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헌법재판소는 가정폭력 가해자인 전 배우자라도 자녀의 가족관계증명서와 기본증명서를 자유롭게 발급 받아서 거기에 기재된 가정폭력 피해자였던 전 배우자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취득할 수 있는 현행 법률 조항에 대해 위헌으로 판단하면서, 법적 공백을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A씨는 배우자(B)의 가장폭력 때문에 이혼하고, 아들을 양육하고 있다. 그런데 B씨는 이혼했음에도 A씨의 아버지를 찾아가 폭행과 상해를 가했다. 특히 B씨는 법원으로부터 A씨에 대한 100미터 이내 접근금지 및 통신수단을 이용한 일체의 접근을 금지하는 피해자보호명령을 받았다.

그럼에도 B씨는 계속해서 A씨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거나, 협박하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수차례 보내는 등 법원의 피해자보호명령을 위반했다. 이로 인해 B씨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으로 징역형 및 벌금형에 처하는 판결을 받았다.

A씨는 가정폭력 가해자인 전 남편이 이혼 후에도 가정폭력 피해자(A)를 찾아가 추가 가해를 행사하려는데 필요한 청구인(A)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취득할 목적으로 자녀의 가족관계증명서 및 기본증명서의 교부를 청구하는 것이 분명한 경우에도 이를 제한하는 규정을 제정하지 않은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의 입법부작위가 청구인(A)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2018년 9월 입법부작위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 사건 법률조항은 주민등록법과는 달리 가정폭력 피해자의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별도의 조치를 마련하고 있지 않아서, 가정폭력 가해자는 언제든지 그 자녀 명의의 가족관계증명서 및 기본증명서를 교부받아서 이를 통하여 가정폭력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8월 28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14조 제1항 본문 중 ‘직계혈족이 제15조에 규정된 증명서 가운데 가족관계증명서 및 기본증명서의 교부를 청구’하는 부분에 대해 위헌선언을 하되, 2021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개정될 때까지 계속 적용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헌재는 먼저 “가족관계증명서 및 기본증명서를 쉽고 편리하게 발급받을 수 있도록 직계혈족과 자녀 등의 편익 증진을 위해 직계혈족에게 가족관계증명서 및 기본증명서의 교부청구권을 부여하고 있는 이 사건 법률조항의 입법목적은 정당하다”고 봤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가족관계증명서 및 기본증명서에서는 민감한 정보도 포함돼 있는데, 이러한 정보가 유출될 경우 의사에 반해 타인에게 알려지는 것 자체가 개인의 인격에 대한 침해가 될 수 있으며, 유출된 경우 피해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도 발생한다”며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족 개인의 정보를 알게 하거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해서는 안 되고, 이들 사이에도 오남용이나 유출의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는 제도를 형성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헌재는 “가정폭력 가해자라고 하더라도 자녀의 이익이나 정당한 알권리의 충족 등을 이유로 자녀 명의의 가족관계증명서와 기본증명서를 청구하는 경우, 자녀 본인의 사전 동의를 얻도록 하거나, 가정폭력 가해자인 직계혈족이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해 추가가해를 행사하려는 등의 부당한 목적이 없음을 구체적으로 소명한 경우에만 발급하도록 하고 그러한 경우에도 가정폭력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삭제하도록 하는 등의 대안적 조치를 마련함으로써 그 해결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헌재는 “이 사건 법률조항으로 말미암아 가정폭력 가해자인 직계혈족이 자녀의 가족관계증명서 및 기본증명서를 청구해 발급받음으로써 거기에 기재돼 있는 가정폭력 피해자인 (전) 배우자의 개인정보가 유출됨으로써 (전) 배우자가 입는 피해는 실로 중대하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에 대해서는 법익의 균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이 법률조항을 위헌으로 선언할 경우 가정폭력 가해자가 아닌 일반 직계혈족까지도 자녀의 가족관계증명서와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없게 되는 법적 공백이 발생하므로, 단순위헌결정을 하는 대신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하되, 2021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법률조항의 위헌성을 제거하고 합리적인 내용으로 법률을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에 대해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이 사건 법률조항이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해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은 관계로, 가정폭력 가해자인 전 배우자라도 직계혈족으로서 자녀의 가족관계증명서와 기본증명서를 사실상 자유롭게 발급 받아서 거기에 기재된 가정폭력 피해자인 청구인(B)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취득하게 되는 위헌성을 지적하고, 이 사건 법률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를 선언함으로써, 입법자에게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특별한 보호조치를 담은 개선입법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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