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로스쿨 교수들의 법률 의견서, 재판의 불신을 가져온다>

대형로펌과 재판을 하다 보면 저명한 법대 교수들이 작성한 법률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은 법률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사실적인 문제들을 언급하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저런걸 뭐 하러 낼까’ 하는 의구심을 갖기도 했지만, 뭔가 재판에 영향을 미칠 의도에서 제출하는 것이다 보니 반대편 입장에서는 유쾌하지 않다. 의견서를 작성하는 교수들은 둘 중의 하나다. 유명한 대학의 교수이거나, 교수 자신이 해당 분야에서 독보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교수들이다. 대부분 로펌과의 친분관계나 금전적인 대가를 바라고 의견서를 작성해 주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의 지도교수가 김앤장(김&장), 태평양, 광장, 율촌 등의 부탁을 받아서 의견서를 작성해 주는 경우를 가끔씩 봐왔던 터이다. 물론 저명한 교수다 보니 막대한 금액을 지급한다.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교수들이 학회지 등에 논문을 제출하면서 받는 돈에 비하면 큰 금액이다. 더욱이 논문의 형식을 취하면 여러 가지 제약이 있고, 논문의 양도 훨씬 크다. 그러나 의견서는 자신의 의견만 명확히 밝히는 형식이기 때문에, 논문에 비해서 훨씬 수월하게 작성한다. 물론 의견서를 부탁하는 로펌의 취지를 충분히 반영하는 형식이어야 한다.

​새로운 법률적 해석이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는 목적에서 의견서를 제출할 필요성도 있다. 그러나 법원에 제출하는 대부분의 의견서는 그러한 형식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한 쪽의 편을 들어주기 위해서 작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정의 재판과정에서 그동안 논의돼 왔던 쟁점들에 대하여 이러저러한 근거에서 어느 쪽 의견이 타당하다는 형식이다. 그러한 의견서라면 굳이 많은 돈을 주면서 의견서 형식으로 제출할 필요가 없다. 소송대리인인 변호사가 준비서면을 통해서 주장하면서 필요할 경우 그 근거(책이나 논문 등)를 제시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의견서를 제출하려는 것은 해당 재판부에 대한 압박이나 영향력을 가하려는 의도다. 더욱이 해당 교수가 재판장이나 주심판사의 스승이거나 학교 선배인 경우에는 그 영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 자체가 불순한 의도인 것이다. 이러한 경우 재판장은 의견서 형식이 아니라, 준비서면으로 정리해서 제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혹시라도 상대방에게 오해의 소지를 제공해 재판의 불신을 불러올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재판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해당 로펌이 의견서, 또는 참고자료의 형식으로 제출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의견서 제출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 감정인의 감정과 마찬가지로 의견서도 나름 전문적 지식을 갖춘 사람의 의견이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감정은 민사소송에서 허용되고 있는 증거방법의 하나다. 그리고 감정은 일정한 절차가 마련돼 있고, 감정의 결과에 대하여도 감정보완(사실조회)의 형식이나, 감정인을 증인으로 불러서 신문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그러나 의견서를 작성한 교수의 경우는 오로지 자신의 생각만을 밝힌 것이기 때문에 증인으로 출석시켜 진술하는 것도 부적당하다. 과거에 경험한 사실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법률적인 의견을 내놓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의견서에 대하여 반박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준비서면의 형식으로 반박할 수 있지만 해당 교수가 증인으로 출석할 수 없다면 서면질의 형식으로라도 해당 의견에 대한 질의가 가능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일방적으로 작성된 의견서라면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재판부가 의견서를 반환하면서 준비서면으로 제출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마도 이러한 의견서 제출은 미국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미국의 경우 재판에 있어서 일정한 형식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성문법 국가인 우리와 달리 불문법 국가이기 때문이다. 로펌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의뢰인이 의견서 작성의 비용을 지급하기 때문에 아무런 부담이 없다. 더욱이 저명한 전문가의 입을 빌려서 법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재판부를 압박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한결 가벼운 입장이다.

필자의 경험으로 법률 의견서가 재판에 영향을 미쳤던 적은 없다. 그러나 법률 의견서의 제출이 자주 제출되는 것을 보면 일정부분 영향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막대한 비용을 지급하면서 의견서를 제출할 이유가 없다. 어떻든 재판부와 관련이 있는 교수들의 법률 의견서는 자칫 재판의 불신을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새로운 이론의 전개나 법률적 해석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면 법률 의견서의 제출은 지양돼야 한다.

<위 글은 법률가의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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