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성 질환을 오래 앓아온 배우자의 복부 삽입 튜브가 빠진 것을 방치해 영양결핍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유기치사 사건에서, 법원은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배심원들의 평결을 존중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검찰의 범죄사실에 따르면 A(여)씨는 2004년경부터 B씨와 사실혼 관계로 지내다가 2008년 혼인신고를 했다. 그런데 B씨는 2006년 모야모야 희귀성ㆍ난치성 질병을 진단받은 후, 2009년 뇌경색 수술을 하고, 2010년 7월 뇌출혈로 전신 마비가 돼 거동을 할 수 없어 2016년 10월까지 요양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다가 2016년 11월부터 집에서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요양생활을 하고 있었다.

2017년 7월 경기도 광명시에 거주하던 아파트에서 B씨의 복부에 음식물 섭취를 위해 삽입된 위루관 튜브가 빠졌다. 그런데 A씨는 B씨가 튜브 삽입 수술을 받는 것을 보는 것이 고통스럽고 오랜 병간호를 하는 것에 지쳐 B씨를 그대로 보내주겠다고 마음먹고, 병원으로 호송해 적절한 치료를 받게 하는 등의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5일간 유기했다.

결국 B씨는 영양결핍으로 인한 탈수로 사망했다. 검찰은 “A씨가 질병 기타 사정으로 인해 부조를 요하는 자를 유기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유기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A씨와 변호인은 “피해자를 병원으로 호송하지 않았을 뿐, 계속해 간호했으므로, 피해자를 유기한 것이 아니다. 설령 피해자를 유기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행위는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렸고, 수원지방법원 제12형사부(재판장 김병찬 부장판사)는 최근 배심원들의 평결을 존중해 A씨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배심원 9명 평결 결과, 배심원들은 만장일치 유죄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복부에 삽입된 위루관을 통해서만 제대로 음식물을 섭취할 수 있었다. 피고인은 위루관이 빠진 것을 보고도 피해자를 병원으로 호송해 위루관을 다시 삽입하는 등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조치하지 않았다”며 “이는 피해자의 생존에 필요한 보호를 하지 않은 것으로서 피해자를 유기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으므로, 피고인이 피해자를 유기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또한 “피고인의 행위가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정당행위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이지 않으므로 피고인과 변호인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양형과 관련,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의 배우자로서 피해자의 생존에 필요한 보호를 해야 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그 의무를 다하지 않아 피해자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결과가 초래됐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은 오랫동안 사지가 마비된 피해자를 돌보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고, 위루관을 삽입하는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피고인뿐만 아니라 피해자에게도 힘들 것이라 생각해 피해자를 병원에 호송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 동기에 참작할 만한 정상이 있다”고 봤다.

또 “피고인은 장기간 피해자를 열심히 간호했고, 위루관이 빠진 다음에도 피해자를 병원에 호송하지는 않았지만 상처 부위에 소독약을 바르는 등 계속해 피해자를 보살폈다”며 “유족인 피해자의 동생은 그동안 피해자를 간호한 피고인에게 고마워했고, 피해자의 이모는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다. 피고인이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도 유리한 정상”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사정들과 피고인의 나이, 성행, 환경, 가족관계, 범행 경위, 범행 후의 정황 등 양형의 조건이 되는 여러 사정을 종합해 형을 정한다”고 밝혔다.

양형 의견에서 배심원 1명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 나머지 8명의 배심원들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제시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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