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방송편성에 관한 ‘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조항은 헌법에 위반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이 심판대상조항은 1963년 방송법 제정 이래 최초의 판단이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이정현 전 국회의원은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재직하던 2014년 4월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KBS 9시 뉴스’의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건에 대한 해경 비판 뉴스 보도에 항의하고, 향후 비판 보도를 중단 내지 대체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방송편성에 간섭했다는 범죄사실로 기소됐다.

이정현 전 의원은 2018년 12월 1심인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 전 의원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2019년 7월에는 방송법 제4조 2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으나, 항소심 재판부가 기각했다.

이에 이정현 전 의원은 방송편성에 관해 규제나 간섭을 금지하는 방송법 제4조 2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며, 2019년 11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방송법 제4조(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 ②항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처벌조항은 위반행위자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형사제재를 가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8월 31일 법률에 의하지 않고서는 방송 편성에 관한 어떤 간섭도 할 수 없다고 정한 방송법 조항에 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며 합헌 결정을 선고했다.

이정현 전 의원은 “심판대상조항은 간섭 행위의 내용과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왜곡되고 불공정한 보도에 대한 정당한 언론비판 행위와 방송편성 간섭 행위 간의 구별을 어렵게 하므로 명확성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이 사건 금지조항은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방송사 외부에 있는 자가 방송편성에 관계된 자에게 방송편성에 관해 특정한 요구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방송편성에 관한 자유롭고 독립적인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 일체를 금지하는 취지임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헌재는 “따라서 금지조항은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사람이면 당해 처벌법규의 보호법익과 그에 의해 금지된 행위 및 처벌의 종류와 정도를 알 수 있다고 할 것이어서, 헌법이 요구하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정현 전 의원은 또 “시청자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시청할 권리를 가지며 왜곡된 보도에 대해서는 의견 개진 내지 비판을 할 수 있음에도, 심판대상조항은 그러한 행위를 방송편성에 대한 간섭이라고 하여 금지하고 처벌함으로써 과잉금지원칙에 위반해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이 방송편성에 관해 간섭을 금지하고 나아가 이를 위반한 자를 처벌하는 취지는 국가권력은 물론 사회의 다양한 세력들로부터 방송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방송편성에 영향을 미치는 일체의 행위를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엄격히 보장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며 “따라서 이 사건 심판대상 조항은 입법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한 “심판대상조항을 통해 방송편성에 간섭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나아가 형사적 제재를 부과하는 것은 위와 같은 입법목적을 달성하기에 효과적이고 적절한 방법이므로 그 수단의 적합성도 인정된다”고 봤다.

헌재는 “방송의 역할과 영향력이 큰 만큼, 국가권력 혹은 정치권력 기타 사회세력들이 방송을 장악하고 이용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물론, 방송 또한 그러한 권력들에 편승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며 “실제 우리 방송법의 역사에서 그러한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고 짚었다.

헌재는 그러면서 “이 사건에서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이라는 지위에 있던 청구인은 보도자료 배포나 언론 브리핑과 같은 공식적이고 정상적인 방법을 취하는 대신, 방송종사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의 보도를 유도함으로써 방송에 간섭하고 있는바, 이는 일종의 잘못된 관행으로서 방송편성 간섭 행위를 엄격히 금지해야 할 필요가 크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그렇다면, 심판대상조항이 달성하고자 하는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공익에 비해 청구인의 불이익이 크다고 볼 수 없으므로, 법익의 균형성 역시 충족한다”며 “따라서 과잉금지원칙에 위반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한편, 헌법재판소 공보관실은 “헌재는 권력과 방송이 유착돼온 우리 방송법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전 청와대 홍보수석인 청구인이 2014년 4월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건에 대한 KBS 뉴스 보도에 관해 보도국장에게 직접 전화해 개입한 것은 방송편성의 자유에 대한 ‘간섭’ 행위로서, 그러한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간섭은 엄격히 금지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하고, 재판관 전원일치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했다”고 설명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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