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주관식 시험문제에서 ‘풀이과정을 쓰라’는 지시가 없는 경우, 풀이과정 기재가 없다는 이유로 감점을 한 것은 재량권을 일탈ㆍ남용한 것으로 위법해 취소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A씨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2018년 8월 시행한 2018년도 독학에 의한 학위취득시험 전공심화과정(경영학 전공) 인정시험에 응시했다.

경영학 전공에 관한 독학학위제 전공심화과정 시험은 재무관리론, 경영전략, 투자론, 경영과학, 재무회계, 경영분석, 노사관계론 및 소비자행동론의 총 8과목으로 구성돼 있었다. 각 과목은 객관식 60점(24문항, 각 문항 2.5점)과 주관식 40점(4문항, 각 문항 10점)으로 구성돼 있었다.

시험은 각 과목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 득점한 경우 합격으로 하고, 과목합격을 인정하되 합격 여부만 결정하도록 정했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2018씨 9월 A씨가 취득한 경영분석 과목 시험점수(58.5점)가 합격기준 점수(60점)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A씨에게 경영분석 과목시험 불합격처분을 했다.

A씨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경영분석 과목 1, 2, 4번 주관식 시험문항에 ‘풀이과정을 쓰라’는 지시사항을 표시하지 않아, 문제에서 요구하는 정답만을 답안으로 제출했다”며 “그런데 진흥원은 채점에 있어 답안에 풀이과정이 없다는 이유로 각 5점을 감점했고, 결국 이 과목에서 합격기준 점수에 미달하는 점수를 얻게 됐다”고 주장했다.

A씨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과목 시험 출제 및 채점은 재량권을 일탈ㆍ남용해 위법하다”며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제4행정부(재판장 조미연 부장판사)는 최근 A씨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장을 상대로 낸 ‘독학학위제 시험 불합격 처분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피고는 이 사건 경영분석 과목의 주관식 문제를 출제함에 있어 풀이과정을 기재할 것을 전혀 표시하지 않았다”며 “그런데 ‘주관식 문제’가 반드시 ‘서술형 문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지식의 단순 암기에 따라 특정 용어 등을 묻는 문제 유형인 ‘단답식 문항’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과목 3번 문항 역시 ‘ZETA 모형’을 정답으로 예정하고 있는데, 이 역시 단답식 문제”라며 “이 과목 1, 2, 4번 문항이 문언 자체로 서술형 문제임이 명백하다고 보이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오히려 각 문제들은 명확한 단답식 정답이 예정돼 있는 문제들이므로, 시험에 응시한 수험자로서는 정답만을 기재해도 점수를 획득할 수 있다는 오해의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게다가 피고가 과거 3년간 출제한 이 과목의 주관식 문항에는 풀이과정에 배점이 있는 경우 풀이과정 또는 식을 답안에 기재하라는 안내가 문제에 빠짐없이 부기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험자의 경우 직전 년도 시험을 기준으로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을 것인데, 직전 년도 시험인 2017년 시행된 이 과목에 관해 출제된 총 4개의 주관식 문제 중 1개의 문제만이 서술식 문제였을 뿐 나머지는 모두 단답식 문제였고, 서술식 문제도 ‘풀이과정과 답을 반드시 쓰시오’라고 부기돼 있었다”고 짚었다.

2018년 시행된 이 사건 시험 중 경영분석 과목이 아닌 다른 과목 역시 풀이과정에 배점이 있는 경우 그에 대한 안내가 부기돼 있었다.

재판부는 “기출문제 및 다른 과목의 출제형식이 그렇다면, 수험생은 풀이과정이나 식을 기재하라는 안내가 문제에 부기되지 않을 경우 단답식 문제로 파악해 정답만을 기재해도 득점할 수 있으리라는 신뢰를 하기에 충분하고, 그러한 혼선을 막기 위해 피고는 주관식 문항 출제에서 정답뿐만 아니라 풀이과정을 기재해야 득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내해 수험자가 어떠한 유형의 정답을 기재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했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피고는 이 과목의 주관식 문제에 계산식이나 풀이과정을 쓰라는 등의 안내를 하지 않았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수험자가 정답만을 기재했다고 해서 풀이과정은 알지 못한 채 정답만 기재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이는 시험의 목적에 맞추어 수험생들의 능력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도록 출제된 것이라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의 이 사건 과목 시험의 출제 및 원고 답안 채점행위는 재량권을 일탈ㆍ남용했다고 보인다”며 “따라서 이 처분은 위법하므로 취소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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