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br>
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대법원의 오만함을 경계한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대법원 판례모음 법고을LX USB 제작사업 예산이 작년 3000만원에서 0원으로 전액 삭감된 것과 관련해서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이 “국회 논의과정에서 잘 살펴달라”고 하자 “절실하게, 3000만원이라도 좀 절실하게 말씀해 달라”고 재촉하면서 “의원님들, ‘한 번 살려주십시오’ 한 번 하세요”라고 발언해 3권 분립 침해 논란을 일으켰다.

위 예산에 대하여 대법원은 “박범계 의원이 마련해 준다는 예산 규모로는 제작이 어렵고, 필요하면 내년에 건의할 계획”이라고 설명하면서 예산을 배정받지 않기로 했다는 뉴스를 전하면서 다시 한 번 박범계 의원을 도마 위에 올렸다.

먼저 박범계 의원의 언행에 불편하고 화가 났었다. 3권 분립 침해논란을 자초했으니 말이다. 박 의원은 ‘아무리 대법관이라 해도 국민을 위해 꼭 필요한 예산이라면 읍소를 해서라도 받아내야 하는 것 아니냐’ 정도의 발언에 그쳤어야 한다.

그런데 더 화가 나는 것은 대법원의 태도다. 문제가 된 예산배정을 거부하고 나섰으니 어안이 벙벙하다. 도대체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국민 위에 군림하겠다는 대법원의 오만하고 건방진 기본적 자세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면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의 업무추진비를 삭감해서라도 해당사업을 꼭 추진하기 비란다. 그렇게 쉽게 포기할 예산이라면 처음부터 신청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며, 꼭 필요한 예산이라면 자존심을 이유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예산은 대법원이나 대법관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모든 국가기관과 공적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 존재한다. 자신들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국민을 위해서 필요한 예산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서 읍소해야 한다. 감히 대법관이나 대법원에 시비를 건다고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대법원이나 대법관도 국민 아래 존재하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조직에 불과하다. 국민에게 필요한 예산을 자신들 마음대로 거부하고 나서는 만용은 어디서 나오는가?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태도다.

국민이 대법원이나 대법관을 존중하는 것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그들이 맡고 있는 자리에 대한 존중과 존경의 표현일 뿐이다. 민주시민으로서 사람이 아니라, 역할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에 따른 것이다.

말로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이니 선공후사(先公後私)니 하고 떠들어대지만 오로지 자신들이나 소속 집단을 위해서 날뛰는 공직자들이 너무 많다. 그 대표가 법원과 검찰조직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신들만 최고라고 생각한다. 다른 공직자들과 자신들은 다르다는 선민의식에 빠져있기도 하다. 그들은 조금만 허점이 보이면 파고들면서 대든다. 그러나 아무리 높아도 국민 위에 존재할 수는 없다. 주어진 권한이 크면 그에 걸맞은 통제와 감시가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만을 낳고 궁극에는 국민들이 불행해진다.

국회의원들은 국민을 위해서 법원과 검찰을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절제된 언행으로 야무지게 꾸짖는 태도를 갖춰야 하는 이유다.

<위 글은 법률가의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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