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은 정의롭게 해석되고 적용되어야 한다>

요즘 매스컴에서는 선택적 수사, 선택적 정의, 선택적 법적용 등의 말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법의 적용은 절대로 선택적이어서는 안 된다. 법의 적용은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하고, 그것이 바로 법이념의 핵심인 ‘정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법은 정의이다”와 “법은 악하다”의 두 명제 사이에서 갑론을박할 때가 있다. 과연 선한 법과 악한 법을 구별할 수 있을까? 만일 어떠한 사건이 법원의 재판을 통해 사필귀정으로 귀결된다면 법을 정의롭다고 표현하겠지만, 혹여라도 재판이 범죄자를 제대로 징벌하지 못한다면, “법은 악하다”, “악법은 법이 아니다”는 등으로 법을 비난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마도 인지상정일 것이다.

얼마 전 종영된 인기 드라마, ‘로스쿨’의 마지막 회에도 등장인물 간에 사건 해결을 앞두고 “법은 정의인가?”라는 법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그에 답하는 원생과 교수의 대사가 오갔던 것이 기억난다.

법은 정의라거나 악하다는 명제는 ‘법규정’의 속성에는 맞지 않는 표현이다. 그것은 법규범 전체에 대한 법철학적 물음에 해당하는 명제이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법’은 대체로 특정 사안에 적용되는 ‘법규정’을 지칭하는 말이다.

개별 법률규정은 예컨대 이러한 경우에 이렇게 처리하라는 원칙을 무미건조하게 선언하고 있을 뿐, 어떠한 행위가 정의롭고 어떠한 행위가 악하다는 윤리적 판단은 전혀 하고 있지 않다. 윤리적 판단 없이 그저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을 하거나 아니면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할 뿐이다. 따라서 법규범 전체가 아닌 개별 법규정을 가리켜 “법은 정의다”, 혹은 “법은 악하다”는 등으로 말할 수는 없는 것이며, 법규정은 그것을 적용한 재판결과에 따라 때로는 정의롭게 보일 수도 있고 때로는 악하게 보일 수도 있을 뿐이다.

구체적 법규정이 아닌 법규범 전체를 놓고 본다면 당연히 법은 법이념의 핵심인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 즉 “법은 정의다”, 혹은 “법은 정의로워야 한다”는 명제는 법이념을 말하는 것이고 개별 법규정의 이념은 아니다. 하지만 법규정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당연히 법이념이 실현되도록 정의롭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

법의 이념에 대하여는 고대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를 평등이라고 해석하고 평균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의 둘로 구분한 이후 현재까지 그의 정의론을 뛰어넘는 이론은 도출되지 않고 있으며, 이에 더하여 코잉의 보호적 정의론, 롤스의 사회적 평등론 등의 주장이 관심을 가질 뿐이다. 현대의 법철학자 라드부르흐는 법의 이념은 정의와 더불어 합목적성과 법적 안정성이 함께 요구된다고도 하였다.

결국, 개별 법규정이 정의라거나 정의로워야 한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고, 법의 이념을 말할 경우에만 “법은 정의다” 혹은 “법은 정의로워야 한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법이념이 정의니까 개별 법규정도 정의라고 말할 수 있다는 생각도 가능하나, 개별 법규정은 해당 조항의 요건을 잘 지킨 자에게 승소판결이 내려지도록 적용될 뿐이므로 재판 결과는 정의롭지 않을 수도 있고 심지어 악하게 인식될 수조차 있다.

요컨대 법의 이념은 정의이지만, 개별 법규정을 말할 때는 “법은 정의다”라는 표현보다는 “법은 정의롭게 해석되고 적용되어야 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재판에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람들은 법조인이므로 만일 법조인이 법이념과 동떨어진 해석과 적용을 한다면 그는 참된 법조인으로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법의 적용이 정의롭게 해석되고 적용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일 것이다.

<위 글은 법학자의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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