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대법원이 보험금 수령을 노리고 아내가 조수석에 탑승한 승용차를 선착장 방파제 경사로를 따라 바다로 밀어 익사시켰다는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다만 선착장 방파제 경사로에 아내만 남기고 하차하면서 사이드 브레이크를 잠그지 않고 변속기를 중립 상태로 둔 과실로 승용차가 바다에 추락해 조수석에 탑승한 아내가 사망하게 했다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다.

범죄사실에 따르면 A씨는 2018년 12월 31일 해돋이를 보러가자며 아내와 함께 여수시 남면 금오도로 들어가 이날 밤 10시경 미리 물색해 둔 선착장 방파제 끝부분 경사로가 시작되는 곳에 승용차를 주차해 아내와 함께 차 안에 있다가 민박집으로 돌아가자며 차량을 후진하다 추락방지용 난간을 충격하고는 이를 확인한다며 변속기를 중립 상태에 두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잠그지 않고 혼자 하차한 다음, 아내 혼자 조수석에 타고 있던 승용차를 밀어 바다에 추락시키고 구조하지 않아 익사로 사망하게 했다는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제1심은 피고인(A)이 피해자(아내)가 탑승하고 있던 승용차를 밀지 않고서는 승용차가 바다로 추락한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고 판단해 A씨에게 살인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 검찰은 예비적 공소사실로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을 추가했다.

검찰은 “피고인이 후진 중 추락방지용 난간을 충격하고 정차 및 하차하면서 사이드 브레이크를 잠그고 변속기를 주차 상태에 두는 등 사고를 방지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를 게을리 한 채 사이드 브레이크를 잠그지 않고 변속기를 중립상태에 둔 채로 하차해 승용차가 경사로를 따라 굴러내려 가 바다에 추락하도록 함으로써 탑승하고 있던 피해자가 익사로 사망하게 했다”는 내용이다.

항소심은 주위적 공소사실인 살인 무죄, 예비적 공소사실인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을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금고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법원의 현장검증 결과, 변속기 중립-사이드 브레이크 미인가 상태로 정차할 경우 상당시간 동종 승용차가 정차하나 그 상태에서 조수석 탑승자가 상체를 움직이자 승용차가 앞으로 굴러가는 지점 이른바 ‘임계지점’이 발견되는 등 피고인이 밀지 않고서는 승용차가 바다에 추락할리 없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이 경제적으로 다소 어려운 처지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이로 인해 피해자를 살인할 동기가 형성됐으리라는 점을 수긍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봤다.

이에 A씨와 검사 양측이 상고해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다.

대법원 제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9월 24일 양측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A씨의 살인 혐의는 무죄로 판단하고,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금고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사건 2개월 전에 피고인의 권유로 보험계약을 새로 체결함으로써 피해자 사망 시에 지급될 보험금이 피해자 종전 가입 보험(3억 7000만원) 대비 대폭 늘어난 합계 11억 5000만원 내지 12억 5000만원에 이르는 점, 사건 10여일 전에 피해자가 피고인의 권유로 가입한 보험계약의 수익자가 모두 피고인으로 변경된 점, 승용차의 변속기가 중립 상태에 있었고, 사이드 브레이크가 잠기지 않은 상태였던 점 등 의심스러운 사정은 있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인이 피해자만 탑승하고 있던 승용차를 뒤에서 밀어 바다로 추락시켰음을 인정할 만한 아무런 직접적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른바 ‘임계지점’의 존재가 확인돼 변속기나 사이드 브레이크의 상태로부터 살인의 고의를 추단할 수도 없는 점, 임계지점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현장 사정 상 정확한 위치에 정확한 방향으로 승용차를 정차하기 어려워 임계지점에 정차하는 방법으로 범행 여건을 인위적ㆍ의도적으로 조성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또 “피해자의 신체 유류물과 방파제 추락방지용 난간에서 발견된 충격흔이 피고인의 변명에 부합하는 등 피고인이 당황해 변속기 조작 실수를 저질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평소 보험가입 행태에 비추어 사망 시에 지급되는 보험금 금액을 높인 것이 반드시 살인의 고의에 따른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보험수익자 재변경 경위 및 동영상과 문자메시지 등으로 확인되는 피해자의 피고인에 대한 태도 등에 비추어 피해자가 보험수익자 변경을 요구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점 등의 사정까지 더해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피해자의 사망이 피고인의 고의적 범행으로 인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편, 대법원 공보관실은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은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에 의해야 하고, 피고인이 고의적으로 범행한 것이라고 보기에 의심스러운 사정이 병존하고 증거관계 및 경험법칙상 고의적 범행이 아닐 여지를 확실하게 배제할 수 없다면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례 법리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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