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국정농단 뇌물공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재판의 최대 관심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양형에 반영할지 여부였다.

실제로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서울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가 설치를 권고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양형에 반영해 이재용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할 것으로 예상하며 줄곧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다.

그런데 지난 1월 18일 서울고법 정준영 재판부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징역 2년6월을 선고하며 법정구속 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양형에 반영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준법감시제도를 도입하거나 강화했다는 사정을 양형에 긍정적인 요소로 반영하는 데에는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은 준법감시제도를 근거로 감형을 하게 되면, 오히려 위법행위에 대한 엄정한 처벌이라는 전제 자체가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횡령), 범죄수익은닉의규제법, 국회증언ㆍ감정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았다. 정준영 재판부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 승계작업과 관련해 86억 8081만원의 삼성전자 자금을 횡령해 뇌물을 제공했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또 이재용 부회장이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최서원과 정유라가 누구인지도 몰랐다”는 증언도 유죄로 판단했다.

서울고법 제1형사부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설치를 권고하고, 전문심리위원을 지정해 이재용 부회장에 집행유예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사회각계의 비판을 들었으나, 결국 양형에 반영하지 않았다. 물론 형량에 대해서는 실망스럽다는 비판을 받았다.

판결 직후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성명에서 “재판 과정에서 기업범죄에 적용하는 준법감시위원회 설치를 총수 개인범죄에 적용하려는 꼼수에 대한 우려가 컸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비록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에서 준법감시위원회 설치와 전문심리위의 평가가 감형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지는 않았지만, 이런 비정상적인 법리가 향후 유사 사례에 적용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음을 우려한다”며 “따라서 사법부는 향후 재벌총수 개인범죄에 대해 이런 작위적 논리를 적용하지 않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판결 직후 참여연대는 “이재용 부회장의 횡령 및 뇌물공여 사건은 우리 경제질서와 사법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재벌총수의 반복적이고도 악질적인 범죄행위이자 정치권력과의 유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며 “이재용 부회장은 이미 대법원에서 86억원 상당의 뇌물 및 횡령액을 인정받아 최대 무기징역에도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양형심리와 관련해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 여부를 점검하겠다고 밝히며 ‘봐주기 판결’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사회적 우려가 높았다”고 밝혔다.

재벌총수에 집행유예 관행을 우려했던 민변(민주사회를 변호사모임)은 판결 전 논평에서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 중인 파기 환송심 재판부는 치료적 사법을 명분으로 삼성에 대한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의 실효성을 감안해, 이재용에 대한 형량을 정하겠다는 취지로 언급했다”며 “그러나 이재용 개인범죄에 대해 무슨 이유로 삼성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의 실효성을 들어 양형을 정해야 하는 지에 대해 전혀 납득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민변(회장 김도형)은 서울고법 판결 직후 “대법원 양형기준에 비추어 낮은 형량을 선고한 아쉬움은 있으나, 재벌총수만 유독 관대하게 집행유예를 선고해 온 악습을 끊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민변은 그러나 “기업이 범죄주체인 기업범죄에서 양형 사유로 반영하는 준법감시제도를 기업에 대한 가해자인 재벌총수 범죄에 적용하는 잘못된 실험에 대해 재판부는 법리적으로 정당하다는 취지로 판단하고 있으나, 기업총수가 기업에 손해를 입히는 재범을 할 우려에 대해 준법감시제도를 잘 갖추었는지를 파악해서 그 가해자 기업총수의 형량을 낮추는 요인으로 반영하려는 것은 양형제도를 남용하는 것으로 평가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서울고법 제1형사부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설치 권고로 온갖 비판을 받았음에도 왜 결론에서 양형에 반영하지 않은 것일까?

2011년 4월 상법이 개정됨에 따라 자산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인 상장회사의 경우 준법통제기준을 마련하고 준법지원인을 둬야 한다. 삼성그룹도 준법통제기준을 마련하고 삼성전자 등 계열사에 준법지원인을 뒀으나, 이 사건 발생을 막지 못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 이후 미국의 준법감시제도 등을 참조해 계열사로부터 독립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출범했고, 기존의 준법감시스템과 결합해 강화된 형태의 준법감시제도를 마련하게 됐다.

