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21일 재판거래 의혹을 부인하고, KTX 해고 승무원 판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입장을 표명하는 대법관들에 대해 “대법원은 KTX 승무원들을 두 번 죽이지 마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민변 김호철 회장이 15일 대법원 동문 앞에서 사법농단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민변)
민변 김호철 회장이 15일 대법원 동문 앞에서 사법농단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민변)

KTX 해고된 승무원들은 13년째 투쟁하고 있다. “승무원들은 물러설 곳도 없고, 앞으로 더 나아갈 힘도 없어 현재 서울역에서 노숙철야농성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21일 민변(회장 김호철)은 “대법원은 6월 20일 홍보심의관을 통해 2015년 2월 26일 선고된 KTX 승무원 판결의 해명자료를 배포했다”며 “핵심은 당시 대법원 판결은 2개의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는 상태에서 재판연구관실의 ‘집단지성’에 의해 심층 연구과 여러 단계 검증을 거쳐, 파견근로관계를 인정하는 새로운 법리를 선언한 판결이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즉 대법원이 ‘심혈을 기울여’ 판단한 것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고, 결국 현 사법농단 사태의 ‘재판 거래 의혹이 없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에 다름 아니다”며 “이는 지난 6월 15일 김명수 대법원장의 입장 발표에 뒤이어 나온 대법관들의 집단 입장 발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비판했다.

당시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사태의 해결방안으로 사법농단 관련자 검찰 수사 협조라는 다소 전향적 입장을 내놓았다. 그런데 대법관 13명 전원 일동은 곧바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관한 대법관들의 입장>을 내놓았다.

대법관들은 특히 “재판의 본질을 훼손하는 재판거래 의혹에 대하여는 대법관들은 이것이 근거 없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그리고 대법관들은 “사회 일각에서 대법원 판결에 마치 어떠한 의혹이라도 있는 양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하여는 당해 사건들에 관여했던 대법관들을 포함해 대법관들 모두가 대법원 재판의 독립에 관하여 어떠한 의혹도 있을 수 없다는 데 견해가 일치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변은 “대법원 특별조사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재판거래 의혹이 분명히 드러남에도, 대법관들은 재판거래 의혹이라고는 있을 수 없고, 의혹을 제기한 국민들을 협박하는 듯 했다”며 “국민들에 대한 대법관들의 태도는 오만함 그 자체였다. 오늘 해명자료도 이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민변은 “그러나 대법원의 해명자료를 근거로 하더라도, KTX 승무원 사건 판결은 ‘근로관계의 실질 판단의 원칙’에 반한다”며 “철도공사와의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한 원심 판결과 동일하게 사실 인정을 하면서도, 대법원은 지엽적인 사실을 들어 해당 원심의 판단을 파기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KTX 차량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상호 공동업무를 수행하는 철도공사의 열차팀장 업무와 KTX 승무원 업무를, 안전 부분과 승객서비스 부분으로 자의적ㆍ관념적으로 구분한 것이 대표적이다”라면서 “대법원의 논리조작 결과, KTX 열차의 승객 안전은 뒷전으로 내몰렸다. 또한 같은 날 선고된 현대자동차, 남해화학 사건 판결과 동일한 파견근로관계 법리를 설시했음에도, 유독 KTX 승무원 판결만 파견근로관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비판했다.

민변은 “이미 검찰이 수사협조를 요청한 마당에 대법원 홍보심의관은 검찰에 내야 할 의견서를 굳이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다. 여론을 호도하고 검찰 수사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또 “KTX 승무원 사건은 당시 전 국민적 이목이 집중돼 있던 사건이었다. (대법관) 해명자료에서 현대자동차와 KTX 승무원 사건을 묶어 새로운 법리 선언에 따른 것이라고 한 것도 재판 거래 의혹을 덮기 위한 물타기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민변은 “현재 재판거래 의혹은 재판 자체가 거래의 대상이 됐다고 ‘의심’ 받는 사실만으로도 헌법에 반하는 초유의 사건이다. 최고 법관인 대법관이 먼저 나서서 재판과 사법부 독립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나서도 모자라다”면서 “그럼에도 대법관 전원은 일치단결해 ‘대법원 판결은 한 점 부끄럼이 없다’며 의혹을 제기한 국민들을 향해 겁을 주고, 언론을 이용해 여론전까지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민변은 “무엇보다 KTX 승무원 판결 선고 이후 이를 비관한 승무원은 어린 딸을 남겨 두고 목숨까지 버렸다. 하급심의 승소로 실낱같은 희망을 가진 노동자는 마지막 대법원 판결에 절망하고 말았다”고 짚었다.

