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11일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이해관계자의 동의를 받아 가택 등을 수색하는 경우 임의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할 것을 경찰청장에게 권고했다고 밝혔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인권위에 따르면 경찰관들은 2019년 8월 1일 19:07경 택배물품 도난 관련 112신고를 접수하고 현장에 출동해 신고자를 만나 청소기가 든 택배 상자가 도난 됐다는 신고사실을 청취한 후, 관리사무소의 CCTV를 확인했다.

신고 전일 도난물품이 배송된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으나, 이후 행방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었다.

작년 7월 15일에도 같은 건물에서 냄비 절도 사건이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해, 동일인의 소행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당시의 CCTV를 추가로 확인했는데, 진정인이 게걸음으로 뭔가 상자를 옮기고, CCTV를 살피는 장면을 확인했다.

이에 경찰관들은 수차례의 방문 끝에 진정인을 만나 현관문을 연 채 복도에 서서 대화를 나누었다. 경찰관이 다른 사람이 들을 수도 있으니 집으로 들어가 얘기하는 것이 어떠냐고 묻자, 진정인은 들어오라며 집 안으로 안내했다.

집 안으로 들어가 택배를 뜯은 빈 상자 1개, 신형 대형 모니터 2개가 연결된 컴퓨터, 라면을 먹다 남긴 냄비 그릇 등을 발견했다. 경찰은 선반에 뜯지 않은 냄비 4개가 있어 물어보니 아버지가 사다준 것이라 해 동의를 구한 후 냄비 사진을 촬영했다.

경찰관들은 CCTV에 녹화된 상황에 대해 질의하자 진정인은 상자를 옮긴 기억이 없다고 진술하는 등 부인했다. 이에 진정인의 동의를 얻어 집 안을 둘러봤으나 집 안에서 도난물품인 냄비와 청소기는 발견할 수 없었다. 당시 집 안의 물건을 만지거나 뒤지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만 소재를 물어봤으며, 가지고 나온 물건 또한 없었다.

진정인은 “거주 중인 오피스텔 내 택배 분실 사건과 관련해 지구대 경찰관이 영장 없이 집을 수색하고, 수색 목적을 설명하지 않았으며, 동의를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어 가는 등 주거의 자유를 침해했다”라는 내용으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담당 경찰관인 피진정인들은 “택배 분실과 관련된 112신고를 접수하고 CCTV를 확인한 후, 수사 상 필요해 진정인의 동의하에 가택을 수색하고 사진을 촬영했다”고 주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당시 피진정인(경찰관)들의 수색에 대해 진정인의 동의가 있었는지 여부를 입증할 어떠한 자료나 정황이 없고, 수색 이후 작성됐어야 할 수색조서나 증명서 또한 작성되지 않은 것이 확인됐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 침해구제제1위원회(위원장 박찬운, 위원 조현욱, 임성택)는 “수사기관이 우월적 지위에 의한 강압적인 수사를 행할 우려가 있으므로, 이 사건과 같은 임의성 여부를 다투는 경우에 있어 그 임의성에 대한 입증책임은 수사기관에 있고, 수사기관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임의성을 증명해야 한다”고 봤다.

인권위는 “피진정인(경찰관)들의 수색은 임의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절차적인 요건을 갖추지 못하는 등 적절한 수사 방법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헌법 제12조 제1항의 적법절차의 원칙을 위배해, 제16조가 보장하는 진정인의 주거의 자유 및 평온을 침해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이에, 피진정인들에게 그 행위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으나, 임의동행과 달리 영장 없는 수색의 경우에는 별도의 임의성 확보 방안이 현행 규정상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은 점, 현재까지의 수사관행상 경찰관의 영장 없는 수색에 대한 입증책임 및 수색 이후 조서 작성 등에 대한 인식이 수사기관 전반적으로 미진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 피진정인들 개인에게 인사상 책임은 묻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유사사례의 재발방지 및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경찰청장에게 관련 제도를 개선할 것과 이 사건 사례를 소속 경찰관들에게 전파할 것을 권고한다”고 제시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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