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인터넷 기사에 ‘기레기’(기자와 쓰레기 합성어)라는 댓글을 적었다가 1심과 2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으나, 대법원은 무죄로 판단했다.

기레기라는 표현이 기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경멸적 감정을 표현한 ‘모욕적 표현’에 해당하지만, 기사의 성격 등을 따져보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2016년 자동차 관련 인터넷신문사 B기자가 작성한 자동차 파워스티어링 시스템인 ‘MDPS’ 관련 기사에 “이런 걸 기레기라고 하죠?”라는 내용의 댓글을 게시해 B기자를 모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기레기’는 기자와 쓰레기 합성어다.

A씨는 “조회수를 높이려는 의도에서 기사의 제목과는 다른 홍보성 글을 작성했기에 기레기 표현을 썼고, 당시 독자들의 의견을 묻기 위해 댓글을 작성한 것”이며 모욕죄 혐의를 부인했다.

1심인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과 2심인 대구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김정도 부장판사)는 2017년 “기레기는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보고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미 ‘기레기야’ 등과 같은 표현을 사용해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모욕하는 여러 개의 댓글이 게시돼 있었던 점에 비추어, 피고인은 다른 독자들의 의견을 묻기 위해서라기보다 다른 댓글들에 동조하면서 댓글을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A씨가 ‘기레기’ 댓글을 작성한 행위를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다.

대법원 제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3월 25일 모욕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3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피고인이 댓글을 작성한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라고 판단해 무죄 취지로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하라”며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특정 사안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는 인터넷 게시판 등의 공간에서 작성된 단문의 글에 모욕적 표현이 포함돼 있더라도, 그 글이 동조하는 다른 의견들과 연속적ㆍ전체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 내용이 객관적으로 타당성이 있는 사정에 기초해 관련 사안에 대한 자신의 판단 내지 피해자의 태도 등이 합당한가 하는데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강조하거나 압축해 표현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고, 그 표현도 주로 피해자의 행위에 대한 것으로서 지나치게 악의적이지 않다면,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글을 작성한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댓글에서 기재한 ‘기레기’는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로서 자극적인 제목이나 내용 등으로 홍보성 기사를 작성하는 행위 등을 하는 기자들 또는 기자들의 행태를 비하한 용어이므로 기자인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한, 모욕적 표현에 해당한다”면서도 “그러나 피고인이 댓글을 작성한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서 형법 제20조에 의해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이 사건 독자들은 이 기사의 내용 및 이를 작성ㆍ게재한 언론의 태도 등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펼칠 수 있고, 포털사이트는 그러한 의견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네티즌 댓글’란을 마련했다”며 “피고인도 ‘네티즌 댓글’란에 댓글을 게시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 기사는 ‘MDPS’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많은 가운데 MDPS를 옹호하는 제목으로 게시되었고, 한편 그 내용의 많은 부분은 일반적인 EPS의 장점을 밝히고 있을 뿐”이라고 봤다.

일반적으로 전동식 파워 스티어링 시스템은 EPS(Electric Power Steering)라는 용어로 통칭되는데,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를 MDPS(Motor Driven Power Steering)라고 칭하고 있다.

재판부는 “이 기사가 게재되기 직전 MBC는 ‘시사매거진 2580’을 통해 MDPS와 관련한 부정적인 내용을 방송했고, 이 기사를 읽은 상당수의 독자들은 위 방송내용 등을 근거로 일반적인 EPS의 장점에 기대어 현대자동차그룹의 MDPS를 옹호하거나 홍보하는 듯한 기사의 제목과 내용, 이를 작성한 피해자의 행위나 태도를 비판하는 의견이 담긴 댓글을 게시했다”며 “그렇다면 이러한 의견은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타당성 있는 사정에 기초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댓글의 내용, 작성 시기와 위치, 댓글 전후로 게시된 다른 댓글의 내용과 흐름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댓글은 그 전후에 게시된 다른 댓글들과 같은 견지에서 방송 내용 등을 근거로 이 기사의 제목과 내용, 이를 작성한 피해자의 행위나 태도를 비판하는 의견을 강조하거나 압축해 표현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한 ‘기레기’는 기사 및 기자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에서 비교적 폭넓게 사용되는 단어이고, 이 기사에 대한 다른 댓글들의 논조 및 내용과 비교해 볼 때 댓글의 표현이 지나치게 악의적이라고 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 공보관실은 “이 판결은, 특정 사안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는 인터넷 게시판 등의 공간에서 작성된 단문의 글에 모욕적 표현이 포함돼 있더라도 그 글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볼 수 있는 판단기준을 제시한데 의의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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