오미선 지부장이 피해자발언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법관과 재판연구관들의 집단지성이라는 재판 결과가 사회적 약자인 해고 노동자를 외면한 것도 모자라, 그 재판이 상고법원을 만들기 위해 청와대에 잘 보이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에 전 국민이 경악했다”며 “그러나 이를 반성하기는커녕, 재판에 아무런 의혹이 없다고 강변하는 대법관들의 주장에 우리는 절망을 넘어 분노한다”고 개탄했다.

민변은 “대법관들은 해명자료를 철회하고, 재판거래 의혹이 된 개별사건 해명 대신 진상규명과 수사협조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대법원은 재판거래 의혹의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 오미선 전 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지부장의 절규

오미선 지부장이 피해자 발언을 하고 있다.
오미선 지부장이 피해자 발언을 하고 있다.

한편, 지난 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동문 앞에서는 <대법원 사법농단 규탄 법률가 기자회견>이 열렸다. 변호사, 법대교수, 법학자 등 법률가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 사태를 규탄하기 위해 모였다.

이날 기자회견에 오미선 전 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지부장이 참석해 마이크를 잡고 피해자 발언을 했다.

오미선 지부장
오미선 지부장

오미선 지부장은 “13년째 투쟁하고 있는 KTX 승무지부 오미선이다. 저희는 물러설 곳도 없고, 앞으로 더 나아갈 힘도 없어 현재 서울역에서 노숙철야농성을 진행하고 있다”고 현재의 상황을 알렸다.

그는 “지금도 힘들다. 지금 6살짜리 아이가 열이 40도가 나지만 해열제 하나 먹여 놓고 재워 놓고 부랴부랴 (기자회견이 열리는 대법원) 서초에 왔다”고 털어놨다.

오미선 지부장
오미선 지부장

오미선 지부장은 “저의 (13년째 투쟁하고 있는) 이 심정을 어떻게 말로 여러분에게 전달될지 사실 모르겠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려고 제가 글을 써 놓고 오늘 얘기하려고 왔지만, 여러분 또한 KTX 승무원들의 문제가 이번 사법농단 사태가 얼마나 심각하고 문제가 많은지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에 더 이상 얘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특히 “저희는 (KTX 여승무원 해고무효소송) 1심, 2심에서 이겼다. 승소했다. 기뻤다. 다시 KTX 열차로 돌아가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며 그러나 “지난 2015년 2월 26일 저희는 패소했다. 이것이 이번에 청와대와 뒷거래가 있었던 판결이었고, 사법농단의 가장 큰 피해자가 KTX 승무원이라는 게 밝혀졌다”고 분개했다.

2008년부터 시작된 법정 투쟁에서 1심과 2심 법원은 해고승무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015년 2월 대법원은 해고 승무원들이 철도공사의 직원이라고 판단한 원심을 뒤집고 파기환송했다.

오 지부장은 “저희는 (해고) 사건만 (대법원) 패소만 없었다면, 지금 현재 KTX 열차에서 생명안전업무를 담당하는 승무원으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며, 3년 동안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은 것 같은 가처분 소송을 받아가며 힘든 고통스러운 하루하루 보내지 않았을 것이며, 저희는 친구 한명을 잃지 않았을 것”이라고 절규하며 “이번 사태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패소 판결 직후 2015년 3월 해고된 여승무원 A씨가 세 살 아이를 남겨두고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27세에 해고돼 당시 36세였다.

또한 대법원 판결로 해고 승무원들은 거액의 빚을 떠 앉게 됐다. 이들이 1, 2심에서 승소해 받은 8640만원의 임금은 대법원 패소 판결로 오히려 부당이득이 돼 반환해야 했기 때문이다. 철도공사는 2017년 1월 KTX 해고 승무원 33명에게 1인당 1억원에 달하는 가처분 지급 임금을 반환하라는 법원의 지급명령을 보냈다.

오미선 지부장
오미선 지부장

오미선 지부장은 “많이 힘이 빠지고 지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저희와 함께하고 도와주신 다면, 여기계신 기자분들이 저희의 상황을 이 시국을 더욱 적나라하게 국민들에게 알려주신다면 저희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오 지부장은 “어제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큰 키를 가지고 있는 분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호소 드리고 저희 문제 빠른 시일 안에 해결해 달라고 이야기 했다”면서 “하지만 현재 (대통령으로부터) 어떠한 답변도 듣지 못했다. (한국철도공사) 오영식 사장 또한 어떠한 답변도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오미선 지부장은 “지금 김명수 대법원장도 KTX (해고) 승무원 문제 안타깝고 미안하다고 했을 뿐, 이것에 대한 어떤 해결책도 내놓지 않았다”면서 “더 큰소리로 더 열심히 여러분들이 알려주면 좋겠다. 여러분들이 알려줄 수 있는 동안 저희는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류하경 변호사가 진행했고, 권영국 변호사(경북노동인권센터장), 조승현 방송통신대 교수,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장),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덕우 교수,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남근 변호사, 이재화 변호사 등 법률가들이 참석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저작권자 © 로리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