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아파트 주민이 부착한 현수막을 무단으로 제거한 아파트 관리소장에 대해 법원이 재물손괴죄를 적용해 벌금형을 선고했다.

대구지방법원에 따르면 대구의 한 아파트 관리소장 A씨는 2020년 6월 아파트 주민 B씨가 분리수거장과 아파트 상가 앞 화단에 걸어놓은 “주민들 피해 주는 소장 물러나라”고 기재된 현수막 2개를 가위로 절단해 B씨 소유의 현수막 2개(시가 4만원)를 손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구지법 제4형사단독 김남균 판사는 7월 9일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된 아파트 관리소장 A씨에게 유죄를 인정해 벌금 70만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A씨는 “아파트 관리규약에 따르면 입주민은 공동주택에 광고물 등을 부착할 때에는 반드시 관리주체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는데, 피고인이 철거한 현수막 2개는 관리주체의 동의 없이 게시된 것이었고, 피고인은 관리소장으로서 불법 현수막 2개를 철거했을 뿐이므로, 피고인의 행위는 법률 또는 업무에 따른 것으로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아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남균 판사는 “공동주택관리법 및 하위 법령 어디에도 법령에서 정한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은 표지물이나 게시물에 관해 관리주체나 입주자대표회의의 회장이 스스로 이를 철거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김남균 판사는 “이 사건 현수막의 내용은 ‘주민들 피해 주는 소장 물러나라’라는 것인데, ’피해’의 구체적인 내용이 적시돼 있지 않아 피고인의 명예에 중대하거나 회복하기 어려운 침해를 유발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점, 피고인 또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피해자를 상대로 민사소송 등의 법정절차를 취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의 행위는 정당행위로서 긴급성이나 보충성의 요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판사는 “따라서 피고인의 행위가 법률 또는 업무에 따른 것으로서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는 피고인과 변호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피고인은 아파트의 관리소장으로서 불법 현수막을 공동주택관리법령 및 관리규약에 따른 조치행위로 철거ㆍ제거할 수 있다고 잘못 인식했고, 그와 같이 잘못 인식함에 정당한 이유가 있으므로, 피고인의 행위는 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남균 판사는 “피고인은 현수막을 제거하기 전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으로부터 현수막을 철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하나,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공동주택관리법령 및 관리규약의 해석에 관해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등에 법치국가에서 사법절차를 통하지 않은 자력구제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점을 더해 보면, 피고인의 행위가 법률에 따른 행위로서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믿은 데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A씨의 주장을 일축했다.

양형에 대해 김남균 판사는 “피고인의 범행은 피해자 소유의 현수막 2개를 임의로 판단해 현수막을 가위로 자르거나, 그 끈을 잘라내는 방법으로 손괴한 것”이라며 “피고인은 아파트 관리소장으로서 적법하게 관리 업무를 수행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남균 판사는 “다른 한편, 피고인은 아무런 범죄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피해자가 입은 손해의 액수가 적은 점, 피고인이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 피고인은 더 이상 이 아파트의 관리소장으로서 근무하지 않아 재범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 여러 양형조건을 종합해 형을 정했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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