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남편의 부정행위를 의심해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집에 몰래 녹음기를 설치해 대화내용을 녹음한 여성에게 법원이 징역형의 선고유예 판결했다.

광주지방법원과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A(여)씨는 자신의 집에서 남편의 부정행위를 의심해 증거를 확보하고자, 2019년 6월 자신의 집에 녹음기를 설치하고 남편과 내연녀 B씨가 나눈 대화내용을 2회 녹음했다.

대화녹음을 확인한 A씨는 B씨에게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하도록 요청했으나 만남을 계속하자 B씨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2020년 4월에는 남편에 대한 B씨의 부정행위 가담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로 대화 녹음파일을 제출했다.

검찰은 “A씨가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내용을 녹음하고, 이에 따라 알게 된 대화의 내용을 민사소송에 제출함으로써 공개했다”며 재판에 넘겼다.

A씨는 “범행 장소가 자신의 주거이고, 범행 당시 상황은 B씨가 집에 침입해 배우자의 부정행위에 가담한 불법행위에 해당하므로, 이런 상황에서의 대화는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해 보호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A씨는 또 “배우자의 부정행위를 확인하기 위해 주거에 녹음기를 설치한 것으로서 행위의 동기나 목적이 정당하고, 범행 당시 피고인이 보호받고자 한 이익은 혼인 유지와 가족생활 보장 등으로, B씨가 침해당한 이익인 사생활 비밀의 자유보다 두텁게 보호돼야 한다”며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주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정지선 부장판사)는 최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6월에 대한 선고유예 판결을 선고한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2020고합568)

선고유예는 범죄의 정도가 비교적 가벼운 범인에 대해 일정기간 형의 선고를 미루고, 그 기간이 지나면 형의 선고를 면하게 하는 제도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녹음한 남편과 B의 대화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이고, 통신비밀보호법 등에서 녹음이 허용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따라서 비록 위 대화가 피고인의 주거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대화자가 피고인의 배우자 및 부정행위 상대방이며, 대화의 내용이 배우자의 부정행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녹음한 행위는 통신비밀보호법위반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정당행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위 주거지는 피고인과 남편의 공동생활 공간이고, 피고인의 남편은 피고인에 대해 정조의무가 있으며, 부정한 행위는 피고인에 대해 불법행위가 되지만, 통신의 비밀과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에 해당하므로 위와 같은 동기ㆍ목적만으로 기본권 침해 행위의 목적이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이어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에 대한 비밀녹음은 통신비밀보호법에서 일반적으로 금지돼 있고, 이를 위반하면 타인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게 되는데, 배우자의 부정행위 여부를 확인함에 있어서는 위법한 권리 침해가 수반되지 않는 다른 방법을 모색할 수 있으므로,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을 인정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양형과 관련해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의 집에 녹음기를 설치해 배우자와 부정행위 상대방의 대화를 2회 몰래 녹음하고, 녹음파일을 부정행위 상대방에 대한 위자료 청구소송의 증거로 제출해 공개했는바,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녹음기를 설치한 장소는 피고인의 주거이고, 녹음된 내용은 부정행위 상대방이 주거에 침입해 피고인의 배우자와 대화한 것이며, 구체적인 대화내용의 비밀은 여전히 헌법상 보장되는 권리라고 하더라도 부정행위 상대방이 주거에 침입해 배우자와 대화한 사실 자체는 피고인에 대해 민법상 불법행위가 되므로, 피고인이 배우자의 부정행위와 제3자의 주거침입을 의심할만한 객관적인 정황이 있는 상태에서 범행에 이른 것은 경위와 방법에 관해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할 만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녹음내용을 확인한 후 부정행위 상대방에게 연락해 배우자와의 관계를 정리하도록 요청했으나, 그 후로도 배우자와의 만남이 계속되자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하게 되었고, 위 소송에서 상대방이 부정행위 가담사실과 책임을 부인함에 따라 불법행위에 대한 입증책임을 부담하는 피고인이 대화녹음 파일을 증거로 제출하기에 이르렀으며, 위 대화내용을 다른 곳에 공개하거나 누설하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해 형을 정했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A씨의 배우자는 부정행위를 뉘우치며 아내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는 점도 참작됐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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