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외국 국적의 부부가 이혼소송에서 분할해야 할 재산이 한국에 있다면 대한민국 법원이 가사 재판을 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국제재판관할권에 관한 국제사법 제2조가 가사사건에도 적용됨을 분명히 하고, 가사사건에서 국제사법 제2조에 따른 ‘실질적 관련성’ 여부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시한 최초의 사례”라고 판결의 의의를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캐나다 국적의 A씨와 B씨는 2013년 7월 외국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캐나다 퀘벡주에서 거주해 왔다.

B씨는 2013년 11월부터 2015년 5월까지 한국에 체류하다가 캐나다로 돌아간 이후에는 남편이 있는 곳이 아닌 캐나다의 다른 곳에서 거주했다.

이에 A씨는 아내와 별거가 길어지자 2015년 3월 서울가정법원에 이혼 등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혼청구사유는 캐나다 이혼법에서 규정하는 ‘1년 이상의 별거’와 ‘상대방 배우자가 동거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한 경우’를 제시했다.

B씨는 2015년 8월 다시 한국에 입국한 이후 대한민국에서 거주해왔다.

B씨는 이혼소송이 있기 전 아들이 거주하던 고양시 소재 주소를 국내 거소로 신고하고, 한국에서 부동산과 차량을 매수해 사용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A씨와 B씨의 국적과 주소지가 모두 캐나다인 이 사건에 대해 대한민국 법원이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지는지 여부다.

1심은 A씨가 이혼을 청구한 이유가 캐나다 이혼법이 명시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A씨 패소로 판결했다.

하지만 2심은 A씨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고, 대한민국에 소재하는 B씨 명의의 재산 등을 포함해 재산분할을 명했다.

2심 재판부는 “원고와 피고는 적어도 1년 이상 별거 상태에 있었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캐나다 이혼법에 따라 이혼을 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와 피고의 재산비율은 혼인기간, 분할대상 재산 취득 경위와 취득 자금의 출처, 분할대상 재산의 형성과 유지에 대한 기여도 등을 고려해 원고 80%, 피고 20%로 정하고, 분할대상 재산에는 대한민국에 소재한 피고 명의의 아파트, 피고가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아들 명의로 구입한 차량 등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B씨가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원고와 피고의 거주지가 캐나다인 점 등에서 캐나다 법원에서 판단을 받아야 하고, 한국 법원에 재판관할권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 제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캐나다 국적 남편 A씨가 같은 국적을 보유한 아내 B씨를 상대로 낸 이혼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이혼청구를 받아들인 원심을 확정했다고 25일 밝혔다.

재판부는 “재판상 이혼과 같은 사건에서 대한민국에 당사자들의 국적이나 주소가 없어 대한민국 법원에 국내법의 관할 규정에 따른 관할이 인정되기 어려운 경우라도, 이혼청구의 주요 원인이 된 사실관계가 대한민국에서 형성되었고(부부의 국적이나 주소가 해외에 있더라도 부부의 한 쪽이 대한민국에 상당 기간 체류함으로써 부부의 별거상태가 형성되는 경우 등) 이혼과 함께 청구된 재산분할사건에서 대한민국에 있는 재산이 재산분할 대상인지 여부가 첨예하게 다투어지고 있다면, 피고의 예측가능성, 당사자의 권리구제, 해당 쟁점의 심리 편의와 판결의 실효성 차원에서 대한민국과 해당 사안 간의 실질적 관련성을 인정할 여지가 크다”고 봤다.

또 “피고(B)가 소장 부본을 적법하게 송달받고 실제 적극적으로 응소했다면 이러한 사정은 대한민국 법원에 관할권을 인정하는데 긍정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 사건 이혼청구의 당사자 또는 분쟁이 된 사안이 대한민국과 실질적 관련이 있어 대한민국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진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는 이혼소송이 있기 전, 아들이 거주하던 고양시 소재 주소를 국내 거소로 신고하고 대한민국에서 부동산과 차량을 매수해 소유ㆍ사용했으며, 이혼소송에서도 위 주소를 거주지로 주장하며 이송신청을 하는 등 대한민국에 생활의 근거를 두고 실제 거주했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원고와 피고 사이에 주로 다투어졌던 부분은 이혼사유와 관련해 피고가 악의적 유기나 기망 등으로 원고에게 정신적 고통을 입히고 원고의 재산을 편취했는지 여부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피고의 재산이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라며 “따라서 이 사건 분쟁은 대한민국과 실질적으로 깊은 관련이 있다”고 봤다.

또 “피고는 원고와 결혼한 다음에도 수시로 대한민국에 입국해 머물렀고, 대한민국에 아들과 자매가 거주하고 있어 대한민국에서 소송을 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다”고말했다.

재판부는 “캐나다 국적인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스스로 대한민국 법원에 재판을 받겠다는 의사를 명백히 표시해 재판을 청구했고, 피고도 대한민국에서 소송대리인을 선임해 적극적으로 응소했다”며 “이 사건에 관해 상당한 기간 대한민국 법원에서 본안에 관한 실질적인 변론과 심리가 이루어졌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증명이 필요한 사실은 대부분 출입국사실증명, 계약서, 계좌이체 내역 등의 서증을 통해 증명할 수 있어 반드시 캐나다 현지에서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반면 이 사건에 관해 대한민국 법원의 국제재판관할을 부인해 캐나다 법원에서만 심리해야 한다면 소송경제에 심각하게 반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법률관계의 준거법이 캐나다법이라는 사정만으로 이 사건 소와 대한민국 법원의 실질적 관련성이 부정되지는 않는다”며 “국제재판관할권은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병존할 수도 있으므로 설령 이 사건에 대해 캐나다 법원에 재판관할권이 인정되더라도 대한민국 법원의 재판관할권을 인정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한편 대법원 공보관실은 이번 판결에 대해 “국제재판관할권에 관한 국제사법 제2조가 가사사건에도 적용됨을 분명히 하고, 가사사건에서 국제사법 제2조에 따른 ‘실질적 관련성’ 여부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시한 최초의 사례”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 판결은 가사사건 특히 혼인관계사건에서 국제사법 제2조에 따른 ‘실질적 관련성’의 판단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외국인 사이의 이혼사건 등에 대해 하급심 법원에 국제재판관할권 여부를 판단하는 지침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국제사법 제2조(국제재판관할) ①법원은 당사자 또는 분쟁이 된 사안이 대한민국과 실질적 관련이 있는 경우에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진다. 이 경우 법원은 실질적 관련의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 국제재판관할 배분의 이념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원칙에 따라야 한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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