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박근혜 정권에 비판적인 견해를 가졌다는 이유로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정부지원 대상에서 배제한 것은, 헌법상 허용될 수 없는 공권력 행사로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헌법재판소와 헌법소원 청구에 따르면 2013년 9월부터 2014년 5월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로 김기춘 비서실장과 관련 비서관들은 ‘민간단체 보조금 TF’를 운영하면서 이른바 좌편향 인사 및 단체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이들에 대한 정부 지원의 축소ㆍ배제 관련 내용이 포함된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을 구축했고, 그 과정에서 정부 지원 배제 대상 명단을 문체부에 하달했다.

2014년 5월부터 문체부는 대통령비서실에서 전달받은 지원배제 명단을 비롯해, 국정원 정보보고 문건, 국정원에 검토 의뢰해 받은 명단 등을 취합해 가면서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을 계속 보완했다. 여기에 포함된 개인ㆍ단체가 정부지원 대상자로 선정되지 않도록 하는 한편, 지원 배제의 이행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건전 콘텐츠 활성화 TF’를 운영했다.

문체부는 청와대로부터 하달된 지시에 따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직원들에 대해, 각종 문화예술 지원사업에서 이번 헌법소원 청구인들을 배제하라고 지시해 지원을 차단했다.

이에 청구인들은, 피청구인들(박근혜 전 대통령, 김기춘 전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장관 등)의 행위가 청구인들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 표현의 자유,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2017년 4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23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로 비서실장 등이 야당 후보를 지지했거나 정부에 비판적인 활동을 한 문화예술인이나 단체를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사업에서 배제할 목적으로 청구인들의 정치적 견해에 관한 정보를 수집한 행위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직원들에게 청구인들을 문화예술인 지원사업에서 배제하도록 한 지시행위에 대해 위헌 결정을 선고했다.

헌재는 “이 사건 정보수집 등 행위는 청구인들이 과거 야당 후보를 지지하거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비판한 의사표시에 관한 정보를 대상으로 한다”며 “이러한 정치적 견해는 개인의 인격주체성을 특징짓는 개인정보에 해당하고, 그것이 지지 선언 등의 형식으로 공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보호 범위 내에 속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민주적 의사형성의 본질적 요소”라며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도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견해를 표현한 내용에 관한 정보도 두텁게 보호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가 개인의 정치적 견해에 관한 정보를 수집ㆍ보유ㆍ이용하는 등의 행위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한 중대한 제한이 되므로 이를 위해서는 법령상의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헌재는 “그런데 정부가 문화예술 지원사업에서 배제할 목적으로 문화예술인들의 정치적 견해에 관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수권하는 법령상 근거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 사건 정보수집 등 행위는 법률유보원칙에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정보수집 등 행위는 청구인들의 정치적 견해를 확인해 야당 후보자를 지지한 이력이 있거나, 현 정부에 대한 비판적 의사를 표현한 자에 대한 문화예술 지원을 차단하는 위헌적인 지시를 실행하기 위한 것으로, 목적의 정당성도 인정할 여지가 없어 헌법상 허용될 수 없는 공권력 행사”라고 판단했다.

표현의 자유 침해와 관련해 헌재는 “집권세력의 정책 등에 대해 정치적인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정치적 자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며, 화자의 특정 견해, 이념, 관점에 근거한 제한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고 해로운 제한”이라며 “그런데 지원배제 지시는 법적 근거가 없으며, 목적 또한 정부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가진 청구인들을 제재하기 위한 것으로 헌법의 근본원리인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므로, 청구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평등권 침해에 대해 헌재는 “지원배제 지시는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표현한 청구인들을, 그러한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지 않은 다른 신청자들과 구분해 정부 지원사업에서 배제해 차별적으로 취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헌재는 “헌법상 문화국가원리에 따라, 정부는 문화의 다양성ㆍ자율성ㆍ창조성이 조화롭게 실현될 수 있도록 중립성을 지키면서 문화를 육성해야 함에도, 청구인들의 정치적 견해를 기준으로 이들을 문화예술계 지원사업에서 배제되도록 한 것은 자의적인 차별행위로서 청구인들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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