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종교적 양심에 따라 입영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에게 1심 재판부는 친구를 때리고, 음주운전사고를 일으킨 점 등을 이유로 양심이 진실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병역법 위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여와와의 증인 신도라고 사회생활을 하며 사소한 다툼이 없을 수는 없고, 교통사고 역시 숙취 운전 중 빗길에 미끄러진 사정이 있어 이것만으로는 피고인의 종교적 신념이 확고하지 않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해서다.

광주지방법원에 따르면 20대 A씨는 2016년 11월 입영통지서를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아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2017년 4월 법정에 출석해 “사랑, 평화, 정직을 우선시하는 성경 말씀에 따라 입영을 거부했다”고 진술했다.

A씨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부모님의 영향으로 유년기부터 여호와의 증인 신앙을 접하며 이른바 ‘모태신앙’으로 성장했다. 고등학생 때인 2012년에는 침례를 받아 정식으로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된 후 꾸준히 집회에 참석해 왔다.

A씨의 형도 여호와의 신도로서 병역을 거부해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2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유죄를 인정해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성장과정 및 주변 환경 등은 피고인이 자연스럽게 여호와의 증인 교리를 받아들이고 내면화했다고 볼 만한 정황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피고인이 주장하는 양심이 자신의 내면에서 결정되고 형성된 것이 아니라, 가족 등 주변인들의 독려와 기대, 관심에 부응하려는 현실적이고 환경적인 동기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은 성서에 규정된 ‘이웃에 대한 사랑’ 등을 근거로 병역을 거부하게 됐다고 주장하나, 피고인이 종교활동의 일환인 ‘전도봉사’ 이외에 타인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진지하고 지속적인 활동을 했다고 볼 만한 자료는 제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A씨는 2018년 8월 술을 마시다 지나가던 친구와 시비가 일어 그의 뺨을 두 차례 때려 수사를 받았다가 친구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았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사랑과 평화’를 중요시하는 여호와의 증인 교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다는 피고인의 양심은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한 A씨는 2015년 5월 혈중알코올농도 0.091% 술에 취한 상태에서 화물차를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를 내 벌금 500만원의 처벌을 받기도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서 ‘절주’를 요구하는 교리를 숙지하고 이를 철저히 따르고 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병역거부의 근거로 든 성서 구절과 ‘사랑과 평화’라는 가치, 인간 존엄 존중 정신에 따른 신념이 피고인의 삶 전체를 통해 형성돼 실제 피고인의 삶 전반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사정은 그다지 엿보이지 않고, 유독 병역의무에 관해서만 두드러지고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고 의심하며 유죄로 판단했다.

이에 A씨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서 종교적 양심에 따라 입영을 거부했으므로, 피고인에게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이 정한 정당한 사유가 있음에도 유죄를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며 항소했다.

항소심인 광주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김재근 부장판사)는 지난 4월 8일 유죄를 인정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어렸을 때부터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부모의 영향을 받아 여호와의 증인 교리를 공부해 왔고, 2012년 12월 침례를 받아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서 신앙에 따라 생활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물론 피고인이 주장하는 양심이 가족 등 환경적인 동기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만, 친형이 종교적 양심을 이유로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복역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면서도, 스스로 자신의 양심에 따라 친형과 동일한 선택을 했다는 것은 피고인의 종교적 신념이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이런 선택은 대법원 판결로 여호와의 증인 신도의 입영거부가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정받기 이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사회 상황의 변화에 따라 급조된 결정으로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2017년 3월 이 사건으로 기소돼 원심에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현재까지 4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일관되게 형사처벌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고, 군과 무관한 민간 대체복무를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분명히 다짐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음주운전 사건의 경우 피고인은 전날 술을 마신 후 아침에 숙취 운전을 한 것이고, 빗길에 미끄러져 발생한 사고였다고 진술했다”며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 신도라고 무조건 ‘금주’를 강요하고 있다고는 보이지 않고, 교리도 ‘절주’를 요구하는 것으로 보이는바, 피고인이 전날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아침에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냈다는 사실만으로 피고인의 신앙생활이 병역의무 면제를 위한 수단으로 행해지는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친구 폭행사건과 관련해 재판부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우선시하는 여호와의 증인 교리에 의할 때, 폭력 행위가 용납되기 어렵다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여호와의 증인 신도라고 사회 생활에 있어 사소한 다툼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는 점, 피고인이 폭행으로 여호와의 증인에서 제명되거나 징계를 받은 바는 없는 점 등을 살펴보면, 뺨을 때린 사실만으로 피고인에게 폭력적인 성향이 있다거나 여호와의 증인 교리에 반하는 행동이어서 도저히 위 종교의 신도로서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짓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학창시절 생활기록부를 살펴보더라도 피고인은 성실한 학생이었던 것으로 보이고, 달리 폭력적인 성향을 인정할 수 있거나 자신이 주장하는 양심을 의심하거나 부정하게 할 만한 특별한 사정 역시 발견되지 않는다”며 “그렇다면, 피고인의 항소는 이유 있으므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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