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노동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는 19일 산업기술유출방지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한 고민정 국회의원 등에 대해 “삼성보호법을 더 강화하자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규탄한다”며 “개정안을 즉각 철회하고, 삼성보호법 개정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에는 건강한 노동세상, 노동건강연대, 다산인권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사단법인 오픈넷, 생명안전 시민넷, 일과건강,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참여연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참여하고 있다.

반올림에서 활동하는 임자운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대책위는 특히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 산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고민정 의원을 직격했다.

대책위가 문제 삼는 고민정 의원의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은 “적법한 방법으로 대상기관의 산업기술을 취득한 후 대상기관의 동의 없이 그 취득한 산업기술을 사용하거나 공개하는 행위를 금지”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제14조제1호의2 신설)

대책위는 “고민정 의원은 이번 산기법 개정안을 ‘삼성전자 국가핵심기술 유출방지법’이라 불렀다”며 하지만 대책위는 “산기법이 삼성을 더 보호하는 법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라며 “삼성과 이 법의 오랜 특수관계에 대해서는 어떠한 고민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대책위는 “산기법은 국가, 기업 등에게 ‘산업기술’ 및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기술의 유출 방지를 위한 책임을 강화하고, 그 기술의 부정한 유출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며 “하지만 삼성은 언젠가부터 이 법을 자사의 기술 인력을 억압하는 수단, 혹은 자사의 기술 탈취를 정당화하는 수단(핀펫 사건), 나아가 자사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 문제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악용해왔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2007년부터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집단 직업병 발병 문제가 불거졌다. 고용노동부의 2009년 위험성 평가 결과, 2013년 특별감독 및 안전보건진단 결과, 2018년 특별감독 결과가 모두, 삼성반도체 공장의 화학물질 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며 “그러자 삼성은 그 공장의 작업환경 관련 자료를 일제히 ‘국가핵심기술 관련 자료’라는 명목으로 은폐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하지만 법원은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산기법 어디에도 그러한 은폐행위를 정당화할 만한 규정은 없었기 때문”이라며 “2017년과 2018년에 잇따라 나온 삼성 ‘안전보건진단 보고서’, ‘특별감독 보고서’ 및 ‘작업환경 측정 결과 보고서’에 대한 정보공개 판결은 그래서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12개 노동ㆍ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는 고민정 의원이 ‘삼성전자 국가핵심기술 유출방지법’이라고 부르는 산업기술법 개정안을 ‘삼성보호법’이라 부른다.

한편 2020년 2월 국회에서는 이 법에 찬성표를 던졌던 민주당, 정의당 의원 15명이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들은 “그 법안에는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문제 조항들이 숨겨져 있었다”, “이 조항들은 지금까지 삼성전자가 일방적으로 했던 주장들과 내용적으로 매우 비슷하다”, “국회의원으로서 의무를 소홀히 했던 점을 반성하며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겠다. 이 법이 올바르게 다시 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박홍근 의원과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지난 2월 24일 국회 기자회견장(정론관)에서 ‘국민의 건강권 지키기 위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독소조항을 담은 산업기술보호법을 통과시킨 것에 대한 반성하는 목소리와 개정 의지를 담은 14명의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김종대, 김종훈, 박용진, 박정, 박홍근, 신창현, 심상정, 여영국, 우원식, 윤소하, 이정미, 이학영, 제윤경, 추혜선 의원 등이다.

당시 우원식 의원은 “삼성에게 직업병 발병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 오랫동안 싸움을 지속해왔던 삼성반도체 공장의 피해자모임인 ‘반올림’에게 부끄럽다”고 사과하면서 ‘삼성보호법’으로 불리는 “산업기술보호법의 재개정”을 약속했다.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는 “그런데 고민정 의원은 이 법이 삼성을 더 보호할 수 있도록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라며 “‘삼성보호법’ 논란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대책위는 “이번 개정안도 악용될 위험이 너무 크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산업기술보호법상 ‘산업기술 침해행위’(제14조)를 저지르면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고(국가핵심기술의 경우. 제36조 제1항), 기술 보유 기관으로부터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 당할 수 있으며(제22조의2), 그 침해행위가 우려된다는 이유만으로 정보수사기관으로부터 어떤 조사나 조치를 당할 수도 있다(제15조).

발언하는 윤소하 의원

대책위는 “이번에 발의된 산기법 개정안은 ‘산업기술 침해행위’로서 ‘적법한 방법으로 대상 기관의 산업기술을 취득한 후 대상기관의 동의 없이 그 취득한 산업기술을 사용하거나 공개하는 행위’를 추가하는 내용”이라며 “이 조항은 산업기술과 관련된 모든 공익적 문제제기를 탄압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예컨대, 삼성전자의 기술 자료를 적법하게 취득한 사람이 그 기술의 운용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어떤 문제점을 발견했다고 가정하자”며 “공장 노동자나 지역 주민의 생명ㆍ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문제라면 당연히 외부에 공개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조항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삼성전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현행 산업기술보호법에도 비슷한 규정이 있다. 역시 작년 ‘삼성보호법’ 사태로 만들어진 제14조 8호다. ‘정보를 제공받은 목적을 벗어난’ 사용ㆍ공개를 처벌하도록 했다”며 “우리는 이 규정에 대해 국민의 표현자유, 생명ㆍ건강권 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대상기관의 동의 없는’ 사용ㆍ공개를 처벌하도록 해 오히려 더 엄격한 규제를 만들었다. 생명ㆍ건강권 같은 더 큰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예외규정도 두지 않았다”며 “정확하게 삼성과 같은 기업들이 두 팔 벌려 환영할만한 규정”이라고 비판했다.

산업기술보호법 대책위원회는 그러면서 “제2의 ‘삼성보호법’ 사태를 바라는가”라고 따졌다.

기자회견문을 발표하는 박홍근 의원

대책위는 “삼성보호법 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았다”며 “첫째는 삼성의 바람대로 법률이 뚝딱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국회의원들은 법률안이 만들어진 의도는커녕 그 내용도 모르고 찬성하기도 한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책위는 “하지만 이번 ‘삼성전자 국가핵심기술 유출 방지법’ 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18명의 국회의원들은 그때 그 국회의원들과 너무 닮아 있다. 제2의 ‘삼성보호법’ 사태를 만들려는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번 개정안을 즉각 철회하고 ‘삼성보호법’ 개정에 나서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앞서 지난 13일 고민정 국회의원은 ‘제2의 삼성전자 핵심기술 유출 방지법’이라며 산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에 공동 발의자로 고민정, 고용진, 김경만, 김성환, 김승원, 김정호, 김진표, 도종환, 문진석, 민형배, 신정훈, 오영환, 윤영덕, 윤준병, 이용빈, 정일영, 정필모, 황희 의원 등 18명이 동참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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