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법농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T/F’는 26일 사법농단 관련 “이슈페이퍼(Issue Paper)”를 발간했다. 그 첫 스타트의 제목은 ‘상고법원을 매개로 한 재판거래, 재판개입’이 주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던 상고법원은, 청와대와의 재판거래 의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아킬레스건이라고 봤다.

먼저 지난 5월 25일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특별조사단’의 조사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민변(회장 김호철)은 즉각 “사법농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T/F”(사법농단 T/F를 결성하고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다각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 왔다.

민변 사법농단 T/F(단장 천낙붕)에서는 “특별조사단의 조사보고서 이외에도, 진상조사위원회 및 추가조사위원회의 각 조사보고서, 언론을 통해 공개된 98개의 법원행정처 문건 등을 법적인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현 단계에서 진상규명을 위해 요청된다”고 판단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 하에, 민변 사법농단 T/F는 6월 26일부터 수회에 걸쳐 “사법농단 이슈페이퍼(ISSUE PAPER)”를 발간하기로 했다.

이날 처음 공개된 “사법농단 이슈페이퍼”는 “상고법원을 매개로 한 재판거래, 재판개입”이라는 주제로, 앞서 살펴본 문건 등을 분석한 결과를 담았다.

민변 사법농단 T/F는 향후에는 법원행정처의 인사권 남용 문제, 재판거래 내지 재판개입 의혹이 있는 각 개별사건 등을 주제로, 이슈페이퍼 발간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민변 사법농단 T/F(단장 천낙붕)가 발간한 이슈페이퍼 ‘상고법원을 매개로 한 재판거래, 재판개입’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살펴본다.

◆ 재판거래 의혹의 아킬레스건, 상고법원 – 덮어두고 싶은 고위법관들

민변 사법농단 T/F(단장 천낙붕)는 “현직 대법관 13명은 지난 6월 15일 김명수 대법원장의 수사협조 방침이 결정되자마자 2시간 30분 만에 별도의 성명을 발표해 판사 사찰은 있을 수 있어도, 재판거래는 근거가 없다며 반기를 들었다”며 “이는 각급 법원장 간담회, 그리고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회의에서 나온 의견과 대체로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재밌는 현상은, 이러한 대법관과 고위법관들 중 상당수가 법원행정처 출신으로서 양승태 대법원장의 상고법원 설득을 위한 재판거래, 재판개입, 판사 사찰에 적극 가담했던 법관들로서 이해관계 당사자이고, 향후 수사 대상인 경우마저 있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민변은 “또한 그렇지 않은 나머지 고위법관들 역시 대체로 당시 상고법원 도입 자체에는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이는 전국법관대표회의 주축인, 지방법원 소속 일선 판사들이 대체로 2015년 당시 상고법원에 비판적이었던 것과 대조된다”며 “한마디로 재판거래 의혹을 바라보는 관점이, 상고법원에 대한 입장과 긴밀히 관련돼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변은 “그러하기에 현직 대법관을 비롯한 고위법관들은, 상고법원 관련 언급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단지 재판거래는 있을 수 없다는 원론적인 주장만 되풀이하는 경향이 있다”며 “상고법원 관련 문건들도, 사심 없이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꼭 필요한 상고법원 입법추진이었기에 그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아이디어 차원의 해프닝 정도로 여기고 싶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변은 “특별조사단이 수박겉핥기 식으로 상고법원 관련 문건들을 적당히 덮어두려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며 “그만큼 이들에게 상고법원은, 재판거래 의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렇다면 상고법원이 이들에게는 도대체 어떠한 이익을 가져다 주길래, 사상 유례없이 양승태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상고법원에 올인하고, 나아가 상고법원 설득을 위한 재판거래 의혹이 드러나자 역시 한목소리로 이를 덮으려고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 상고법원에 올인한 이유

