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시민사회의 우려에도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판사 임용조건 법조경력 10년을 5년으로 축소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며 제동이 걸린 것과 관련해 교훈을 짚었다.

국회는 8월 31일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도입된 법조일원화를 후퇴시키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법조경력 축소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시켰다. 국회의원 229명이 참석한 가운데 표결 결과 찬성 111명, 반대 72명, 기권 46명으로 재석 의원 과반(115명)의 동의를 얻지 못해 결국 부결됐다.

이와 관련 민변 사법센터(소장 성창익 변호사)는 1일 “법조일원화 ‘무력화’ 법안 국회 본회의 부결에 대한 논평”을 내놓았다. 특히 법원과 국회를 꼬집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변은 “법조일원화를 무력화시키는 법안이 결국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며 “발의된 지 2개월도 되지 않아 여야합의로 소위원회를 통과했고, 이후 법조일원화 퇴행이라는 우려와 비판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공청회 한 번 없이 소위원회 의결 법안이라는 이유로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무사통과된 상황이었다”고 짚었다.

민변은 “몇 십 년의 논의를 통해 어렵게 만들어낸 사법개혁의 성과를 몇 개월 만에, 실질적 논의시간으로 따지면 사실상 몇 시간의 논의만을 거쳐 되돌리려 했던 이번 시도가 막힌 것에 우선 안도의 숨을 쉰 후, 이번 일을 차분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민변 사법센터 소장 성창익 변호사
민변 사법센터 소장 성창익 변호사

민변 사법센터는 “첫째, 법원의 무리한 시도는 법조일원화에 대한 법원의 인식과 운영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기록으로 남았다”며 “10년간의 법조일원화를 평가하고 올바른 정착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변은 “법조일원화는 우리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판사 상’에 대한 근본적 전환, 다양한 경험과 직역의 법조인들이 대거 법관으로 임명돼 법원의 순혈주의와 엘리트주의를 해소한다는 접근, 관료주의와 군림하는 ‘법원 상’에 대한 탈피, 전관예우로 이어지는 법조카르텔의 근절 등 사법개혁의 핵심 과제를 내포하고 출범한 제도였다”며 “단순히 몇 년차 기수와 몇 살 나이의 판사가 판결문 쓰기에 적합할 것인가라는 수준의 가벼운 숫자 이야기가 아니었다”고 짚었다.

민변은 “법조일원화 시대에 여전히 시험 성적과 엘리트주의에 집착하고 있다면, 재판연구원(로클럭) 출신의 대거 판사 임용 등 법원 순혈주의를 깨려는 노력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면, 경력법관 셋 중 한 명이 5대 로펌 출신이라는 결과가 나오는 등 법관의 다양성에 대한 노력을 찾아볼 수 없다면, 이런 제도 운영은 법조일원화의 취지를 이해하고 동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민변은 “결국, 이번 일은 법조일원화에 맞는 법관 임용을 법원이 알아서 잘하겠지 하는 기대는 무망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됐다”며 “법원이 의도치 않게 만들어낸 소중한 교훈”이라고 직격했다.

민변은 “10여년 간의 법조일원화를 평가하고 도입 취지에 맞는 제도 정착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며 “법원이 참여하되 법원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이번 일의 교훈을 날려버리지 않는 첫 번째 원칙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변 사법센터는 “둘째, 이번 법안 처리 과정은 사법행정개혁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켜줬다”며 “법원행정처 판사들의 입법로비와 국회의원들의 무비판적 수용은 더 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변은 “이번 법안 발의와 처리 속도는 매우 이례적이었다”며 “법원이 주장하는 내용을 고스란히 담은 법안이 5월 중순 이후 여러 건이 발의되더니 2개월 만에 소위원회를 통과했다. 국회에서 관련 논의가 성숙돼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매우 이례적인 처리 속도였다”고 봤다.

민변은 “사법농단 이후 대법원 스스로가 만든 ‘국민과 함께 하는 사법발전위’에서도 법원행정처에 탈판사화를 건의했음에도 불구하고, 김명수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 상근판사 제도를 유지했다”며 “그 결과 이번 법안 처리 과정에서도 법원행정처 현직 판사들이 국회의원회관을 돌아다니며 국회의원을 만났고 법조일원화 무력화 법안이 통과직전까지 갔다”고 질타했다.

