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헌법재판소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합헌 결정했다. 쉽게 말해 사실을 말해도 형사처벌하는 형법 조항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형사처벌하는 형법 제307조 제1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음을 선언한 최초의 결정이다.

형법 제307조(명예훼손)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310조(위법성의 조각)는 “제307조 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OO씨는 2017년 8월 반려견의 치료를 받았는데, 당시 부당한 진료를 받아 반려견이 불필요한 수술을 하고 실명 위기까지 겪게 됐다고 생각해 책이나 정보통신망 등을 통해 반려견의 치료를 담당했던 수의사의 실명 및 잘못된 진료행위 등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자 했다.

그런데 형법 제307조 제1항으로 이를 적시할 경우 형사처벌을 면할 수 없게 되자, 이씨는 위 법률조항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 등이 침해된다면서 2017년 10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씨는 “심판 대상조항은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에 포함시킴으로써, 수사개시와 형사처벌의 위험성에 따르는 위축효과를 통해 표현의 자유, 알권리, 양심의 자유,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좌측부터 이상현 변호사(두루),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 이명선 기자(진실탐사그룹 셜록), 이선민 변호사(두루),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오픈넷 이사), 엄선희 변호사(두루), 손지원 변호사(오픈넷)

김OO씨는 2016년 2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A씨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기소돼, 2018년 1월 부산지방법원에서 명예훼손죄로 벌금 50만원을 선고 받았다.

김씨는 대법원에서 재판 계속 중에 형법 제307조 제1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으나 기각되자, “위 법률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면서 2018년 7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김씨는 “심판대상조항은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는 경우에도 그것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게 되면 처벌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진실한 사실을 표현하고자 하는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그런데 진실한 사실의 적시로서 손상을 입는 것은 ‘사실에 대한 부지를 통해 잘못 형성된 평판’ 즉 ‘허명(虛名)’에 불과하므로 이를 보호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으며, 허명의 보호를 위해 민사적 수단이 아닌 형사적 수단을 동원하는 등 피해의 최소성 및 법익의 균형성도 인정되지 않는다”며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는 25일 재판관 5(합헌) 대 4(위헌)의 의견으로 형법 제307조 1항이 청구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 표현의 자유 침해 여부

헌법재판소는 “오늘날 사실 적시 매체가 매우 다양해짐에 따라 명예훼손적 표현의 전파속도와 파급효과는 광범위해지고 있으며, 일단 훼손되면 완전한 회복이 어렵다는 외적 명예의 특성상, 명예훼손적 표현행위를 제한해야 할 필요성은 더 커지게 됐다”고 말했다.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금지함으로써 개인의 명예, 즉 인격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입법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며 “또한 이러한 금지의무를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하는 것은 명예훼손적 표현행위에 대해 상당한 억지효과를 가질 것이므로 수단의 적합성도 인정된다”고 밝혔다.

헌재는 “명예는 사회에서 개인의 인격을 발현하기 위한 기본조건이므로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의 우열은 쉽게 단정할 성질의 것이 아닌 점, 일단 훼손되면 완전한 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보호법익(외적 명예)의 특성과 사회적으로 명예가 중시되나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는 더 커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특수성이 있다”고 봤다.

헌재는 “형법 제310조는 ‘심판대상조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처벌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형법 제310조의 적용범위를 넓게 해석함으로써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한 표현의 자유 제한을 최소화함과 동시에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공적인물과 국가기관에 대한 비판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짚었다.

헌재는 “만약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를 고려해 심판대상조항을 전부위헌으로 결정한다면 사람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인 외적 명예가 침해되는 것을 방치하게 되고, 그로 인해 어떠한 사실이 진실에 부합하더라도 개인이 숨기고 싶은 병력ㆍ성적(性的) 지향ㆍ가정사 등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타인으로부터 부당한 피해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손해배상청구 또는 형사고소와 같은 민사ㆍ형사상 절차에 따르지 않은 채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가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것은 가해자의 책임에 부합하지 않는 사적 제재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기에 심판대상조항으로 규제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헌재는 “형법 제310조의 공익성이 인정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타인의 명예가 허명(虛名)임을 드러내기 위해 개인의 약점과 허물을 공연히 적시하는 것은 자유로운 논쟁과 의견의 경합을 통해 민주적 의사형성에 기여한다는 표현의 자유의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심판대상조항은 법익의 균형성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그렇다면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므로 심판청구를 기각하고, 심판대상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주문을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좌측부터 이상현 변호사(두루),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 이명선 기자(진실탐사그룹 셜록), 이선민 변호사(두루),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오픈넷 이사), 엄선희 변호사(두루), 손지원 변호사(오픈넷)

◆ 유남석, 이석태, 김기영, 문형배 재판관의 반대(위헌) 의견

4명의 재판관들은 먼저 “다양한 사상과 의견의 교환을 보장하고 국민의 알권리에 기여하는 표현의 자유는 우리 헌법상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핵심적 기본권이므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불가피하더라도 최소한의 제한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관들은 “표현의 자유의 중요한 가치는 국가ㆍ공직자에 대한 감시와 비판인데, 감시와 비판의 객체가 되어야 할 국가ㆍ공직자가 표현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의 주체가 될 경우 국민의 감시와 비판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봤다.

또 “형사처벌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행위반가치와 결과반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법질서에 의해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행위로 보기 어려워 행위반가치를 인정하기 어렵고, 진실한 사실의 적시로 손상되는 것은 잘못되거나 과장된 사실에 기초한 허명에 불과하므로 결과반가치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관들은 “사실 적시 표현행위로부터 외적 명예를 보호할 필요성이 있더라도, 피해자로서는 형사처벌이 아니더라도 정정보도와 반론보도청구, 손해배상청구와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고 짚었다.

재판관들은 “심판대상조항은 반의사불벌죄이므로, 피해자가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제3자가 공적인물ㆍ공적사안에 대한 감시ㆍ비판을 봉쇄할 목적으로 고발을 통해 진실한 사실 적시 표현에 대해서도 형사절차가 개시되도록 하는 전략적 봉쇄소송마저 가능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재판관들은 “자신의 표현행위로 수사ㆍ재판에 회부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축효과는 발생할 수 있으며, 이후 수사ㆍ재판절차에서 마주하게 될 공익성 입증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는 더 커지게 될 것임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침해의 최소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관들은 “사실 적시 표현행위가 타인에 대한 사적 제재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이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진실한 사실 적시 표현행위를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에 포함시키면 표현의 자유는 형해화될 수 있는 점, 진실한 사실이 가려진 채 형성된 허위ㆍ과장된 명예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를 야기하면서까지 보호해야 할 법익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하면, 법익의 균형성을 충족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관들은 “그러므로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위헌 의견을 제시했다.

◆ 일부위헌 결정의 필요성

4명의 재판관들은 “적시된 사실이 진실이더라도 개인이 숨기고 싶은 병력ㆍ성적 지향ㆍ가정사 등 사생활의 비밀에 관한 내용인 경우 이를 적시하는 것은 헌법 제17조가 선언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될 수 있다”며 “그러므로 ‘적시된 사실이 사생활의 비밀에 관한 것이 아닌 경우’에 허위 사실을 바탕으로 형성된 개인의 명예보다 진실한 사실에 관한 표현의 자유 보장에 중점을 둘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관들은 “법률조항 중 위헌성이 있는 부분에 한하여 위헌 선언하는 것이 입법권에 대한 자제와 존중에 부합하는 점을 고려하면, 심판대상 조항 중 ‘진실한 것으로서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하지 아니한’ 사실 적시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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