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합법적인 채권추심업체인 줄 알고 취업했으나 보이스피싱의 ‘현금수거책’ 역할을 한 20대 여성이 보이스피싱 범죄인 줄 몰랐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실형을 선고했다.

울산지방법원에 따르면 A씨는 지난 5월 인터넷에서 ‘고수익’ 알바 광고를 보고 자신의 연락처를 남겼다. 이후 B씨로부터 ‘지정하는 장소에 가서 특정인을 만나 현금을 수거해 지정하는 계좌로 입금하는 업무를 하면 일당 11만원을 주고, 추가로 현금 수거 1건당 30~6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수락했다.

보이스피싱 관리책이었던 B씨는 금융기관 직원을 사칭해 피해자들에게 저금리 대출을 미끼로 현금 공탁을 제안하는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A씨는 B씨의 지시에 따라 13회에 걸쳐 피해자 12명으로부터 1억 7841만원을 받아 챙겼다.

A씨는 11일 동안 근무했는데, B씨의 지시에 따라 현금수거 등을 하면서 수당으로 451만원을 받았다. 검찰은 A씨를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A씨는 “B씨에게 속아 합법적인 채권추심업체에 고용된 것으로 생각하고, 지시에 따라 채무자들로부터 현금으로 변제액을 수령해 회사에 입금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믿었을 뿐, 보이스피싱 범행에 관련된 일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으므로 B씨의 사기 범행에 가담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울산지법 형사9단독 문기선 판사는 최근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한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문기선 판사는 “피고인이 비록 B씨가 저지르는 보이스피싱 범행을 알지 못했더라도, 피해자들로부터 수거한 현금을 다른 사람에게 송금하는 행위가 보이스피싱 범죄의 일부를 실현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심스러운 사정들을 외면 내지 용인한 채 B씨와 순차적ㆍ암묵적으로 공모해 범행으로 나아간 것으로 보이므로, 피고인에게 편취의 범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사회생활을 경험한 일반인이라면 피고인의 업무가 보이스피싱 범죄 등 불법적인 일과 관련돼 있음을 강하게 의심할만한 사정이 다수 있고, 피고인 역시 B씨에게 정상적인 일이 맞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음에도, 피고인은 어느 것도 구체적으로 알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문기선 판사는 “보이스피싱 범행은 총책, 유인책, 관리책, 수거책 등 각 역할을 담당하는 공범들이 긴밀히 연결돼 전체 범죄를 완성하므로, 어느 한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으면 범행의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운데, 피고인은 B씨의 지시에 따라 피해자들로부터 건네받은 현금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계좌로 분산해 입금하는 등 ‘현금수거책’ 역할을 했다”며 “이는 보이스피싱 범행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에 해당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의 행위는 보이스피싱 범행을 용이하게 하는 것을 넘어 범죄 실행행위 중 중요부분을 직접 수행한 것으로 평가되므로, 피고인은 정범의 지위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양형에 대해 문기선 판사는 “피고인의 가담 정도, 피해 규모, 보이스피싱 범죄의 사회적 해악 등에 비추어 볼 때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는 점, 피해자들은 추가 대출이 필요할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었기 때문에 피고인의 범행으로 받은 경제적ㆍ정신적 고통이 매우 컸을 것으로 보이는 점, 그럼에도 피해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는 점, 한편 피고인이 미필적 고의에 의해 범행에 가담하게 된 점, 범행으로 인해 얻은 수익이 그리 높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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