민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이후 다시는 재현되지 않을 거라 기대했던 행태가 되돌아왔고, 국회는 이와 같은 상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변은 “결국 법원행정처 탈판사화 등 사법행정 개혁이 없으면, 시민들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사법제도가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현직 판사라는 프리미엄과 인맥을 동원한 공세적 로비 속에 통과될 위험이 너무나 높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우려했다.

민변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상고법원을 통과시키기 위해 현직 판사들이 의원회관을 분주히 다녔고,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에는 법조일원화를 무력화시키는 법안을 위해 또다시 현직 판사들이 활약한 것”이라며 “이런 일이 다시는 재발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변은 “사법행정개혁을 하지 않으면 사법제도가 위험해진다는 것이 이번 일이 남긴 또 하나의 교훈”이라며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법원 청탁 법안 처리가 아니라 법원행정처 탈판사화의 제도화다”라고 지목해줬다.

민변 사법센터는 “셋째, 법관의 증원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문제라는 것이 확인됐다”며 “충실하고 신속한 재판을 위해 필요한 법관의 수에 대한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논의가 바로 시작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민변은 “법원이 법조일원화 경력요건 단축의 핵심 이유로 제시한 것은, 법관 지원자 수의 감소라는 것이었다. 지원자 수 감소는 판사 인력 충원의 문제로 이어지고, 이는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에 대한 위태화로 이어진다는 논리였다”며 “그러나 법관 수의 부족을 법원개혁을 좌초시키는 논리로 제시하는 것은, 접근 방식이 올바르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로 법관 수 부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민변은 “일명 ‘5분 재판’ 으로 상징되는 부실 재판의 문제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판사 수 부족에 있다”며 “재판 받는 시민들은 충실하지 못한 재판, 지연 재판의 불만과 고통이 쌓여가는 한편 법관들이 과로사로 사망하는 등 과도한 업무량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짚었다.

민변은 “재판받을 권리의 실질적 보장, 구두변론, 공판중심, 집중심리 등이 실질적으로 구현되기 위해서도 판사의 대폭 증원은 필수적 조건”이라며 “이 상태로는 신속한 재판의 실현도 불가능하다. 충실한 심리가 가능하도록 판사수를 증원하는 것은 모든 사법개혁의 근본을 떠받치는 토대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민변은 “그런데 이런 중요한 문제가 법원 내부 반발을 무마시키는 당근용으로, 대법관 증원을 할 수 없다는 논리로, 법조일원화를 무력화시키는 이유로 언급되고 이용돼 왔던 것이 대부분”이라며 “법관수의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법원개혁을 퇴보시키는 지렛대 논리로 또다시 등장할 것”이라고 짚었다.

민변은 “법관수 증원은 온전하게 이 이슈에 집중해서 다뤄져야 한다”며 “제대로 된 재판을 위해 필요한 법관수는 어느 정도인지, 지금은 그에 비해 법관수가 얼마나 부족한지, 소폭 증원으로 가능한 수준인지 2~3배의 대폭 증원이 필요한지 분석되고 논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변은 “시민, 학자, 시민단체, 법원, 국회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합의를 이루어내야 하는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라며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법관 증원의 필요성과 시급성도 높아졌다. 법관 증원의 올바른 방식에 관한 논의가 바로 시작되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와 함께 민변 사법센터는 ‘국회의원들의 책임’도 따졌다.

민변은 “법원개혁을 외치면서 이번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앞장선 국회의원들이 있다. 소신일 수도 있고, 법원의 논리에 설득되었을 수도 있고, 부실심사 때문일 수도 있고, 실력의 문제일 수도 있다”며 “논리와 소신이라면 토론이 가능하겠으나, 회의록을 통해 확인되는 것은 많은 국회의원들이 법조일원화에 대한 이해가 얕다는 것, 이렇게도 가벼운 접근으로 수 십년 쌓인 법안이 되돌아가는 건가 하는 놀라움이었다”고 꼬집었다.

민변은 “법사위 의원들은 대법원의 주장(10년 경력을 요구할 경우 법관 지원자수가 부족할 것이라는 주장)을 검증하기 위한 기본적인 자료, 즉 법관 지원자수와 같은 자료조차 확보하지 않은 채 법안을 (법사위에서) 통과시켜줬다”고 비판했다.

민변은 “이번 법조일원화 퇴행 시도는 다행스럽게도 많은 교훈을 남기고 일단락되었다”며 “그러나 앞서 언급한 문제들이 그대로 방치된다면 얼마가지 않아 비슷한 일들이 더 강력하고 복잡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이번 일이 조금은 나은 곳으로 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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