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검찰의 ‘법관사찰’ 의혹을 안건으로 상정해 논의할 것을 주장했던 송경근 청주지방법원 부장판사가 8일 공개의견 표명을 자제한 법관대표회의의 뜻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현재의 예민한 정치적 상황이 지나가고 이 문제를 보다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시기가 되면,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진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청주지법 송경근(사법연수원 22기) 부장판사는 이날 법원 내부통신망(코트넷)에 ‘전국의 법관대표들께 감사드립니다’는 글을 올렸다.

송경근 부장판사는 “법관 사찰 의혹 문건에 대해 법관대표회의에 ‘원칙적인 의견표명’을 요청했던 한 사람으로서,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정식 안건으로 상정해 진지하게 논의해 주신 전국의 법관대표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송 부장판사는 “결론은 제가 지난 주 수요일 밤 ‘의견표명 요청’ 글을 쓰면서 예상했던 대로 됐지만, 저는 법관대표회의의 모습이 ‘법관과 재판의 독립’이란 가치와 그 실현방법에 관한 다양한 생각들을, 여러 측면에서 되새기고 상호 비교ㆍ검토해보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법원 안에 다양한 다른 생각들이 공존하고 있고, 그것이 공론의 장에서 토론을 통해 자율적으로 여과ㆍ조정ㆍ수용될 있는 건강함이 살아있는 조직임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송경근 부장판사는 “혹시라도 이러한 논의과정에서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 사이에 감정이나 반목이 생겼다면, 이제 다 털어버리고 서로를 비난하는 일은 삼가리라 믿는다”며 “의견표명을 할 것인지 여부는 ‘생각의 차이’일 뿐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송 부장판사는 “아울러 현재의 예민한 정치적 상황이 지나가고 이 문제를 보다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시기가 되면, ‘검찰이 업무상 필요로 판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어떤 경우에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그에 대한 통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해 법관대표회의에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된다”고 제시했다.

송경근 부장판사는 “법관대표회의의 뜻을 깊이 존중하면서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저의 본분에 충실하겠다”며 “아울러 혹시라도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이란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저 자신도 늘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마무리했다.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이용관 사무처장
전국공무원노조 전호일 위원장과 법원공무원들로 구성된 법원본부(법원노조)가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앞서 지난 3일 송경근 청주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코트넷에 “소추기관인 검찰이 이를 심판하는 기관인 법관을 사찰했다고 충분히 의심할 만한 정황이 나왔다”며 “그런데 검찰에서는 ‘판사의 재판 스타일을 파악하여 공소유지를 위한 참고자료를 만든 것’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검찰의 책임 있는 사람 누구도 사과는커녕 유감 표명 없이 당당하다”고 검찰을 비판했다.

송 부장판사는 “이는 단지 (개인정보가 수집된) 해당 법관 개인이나 재판부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며 “대한민국 법관과 재판의 독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로 인해 국민들의 기본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사안”이라면서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논의해 의견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송경근 부장판사는 “우리가 법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말을 해야 할 시간”이라며 “결론적으로 전국법관대표회의에게 법관사찰 의혹과 관련해 ‘법관과 재판의 독립성에 관한 침해 우려 표명 및 객관적이고 철저한 조사 촉구’라는 원칙적인 의견 표명을 해줄 것을 간절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2020년 12월 7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정문 앞에서 휘날리는 법원 깃발이 많이  낡은 모습이었다.
2020년 12월 7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정문 앞에서 휘날리는 법원 깃발이 많이 낡은 모습이었다.

한편, 전날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전체 법관대표 125명 가운데 120명이 참여한 가운데 화상회의로 진행했다. 이른바 검찰의 ‘법관사찰’에 대한 의제도 논의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법관의 독립 및 재판의 공정성에 관한 의안’은 최근 현안이 된 검찰의 법관 정보수집, 이를 계기로 진행되는 정치권의 논란이 법관에 대한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제안됐다”고 밝혔다.

전국법관대표회의에 따르면 찬성토론 주요 논지는 “검찰의 법관 정보 수집 주체(수사정보정책관실)가 부적절하며, 물의야기법관 리스트 기재와 같이 공판절차와 무관하게 다른 절차에서 수집된 비공개자료를 다루고 있는 점에서 법관의 신분상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대토론 주요 논지는 “서울행정법원에 재판이 계속 중이고, 앞으로 추가로 계속될 가능성이 있는 사안으로서, 해당 재판의 독립을 위해 전국법관대표회의 차원의 표명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또한 “이에 관한 전국법관대표회의 의결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고 판단해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대외적으로 공식입장을 표명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현재 서울행정법원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낸 직무집행정지처분취소 소송이 진행 중이다.

법관대표회의는 “찬반 토론을 실시하고, 표결 결과 제주지방법원 장창국 판사가 제출한 원안과 수정안이 제시됐으나 토론 결과 모두 부결됐다”고 전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특히 “결론을 떠나 법관대표들은 법관은 정치적 중립의무를 준수해야 하고, 오늘의 토론과 결론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공통된 문제의식이 있었다”고 밝혔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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