하에, 민변 사법농단 T/F는 수회에 걸쳐 “사법농단 이슈페이퍼(ISSUE PAPER)”를 발간하기로 했다. 지난 6월 26일 발간한 첫 번째 이슈페이퍼로 ‘상고법원을 매개로 한 재판거래, 재판개입’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담았다.

‘민변 사법농단 T/F(단장 천낙붕)’가 6월 28일 두 번째 발간한 “사법농단 이슈페이퍼”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의 동향 파악 및 학술대회 개입과 관련한 사법행정권 남용 문건을 분석한 결과를 담았다.

두 번째 이슈페이퍼에서 민변은 “2017년 2월 이탄희 판사가 법원행정처로 발령 받은 후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부터 받은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고 사직서를 제출함으로써 시작된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1차 진상조사위원회, 2차 추가조사위원회, 3차 특별조사단의 조사까지 1년 2개월 동안 이어졌다”며 “그 결과 1, 2차 조사위원회의 발표와 달리 법원행정처가 특정 판사들과 특정 연구회, 법관들의 익명게시판 등을 조직적으로 감시하고 사찰해 왔음이 드러났고, 그 과정에서 재판을 정치권과의 거래 대상으로 삼은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고 서두를 열었다.

민변은 특별조사단의 3차보고서를 중심으로 법원행정처가 행정권을 남용해 특정 판사와 국제인권법연구회, 법관들의 자유로운 익명 게시판을 사찰하고 사법행정위원회와 판사회의 의장 선거에 개입한 사건들에 대해 분석했다.

민변에 따르면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은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소모임으로, 국가정보원이 경력 법관 지원자에게 세월호 사건 등 현안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다(일종의 사상 검증)는 언론 보도에도 침묵하는 법원 분위기에 문제의식을 느낀 판사들이 모인 것을 계기로 2015년 7월 만들어졌다.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이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사모는 처음부터 현안인 상고법원이나 사법 관료화 등 사법제도를 논의하는 장으로서의 역할을 염두에 뒀다고 한다.

민변은 “인사모가 결성되자 박병대 법원행정처 처장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이던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게 인사모가 ‘우리법연구회’와 비슷한 모임으로 보이니 잘 챙겨보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규진은 2015년 8월 19일 이들이 “법관의 업무 부담 개선, 상고법원 설치 반대 등 대법원과 반대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대법원과 다른 의견의 외부 표출 우려”를 인사모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국제인권법연구회의 방향’ 문건을 작성해 박병대 처장에게 보고했고, 주례회의에서 논의했다.

인사모는 바람직한 합의부 조직과 운용, 사실심 충실화, 판사의 사법행정 참여 방안, 사법행정 참여 판사의 대표성 확보 등을 위한 판사회의 실질화 방안, 법관 인사 이원화와 고법부장 제도 방향 등 다양한 사법행정의 이슈들을 논의했는데 이런 점 때문에 계속 법원행정처의 주시 대상이 됐다.

민변에 따르면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은 대응 방안 검토를 지시했고, 김OO 인사총괄심의관은 2016년 3월 10일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 방안’을 보고하고, 보름 뒤인 3월 15일 박상언 기획조정심의관은 인권법연구회를 자연적으로 와해시키는 방안으로 다른 판사 모임과 중복 가입을 금지하는 중복가입해소 조치를 내용으로 ‘로드맵’을 만들어 임종헌 차장, 이민걸 기조실장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조사보고서를 통해 드러난 사실을 보면 인사모에 대한 사법행정권 남용의 처사는 인사모 설립 당시인 2015년 7월 예비모임부터 2015년 9월 정식 첫 모임까지 집중적으로 동향 파악이 이루어졌다.

특히 2015년 8월부터는 법원행정처 처장 주례회의, 실장회의에서 인사모 관련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검토하기 시작했으며 윤리감사관실에 인사모 개설에 대한 윤리규정 위반 여부의 검토를 지시했다.

