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김성훈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는 4일 “(검찰의) 판사 뒷조사 문건은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위험이 크다”며 “검찰의 법관 개인정보 수집이 법관 개인에 대한 공격의 빌미가 돼 버리면, 법관의 중립성ㆍ공정성이라는 가치는 크게 훼손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그러면서 “현 상황에 대해 전국법관대표회의 또는 법원행정처의 적절한 의견 표명, 검찰의 책임 있는 해명, 재발 방지를 위한 (국회의) 입법적 조치 및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이 있는 서울법원종합청사

김성훈(사법연수원 28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이날 법원 내부통신망(코트넷)에 “현재 문제되고 있는 판사 뒷조사 문건 관련 내용에 대해 침묵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글을 올린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사찰 대신 뒷조사라는 표현을 썼다.

김성훈 부장판사는 단도직입적으로 “(검찰의) 판사 뒷조사 문건은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위험이 크다”며 “이에 관해 논하는 것은 재판의 공정성ㆍ중립성에 해가 되지 않으며, 더 큰 공익에 봉사한다”고 밝혔다.

김 부장판사는 “판사 뒷조사 문건에서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나, 합리적이라는 평가’, ‘검찰에 적대적이지는 않으나’, ‘물의야기법관 리스트 포함’ 등이 눈에 뜨인다”며 “일단 ‘물의야기법관 리스트 포함’이라는 것은 문서작성자(대검찰청 수사정보담당관실)가 어떤 경위로 알게 된 것인지, (사법농단) 수사기록에서 불법적으로 온 것인지 여부에 대해 (검찰은)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훈 부장판사는 “이러한 내용은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며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나, 합리적이라는 평가’에 적용된 판단기준을 결론만 바뀌어 만약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고 비합리적이라는 평가’로 기재돼 있으면, ‘검찰에 적대적이지는 않으나’에 적용된 판단기준을 결론만 바뀌어 ‘검찰에 적대적이나’로 기재돼 있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라고 반문했다.

김 부장판사는 “(재판장이 법정에서) 증거법칙에 충실한 것이, 검찰의 증명책임을 높게 설정하는 것이 검찰에 적대적인 것은 아닐 것이고, (검찰의) 그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검찰이 스스로 재판장을 ‘검찰에 적대적’이라고 판단하면 그 후에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요?”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김성훈 부장판사는 “작년에 모 사건에서 공소장변경을 불허한 재판부에 대해 검찰이 취한 대응과 이후 ‘검찰ㆍ재판부 대충돌’이라는 언론보도가 나온 것이 갑자기 생각난다”고 상기시키며 “참고로 피고인도 형사재판에서 검찰과 대등한 당사자인데, ‘피고인ㆍ재판부 대충돌’이라는 기사가 나오지는 않고, ‘피의자ㆍ검찰 대충돌’이라는 기사는 더더욱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배우자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 사건에서 서울중앙지검의 검사들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김 부장판사는 “(법관 뒷조사) 문건을 보면 그 자체로 문제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건 작성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과 확장성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며 “오늘은 위 문건과 비슷한 항목으로 이 법원 재판부 뒷조사, 내일은 역시 비슷한 항목으로 다른 법원 재판부 뒷조사, 모레는 항목을 확장해 검찰에 적대적인지 여부를 확인해 나가면서 전국 검찰청이 형사 재판부 뒷조사를 하고 대검찰청이 이를 관리하게 되면, 어느 단계에서부터 문제가 되는 것인가요?”라고 문제의 심각성을 짚었다.

김 부장판사는 “공소유지와 관련 없는, 때로는 공개되지 않은 (법관) 개인정보까지 수사기관이 수집하고 있으면, 그러한 정보를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한 피고인과 비교해 볼 때, 당사자 대등의 원칙이 훼손된다”며 “나아가 이것이 법관 개인에 대한 공격의 빌미가 돼 버리면, 법관의 중립성ㆍ공정성이라는 가치는 크게 훼손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지적했다.

왼쪽에 있는 건물이 대법원. 

김성훈 부장판사는 “이미 판사 뒷조사 문건이 공개됐고, 검찰은 공소유지를 위한 것이라고 당당히 주장하고 있는데, 언제든지 뒷조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판사들이 이에 관해 아무 문제를 삼지 않으면, 이후 피고인들이 과연 법원의 유죄 판결에 승복할 수 있을 것인지 심히 걱정이 된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김 부장판사는 “그에 반해 현재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와 관련된 신청절차에서 해당 재판부가 독립해 판단했고, 앞으로 관련 사건을 배당받을 해당 재판부도 그러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해졌다”고 말했다.

김성훈 부장판사는 “현재는 국민이 군주이며, 그 군주가 겁박 받지 않기 위해 일부러 경찰, 검찰, 법원으로 역할을 나누어 형사사법절차를 진행하도록 했는데, 이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하고 법원의 공정성ㆍ중립성이 훼손되면 국민은 다시금 겁박 받는 상태로 갈 것”이라며 “이 문건에 대한 판사들의 사회적 논의 참여는 형사사법절차에 대한 국민의 신뢰 및 국민의 인권 보장이라는 큰 공익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 부장판사는 “판사나 검사나 모두 권력의 세계, 정치의 세계에서 법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선발된 사람들”이라며 “검사가 수사와 기소, 공소유지 과정에서 법의 지배를 약화시키면서 사실상의 권력ㆍ위력ㆍ여론전을 강화시키게 되면, 그 소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제 법의 세계를 지켜야 하는 소명을 받은 자는 외롭게 판사만이 남게 되고, 판사들은 그 특성상 개별적으로 다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집단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로지 개인의 인격과 헌신에 근거해 법의 세계를 지켜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중앙 로비

김성훈 부장판사는 “판사들은 법의 세계의 마지막 수호자로 부름 받은 자이고, 법의 사제”라며 “판사들에게는 물리력도 여론형성력도 그 밖에 어떠한 형태의 무력도 없다. 판사들은 오로지 법의 정신을 이해하고 이를 문장으로 바꾸고 이를 선언하면서 살아가야 할 존재”라고 적었다.

김 부장판사는 “저는 재판진행과 판결문 작성을 성실히 하는 것만으로도 (법관의) 숙명을 다하는 것으로 생각했다”며 “그러나 제도와 법률문화가 재판의 공정성ㆍ중립성을 침해할 위기에 처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토론방에도 글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글을 쓴 이유를 설명했다.

김성훈 부장판사는 그러면서 “현 상황에 대해 법관대표회의 또는 법원행정처의 적절한 의견 표명, 검찰의 책임 있는 해명, 재발 방지를 위한 (국회의) 입법적 조치 및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각 법원에서 대표를 선출한 대표판사들이 모인 회의체다. 오는 7일 ‘전국법관대표회의’ 회의가 예정돼 있다.

김 부장판사의 글 전문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누리꾼들에게 전달되며 주목을 받고 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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