정준영 재판부는 “기업총수가 기업범죄 사건이 발생한 잉후에 준법감시시스템을 강화했다는 사정은 형법 제51조 제4호에서 정한 ‘범행 후의 정황’에 해당해 양형조건 가운데 하나로 참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기업범죄 사건이 발생 이후에야 준법감시시스템을 강화했다는 사정이 양형조건 가운데 하나로 참작되기 위해서는 실효성이 매우 엄격하게 검증돼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기업의 준법감시 프로그램이 자발적으로 시행됐든, 법원의 명령에 따라 시행됐든, 그 프로그램은 실효적(effective)이어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인센티브를 바라고 준법감시제도를 자발적으로 운영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위법행위에 대한 처벌 및 위법행위는 적발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전제돼야 한다”며 “기업이 위법행위를 했음에도 솜방망이 처벌이 이루어지거나 적발될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게 되면, 굳이 비용을 들여가면서까지 준법감시제도를 자발적으로 운영할 이유가 없어지게 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준법감시제도를 도입하거나 강화했다는 사정을 양형에 긍정적인 요소로 반영하는 데에는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은 준법감시제도를 근거로 감형을 하게 되면, 오히려 위법행위에 대한 엄정한 처벌이라는 전제 자체가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특히 이 사건과 같이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이 선고된 이후에야 준법감시제도를 강화한 경우에는 더욱 그러한데, 이는 기업들에게 사실관계와 법리적인 쟁점을 모두 다투어 본 이후에 유죄가 인정되면, 그제서야 준법감시제도를 도입하거나 강화해도 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준법감시제도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위법행위의 예방에 있는 것이지, 감형에 있는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재용 부회장 등은 ‘삼성그룹의 강화된 준법감시제도가 실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삼성그룹의 준법감시제도는 실효성 기준을 충족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준법감시제도를 통해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위법행위를 실효적으로 예방하고 감시하기 위해서는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위법행위를 유형별로 최대한 사전에 예상해 발생 가능한 법적 위험을 정의해 놓아야 한다”고 짚었다. 이는 강일원, 홍순탁, 김경수 전문심리위원의 의견이 일치했다.

재판부는 “그런데 삼성그룹의 강화된 준법감시제도는 일상적인 준법감시 활동에 더해 대외후원금과 내부거래 등 이 사건에서 문제된 위법행위에 초점을 맞춰 준법감시 활동을 하고 있으나,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위험을 정의하고 이에 대비한 선제적 위험 예방 및 감시활동을 하는 데까지는 이르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삼성그룹의 준법감시제도에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과거 삼성그룹에서 발생한 위법행위들을 보면 구조조정본부(구조본), 미래전략실(미전실)과 같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조직을 통해 위법행위가 이루어진 사실을 알 수 있는데, 현재 삼성그룹의 준법감시제도에는 위와 같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조직을 통해 위법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대응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지 않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또 “현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삼성그룹의 계열사들 가운데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에스디에스(삼성SDS), 삼성생명보험, 삼성화재해상보험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고, 위 회사들에 대해 준법감시활동을 하고 있는데, 최고경영진의 위법행위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생명보험, 삼성화재해상보험 이외의 회사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관련해 재단법인 K스포츠에 대한 지원에 에스원과 제일기획이 동원된 점,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관련해 다수의 형사사건이 발생한 점 등은 이를 뒷받침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결국 실행행위 단계에서 경영권 승계 관련 불법행위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삼성그룹 계열사 대부분에 대해 실효적인 준법감시가 이뤄져야 할 것인데, 현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조직만으로는 이를 감당하기에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이 있는 서울법원종합청사

재판부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출범 전의 사안이라거나, 법원의 1심 판결이 아직 선고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삼성물산ㆍ제일모직 합병 사건에 대해 조사에 착수하지 않은 부분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준법감시의 본질이 제재가 아닌 예방이며, 준법감시에 있어 해당 기업의 전력(前歷)을 분석하는 것은 향후 발생이 예상되는 법적 위험의 분석과 그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함에 있어 필수적인 작업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정치권력에 뇌물을 제공하는 것은 미연에 차단하기 위해서는 비자금의 조성 자체에 대한 실효적인 감시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1000만원 이상의 대외후원금 지출과 관련해서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에 안건으로 부의해 심의를 거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정치권력에 대한 뇌물 제공 위험이 어느 정도 차단될 수 있으나,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 사건 및 이 사건과 같이 정치권력에 대한 뇌물 제공은 허위 용역계약을 체결하는 등의 방식으로 외관을 가장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대외후원금 지출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대응수단이 마련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삼성전자 대외후원금 심의회의 규정상 ‘부의사항 해당 여부는 형식과 무관하게 실질적으로 판단’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외관이 가장된 경우에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에 의한 심사가 이루어질 여지가 있기는 하나, 정치권력에 뇌물을 제공하기 위해 허위 용역계약을 체결한 관계사 담당자들이 그 실질이 뇌물 제공임을 스스로 밝히면서 이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에 안건으로 부의해 심의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봤다.

재판부는 “오히려 이 사건에서 뇌물 제공을 위한 허위 용역계약 체결이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을 위반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이를 독립된 법적 위험으로 평가해 관리해야 하며, 과거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등에 대한 뇌물공여 사건에서 비자금이 조성된 방법을 삼성 측이 스스로 분석해 그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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