또한 인사모가 상고법원 등 대법원 정책에 반대되는 입장을 외부에 표명할 것을 우려해 국제인권법연구회 내 소모임에서 인사 등 사법제도를 논의하는 것은 부적절하므로 인사모 커뮤니티 외 활동을 권유한다는 취지로 행정처의 의사를 전달했다.

2016년 3월는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이 김OO 인사총괄심의관에게는 인권법연구회에 대한 대응방안을, 기조실에는 전문분야연구회의 구조 개편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해 각 보고문서가 작성됐다.

인사모의 자연소멸을 목표로, 인사모 등 핵심 회원에게 선발성 인사, 해외연수 등에서 불이익을 부과하는 방안 등 구체적인 로드맵이 검토됐다.

민변은 “2016년 3월 24일에는 인사모에 대한 대응방안 중 최우선 방안으로 ‘중복가입 해소 조치’를 고려, 세부 시행방안까지 검토를 마쳤으나, 그 무렵 출범한 사법행정위원회 활동 및 법관 사회 반발 등을 감안해 정책결정을 위한 더 이상의 절차에 나아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민변 “사법농단 이슈페이퍼”에서는 ‘사법농단의 실체’에 대해 이렇게 서술했다.

민변에 따르면 2016년 12월 국제인권법연구회(이하 연구회) 내 소모임인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이 주축이 돼 연세대 법학연구원과 법관 인사를 주제로 한 공동학술대회 개최를 논의하자, 이를 뒤늦게 알게 된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2017년 1월 3일 실장회의에서 연구회의 공동학술대회 추진 경과와 대응방안에 대해 메모를 중심으로 간략히 1차 보고했다.

이후 이규진 상임위원은 ‘인사모 관련 공동학술대회’(1), ‘인사모 관련 공동학술대회(2)’라는 문건을 작성해 2017년 1월 13일 법원행정처장 주례회의에서 대책으로 보고했다.

2017년 1월 23일 국제인권법연구회 운영위원회에서 공동학술대회를 3월 25일 개최하기로 최종 결정하자 이규진 상임위원은 1월 24일 연구회 기획팀장인 이탄희 판사에게 ‘이탄희 판사 등 연구회 회원 2명의 심의관 추천’을 거론하며 공동학술대회가 법원 내부 행사로 치러지도록 하고 특히 언론에 보도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공동학술대회 개최가 확정된 이후에는 기조실에서 ‘공동학술대회 대응을 중심으로 하는 단기 방안’과 ‘인사모 해소 유도 및 제재를 중심으로 하는 중기 방안’으로 나뉘어 논의됐고, 중기 대응 방안의 일환으로 중복 가입해소 조치, 연구회 예산 삭감 등 지원 제한, 인사모 고립 내지 견제 방안 등이 논의됐다.

그 중 중복 가입 해소 조치는, 2016년 3월 인사모를 견제하기 위한 유력한 방안으로 법원행정처에서 이미 검토가 끝난 방안이었으나 법관 사회의 반발 등을 고려해 시행이 보류되고 있던 중이었다.

법원행정처는 연구회가 공동학술대회 개최를 확정하자 2017년 2월 10일 법원행정처 처장 주례회의에서 그 시행을 결정했다. 이후 2017년 2월 13일 전산정보국장 명의로 코트넷에 중복가입해소 조치를 공지, 실행했다.

민변은 “이규진은 당시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 법원행정처의 업무와 무관한 직위에 있으면서 국제인권법연구회 사안뿐만 아니라 조사보고서에서 드러난 여러 사건에 개입했다”며 “이러한 과정에서 정식 보직 명칭도 아닌 양형실장이라는 명칭을 쓰며 법원행정처 회의에 참여했다”고 지적했다.

