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몰염치한 사면(赦免, pardon),

트럼프의 측근 사면과 박근혜ㆍ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논의를 보면서>

새해 벽두부터 사면논의로 뜨겁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진행된 언론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이 부자유스러운 상태에 놓여 계시는데 적절한 시기가 되면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께 건의드릴 생각이 있다”고 보도되면서다. 그동안 국민의힘 등 보수세력들이 두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언급한 적은 있지만 여권에서 사면을 언급하지는 않았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극도로 분개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면이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뜨거운 감자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나라 사법체계는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에 근거한 사법권의 독립을 주축으로 한다. 거기에 대한 예외가 대통령의 사면권이다. 사법부가 내린 판결을 무위로 돌리는 것이 사면제도다. 즉,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고유권한으로, 국가 형벌권 자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소멸시키거나 형 선고를 받지 않은 자의 공소권을 없애는 특권을 말한다. 우리 헌법 제79조에서 규정하고 있으며 사면의 절차 등에 대하여는 사면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사면은 특정 죄에 대해서 실시하는 ‘일반사면’과 특정한 사람에 대하여 행하는 ‘특별사면’으로 나뉜다.

​일반사면은 대통령령으로 사면대상이 되는 범죄의 종류를 지정하여 일괄적으로 행해지는 대상이 누구냐를 따지지 않는다. 대사(大赦)라고도 한다. 미결, 기결을 묻지 않으며 검거 여부도 묻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미 확정된 기결수에 대해서는 형선고가 효력을 상실하며 미결수에 대해서는 공소권을 소멸시키는 효과를 가져 온다. 일반사면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하고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받는 절차를 거친다. 특별사면은 형의 선고를 받은 특정인을 대상으로 형을 사면하는 것으로 ‘특사(特赦)’라고도 한다. 일반사면과 달리 형이 확정되기 전에는 특별사면을 할 수 없다. 특별사면은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명령한다. 일반사면과 달리 국회의 동의는 필요하지 않다. 특별사면의 방법으로는 ‘잔형(殘刑) 집행면제’와 ‘형선고 실효’가 있다.

​사면권은 삼권분립을 기본으로 한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예외를 규정한 것이므로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만 행사해야 한다. 사면권의 제도적 취지는 사법권의 행사가 경직적으로 행사될 경우 가져올 수 있는 불합리를 해결하면서 국민 통합을 이루려는 목적에서 주어진 권리다. 따라서 대통령 개인에게 주어진 권리가 아니라 대통령의 지위에 주어진 공적인 권한인 것이다. 대통령의 사면권에 대해서 헌법이 규정하고 있지만 그 한계나 제한에 대한 헌법규정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는 권리로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사면권이 갖는 제도적 취지에 어울리지 않는 사면권의 행사는 헌법에 위반되는 것으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위헌선언을 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최근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Donald John Trump)가 임기인 1월 20일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측근들에 대한 무더기 사면을 단행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는 ‘러시아 대선 개입 스캔들’에 연루돼 유죄판결을 받은 측근 조지 파파도풀로스(33) 전 대선캠프 외교정책 고문 등 15명에 대하여, 그리고 던컨 헌터, 크리스 콜린스, 스티브 스톡먼 등 부정부패로 유죄판결을 받은 공화당 소속 전직 연방 하원의원 3명도 포함시켰다. 미국의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면에 대하여 개인적ㆍ정치적인 목적에 의한 것이며 뻔뻔스럽다고 비난하고 있다. 모두 사면의 취지에 어울리지 않는 잘못된 것으로 사면권의 남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트럼프는 자신이 퇴임한 후 겪게 될 민, 형사상의 소송에 대하여 스스로 사면권을 행사(셀프사면, self-pardon)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어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만일 셀프사면이 이뤄진다면 사면권의 무용론까지도 대두될 정도의 후폭풍이 예상된다. 또한 셀프사면의 효력을 인정할 것인지에 대하여 사법적 판단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두 전직 대통령 박근혜ㆍ이명박의 사면에 대하여 논의해 보자. 우선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미 형이 확정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도 조만간 형이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사면의 형식적인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두 대통령의 범죄가 사면에 적합한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개인적인 범죄가 아니라 국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잘못을 범한 경우, 재량권의 행사에 일부 일탈이나 남용 등이 있는 경우에는 사면의 여지가 있다. 물론 헌정질서를 문란케 한 광범위한 범죄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사면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두 전직 대통령은 개인적인 범죄행위다. 자신의 사욕을 챙기는 행위로 일종의 잡범에 해당한다. 일반 국민들이 저지르는 범죄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같은 범죄를 저질렀는데 대통령이라는 지위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면을 허용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일반 국민과 다르게 대우할 합리적인 이유가 제시돼야 한다.

​또한 두 전직 대통령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도 처음부터 재판절차를 농락하면서 불출석하거나, 형이 확정된 상태에서도 사법부를 비난하면서 자신이 정치적인 희생양인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려 들고 있다. 자신의 잘못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 끝까지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자신을 합리화시키려는 사람들을 사면해 준다면 도대체 어떤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국민여론을 살펴봐도 사면에 호의적이지 않다. 지금의 상태에서 사면이 이뤄진다면 우리 법치주의는 중대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으며 앞으로 일반 국민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어떤 명목으로 처벌할 것인지 혼란이 가중되지 않을 수 없다.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 불가피하게 행사돼야 할 사면권이 오히려 국론의 분열을 가져올 것이 뻔한 상태에서 섣부른 사면권의 논의는 중단돼야 한다.

​이낙연 대표가 사면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알 수 없다. 여권이 민심수습을 위한 목적에서 사면논의에 불을 붙인 것인지, 아니면 곧 있을 광역자치단체장의 재ㆍ보궐 선거 등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는 하다. 그러나 사면권의 행사는 대통령에게 주어진 예외적인 권리이므로 그 합목적성이 담보돼야 한다. 국민들이 ‘이정도 했으면 됐다’는 공감대를 형성했을 때 사면을 해도 늦지 않다. 얼마 전 정경심씨 재판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하면서 법정구속 했다. 두 전직 대통령의 범죄와 정경심씨의 범죄를 비교해 보면 지나가는 어린 아이도 그 경중을 알 수 있다.

사면권의 행사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는 하지만 국가기관으로 행사하는 공적인 권리고, 그 제도적 취지가 분명한 이상 어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막연하게 행사해서는 안 된다. 국가권력의 행사는 심사숙고를 거듭한 다음 무겁게 행사해야 비로소 품격과 품위를 갖추게 된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ㆍ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논의는 지금의 상태에서는 시기상조다.

<위 글은 법률가의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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