민변 사법농단 T/F는 “상고법원은 고법부장 이상의 고위법관들이나, 양승태 대법원장 모두 윈윈하는 방안이었다”며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의 고위 법관들로서는 관문이 매우 좁은 대법관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상고법원 판사로라도 임명받을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지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민변은 “이 점에서 상고법원은, 당시 고위법관들 대부분이 상고법원 찬성의견을 형성하게 된 원인이기도 했고, 지금에 와서는 고위법관들이 상고법원, 재판거래 의혹에 대하여 근거가 없다면서 이를 부정하고 수사도 덮어두자고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또 “한편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원행정처 수뇌부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고위법관들에 대한 더 높은 승진, 지위에 대한 열망을 활용해 상고법원 도입에 올인했다고 볼 수 있다. 즉 그렇지 않아도 제왕적 대법원장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대법원장의 권한이 막강한데, 상고법원 판사 임명권까지 가지게 돼 더더욱 고위 법관들에 대한 통제권이 훨씬 더 강화되는 것”이라고 봤다.

민변에 따르면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고법 부장들의 대법관에 대한 열망을 활용해서, 고법부장 승진 이후에도 고법부장들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건이 늘면서 고법부장 자리는 조금씩 늘었지만, 대법관 숫자는 13명으로 한정돼 있다 보니 대법관 제청되는 비율이 종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졌다.

게다가 평생법관 제도의 도입과 변호사 시장 위축으로 고위법관들이 사직을 꺼리는 분위기로 인해 인사적체가 심해지기도 했었다. 그러다보니 고법부장 중에는 예전과 달리, 대법관이 되겠다는 마음을 비우고서 이른바 소신 판결을 하는 판사들이 조금씩 늘어나게 됐다고 한다.

민변은 “양승태 대법원장으로서는 이와 같은 불만스러운 상황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상고법원 제도 도입이었다. 상고법원 판사 임명권을 통해, 고법부장들에게 ‘이게 출세의 끝이 아니’라는 시그널을 보냄으로써 고법부장들까지 촘촘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며 “결국 고법부장들의 더 높은 승진과 자리에 대한 욕망을, 상고법원 제도 도입에 활용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민변은 “양승태 대법원장은 이러한 상고법원안을 자신의 임기와 겹치는 19대 국회에서 통과시키고자 했다”며 “그 이유는 자신과 국정철학이 유사하기 때문에 VIP(대통령)의 협조를 받기 쉬울 것이고, 이명박ㆍ박근혜 대통령 집권 기간 동안 보수적 성향의 대법관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게 돼 마침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대법원 판결이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원래대로라면 2017년 9월 후임 대법원장 임명권을 박근혜 대통령이 행사하도록 돼 있어서, 차기 대법원장 역시 그 후로도 6년 동안이나 자신의 일관된 법관 통제권 강화정책을 계승할 것임이 분명했던 상황이었다”며 “그러하기에 양승태 대법원장은 설령 상고법원 도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무리수가 생기더라도 후임 대법원장에 의해 묻힐 것이라고 봤던 것”이라고 진단했다.

◆ 재판개입 직권남용죄의 강력한 범행동기, 상고법원 – 파헤치고 싶은 국민

민변 사법농단 T/F는 “이처럼 양승태 대법원장이 고위법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엎고서 상고법원에 올인하게 된 동기가 분명한 이상, 상고법원을 관철시키고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느라 BH(Blue House. 청와대)에 대한 재판거래 역시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실행된 것임을 알 수 있다”고 봤다.

이어 “나아가 적어도 원세훈, 전교조, 통진당 3가지 사건에 관하여는, 이미 밝혀진 문건을 통해서도 구체적인 재판개입으로까지 나아간 정황이 드러났고, 향후 강제수사의 의지만 확고하다면 더 많은 증거 수집을 통해 입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민변은 “이처럼 상고법원은 재판개입 직권남용죄(판사사찰 직권남용죄 포함)의 범행 동기에 해당한다. 범행 동기가 명확하고 확고할수록, 범행의 실행 가능성도 높아진다. 상고법원은 재판거래, 재판개입의 강력한 범행동기였음이 여러 문건에 객관적으로 기재돼 있지 않은가? 따라서 향후 수사에 있어서도, 재판개입 여부 자체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범행 동기에 해당하는 상고법원 문제도 철저히 수사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저작권자 © 로리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