또 “공동학술대회와 관련해서는 인사모 대표, 이OO 부장판사 등에게 공동학술대회의 부적절성을 전달하고, 연구회 기획팀장인 이탄희 판사에게, 이탄희 판사 등 연구회 회원 2명의 심의관 추천을 거론하며 공동학술대회가 법원 내부 행사로 치러지도록 하고 특히 언론에 보도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뜻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민변은 “이러한 이규진의 행위는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서의 지위에서는 있을 수 없는 행태인 바, 이규진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시 내지는 묵인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 윗선을 밝혀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법원행정처의 중복가입 해소 조치

민변은 “3번의 조사보고서에서도 지적했듯이 인사모를 와해시키기 위해 중복가입해소 조치를 시행한 것은 명백한 사법행정권 남용에 해당하고, 나아가 형법상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즉, “중복가입 해소 조치는 인사모라는 연구회 내 소모임을 법원행정처가 와해시키려는 단일 목적으로 방안을 검토ㆍ시행했으며, 그 과정에서 전산정보국장의 명의로 공지하는 것이 행정처의 개입을 숨길 수 있는 방법이라는 인식을 명확히 했다”고 전했다.

민변은 “조사보고서에 첨부된 1~16번, 18번, 180~182번, 277~278번, 280~285번, 312번, 314~317번, 334~340번, 398번 파일이 모두 이 사안과 관련이 있는 문건으로 약 1년에 걸쳐 42개의 문건이 작성되고 보고되었는바, 이 문건들을 작성한 이규진, 박OO 심의관 외 성명불상자와 이를 보고 받은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 박병대 법원행정처장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인사모 구성원들의 학문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침해했으므로 직권남용죄에 해당함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민변 회원 변호사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민변 회원 변호사

민변은 “특별조사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복 가입 해소 조치와 관련해 당시 법원행정처장이 대법원장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태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므로 어느 시점에 알게 되었는지, 보고를 어느 단계부터 받았는지 등을 확인해 개입의 정도를 밝혀야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이 사안은 누가 봐도 사법행정권의 남용 내지는 직권남용 사안임이 명백해 하급자 선에서 책임의 고리를 끊기 위해 경고를 하는 모양새만 취했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경고를 하게 된 배경, 단순 구두 경고에 그친 것인지 경고로 인해 실제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는지 또한 조사가 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사법농단에 대한 평가에서 민변은 “표현의 차이는 있으나 1, 2, 3차 보고서 모두 이 사안에 대해 사법행정권의 남용으로 판단했다. 법관들로 구성된 전문분야 연구회에서 법관의 인사제도에 대해 학술대회를 개최하려 했다는 이유로 대회를 축소, 무산시키려하고 여의치 않자 아예 소모임 자체를 와해하려고 했던 이번 사안은 법원 내의 다양한 목소리를 원천 차단하고 제왕적 대법원장의 의사에 반하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독재적 발상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민주주의와 인권, 정의의 최후의 보루임을 자처하는 사법부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 사안”이라고 질타했다.

민변은 “이 과정에서 법원행정처가 시도했던 방법 또한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라 자부하는 판사들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치졸한 것이었다”며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들을 핵심세력이라 칭한 후 다수의 판사들과 분리, 고립시켜야한다며 이른 바 조직 내 왕따 전략을 세우거나, 소모임 운영자들이 회장과 운영위원회를 ‘승인’의 절차적 도구로 활용하려고 하고 있다며 인사모 내부 갈등을 야기하려 하고,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우리법연구회의 후신이라거나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음을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부각시켜 다수의 법관들로 하여금 인사모에 대해 심리적 거리감 내지 경각심을 가지게 하려했다”고 비난했다.

민변은 “이러한 행위들을 국민의 세금을 받아가며 버젓이 자행하고도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누군가가 오늘도 법대에 앉아 심판을 하고 있는 게 법원의 현실”이라며 “이런 법원을 어느 누가 신뢰할 수 있을까”라고 개탄했다.

이어 “이러한 행위들이 형법상의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며 “관련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로 일벌백계함이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변 사법농단 T/F(단장 천낙붕)’는 “실정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됨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헌법 수호의 엄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대법원에서 헌법상 독립기관인 판사들로 구성된 연구 모임을 지속적으로 사찰하고 연구활동의 일환인 학술대회를 무산시키고 조직을 와해하려 한 것은 자유권적 기본권의 심각한 침해에 해당하므로, 대법원은 관련자들을 업무에서 배제함과 동시에 조속히 징계하고 관련자들은 응당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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