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변호인’, ‘고소대리인’은 들어봄직한데, 이는 ‘변호사’의 역할에 따른 다른 호칭이다.

법률용어는 일반인이 정확히 알기 어렵기에, 방송과 보도기사에서 상황에 맞는 정확한 법률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헷갈리기 쉬워 오해를 빚거나 의미 전달에 혼돈을 줄 수 있다.

최근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사건 관련해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한 사람의 호칭을 두고 논란이 뜨거웠다. ‘고소인’, ‘피해호소인’으로 부르면, 왜 ‘피해자’로 부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또한 피해를 호소하는 고소인을 돕는 변호사는 ‘고소대리인’인데, 일부 언론보도에서 ‘변호인’으로 표현하는 사례도 볼 수 있었다.

SNS를 이용하는 법률가들은 이런 것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형사법학자인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원장과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을 지낸 채다은 변호사가 이 같은 사례에서 혼동하기 쉬운 법률용어를 쉽게 설명해 놓아 소개한다.

특히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형사법학 권위자인 한인섭 원장은 박원순 의혹사건의 경우 예민한 부분임에도 서슴지 않고 의견을 개진했다. 그는 ‘피해자 = 피해고소인 = 피해주장자 = 피해호소인’은 같은 범주라고 밝혔다. 쉽게 말해 ‘피해호소인’으로 불러도 된다고 했다.

또한 고 박원순 시장의 경우를 접목해 보면 ‘가해자’로 불러서는 안 되고, ‘피고소인’ ‘피신고인’이 합당하다고 했다. 이에 대한 한 원장의 설명이 눈길을 잡아끈다.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 지낸 채다은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 지낸 채다은 변호사

먼저 대한변협 대변인을 지낸 채다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월인 대표)는 지난 7월 23일 페이스북에 ‘변호인’과 ‘고소대리인’을 구분해 바로잡아 쓰면 좋겠다는 글을 올렸다.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중재 자문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채다은 변호사는 “피해자 측에게는 변호인이라는 말을 쓸 수 없다”며 “‘변호인’이란 형사사건의 피의자나 피고인을 변호하는 사람에게 쓰는 말”이라고 쉽게 설명했다.

범죄혐의로 수사기관의 수사대상이 되는 피의자나, 검사의 공소제기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피고인을 돕는 사람이 ‘변호인’이다.

채다은 변호사는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를 돕는 사람은 ‘고소대리인’이라고 하거나, ‘대리인’ 혹은 ‘변호사’라고 칭해야 맞다”며 “그런데 대부분의 언론에서 변호인이라는 표현을 마구잡이로 쓰고 있고, 일부 변호사들도 구분 없이 쓰고 있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채다은 변호사는 “기사 내용 중 ‘변호인’이라고 쓰여 있어, 피의자 측 인물로 추정하고 읽다보면 앞뒤 말이 안 맞아서 몇 번을 다시 읽어보게 된다”며 “고소대리인을 지칭하는 의미인 거 같다. 혼란스럽다”고 적었다.

채 변호사는 “(기사에) 간혹 ‘피해자 변호인’이라고 앞에 피해자를 붙여주면 (그나마 의미를 짐작해) 헷갈리지 않으니 고맙게 여겨진다”고 하면서 “‘변호인’이라는 표현 좀 바로잡아서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사진=페이스북)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사진=페이스북)

이와 함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출신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원장은 지난 7월 19일 페이스북에 <문제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라는 용어>라는 장문의 글을 올리며 법률용어를 간명하게 설명해줬다.

한인섭 원장은 “A가 B로부터 범죄피해를 당했다고 하면서 경찰에 고소했다. 이 상황을 놓고 법률적 측면을 중심으로 말해본다”며 가정해 얘기를 꺼냈다.

형사법학자인 한인섭 원장은 “형사소송법 제223조(고소권자) 범죄로 인한 피해자는 고소할 수 있다. 여기서 ‘피해자’는 피해 입었다고 주장하는 자이고, 그런 사실을 수사기관에 고소한 자다”라며 “그 시점에서 ‘피해자’는 피해고소인인 것이고, 피해주장자로 하거나 피해호소자라 불러도, 다 같은 뜻”이라고 밝혔다.

한 원장은 “즉 [피해자=피해고소권자=피해주장자=피해호소인], 뉘앙스 차이는 있겠으나, 같은 범주”라며 “어느 용어는 수상하다고 지탄될 게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치권 등에서 박원순 의혹사건에서 ‘피해호소인’으로 불렀다가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그는 “피해(고소, 주장, 호소)자 측은 피해사실을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증거(인증, 물증 두루 포함)를 제시해 수사기관을 납득시키고, 그에서 출발해 수사기관은 증거를 본격 수집하고, 기소할 경우 유죄를 입증할 책임을 진다”며 “충분히 납득할 정도로 입증하지 못하면, 형사절차에서는 무죄(정확하게는 ‘유죄 아님’ 수준) 판결이 내려진다”고 말했다.

특히 한인섭 원장은 “문제는 A의 상대방 B를 뭐라 지칭하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원장은 “일상생활에서 피해자의 대칭어는 ‘가해자’다. 그런데 헌법상 무죄추정, 증거재판주의 원칙이 확고한데, 누가 피해고소만 하면 B가 곧바로 ‘가해자’로 지칭돼 버린다면, B 입장에선 무척 억울하고, 족쇄가 될 수 있고, 펄펄 뛸 수도 있다”면서 “그래서 형법, 형사소송법에서는 ‘가해자’란 말을 안 쓴다. 헌법에도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라는 단어는 없다”고 설명했다.

한인섭 원장은 “성폭력ㆍ성희롱 상담기관에서 몇 년 책임 있는 위치에서 관여한 적 있다”며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거기선 처음 피해신고를 하는 측을 ‘피해자’로 지칭하다가, 조사하기도 전에 상대방이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불합리점이 심각하게 논의됐다”며 “실제로 조사해보면 ‘피해주장자’가 오히려 가해적인 경우도 없지 않았고, 그 사안 자체로는 피해자이지만 전체 맥락에서는 오히려 상대방이 더 억울하겠다는 사건도 있었다. 그러니 충분히 조사하기 전에는 섣불리 단정하지 말자고 되 뇌이게 된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한 원장은 “그래서 명칭도 ‘피해자’, ‘가해자’ 이렇게 쓰지 않고, ‘신고인’, ‘피신고인’ 이렇게 바꿔 쓰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한인섭 원장은 “왜 명칭이 이토록 중요한가? 어떤 명칭은 사실규명 이전에 그 명칭 자체로 낙인찍는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이라며 “‘가해자’로 지칭되면, 진범으로 성급히 여론상의 단죄가 일어난다. ‘그렇지 않다’고 반론하면 뻔뻔스런 자라는 추가낙인까지 생겨난다”고 짚었다.

한 원장은 “위에서 A는? ‘피해자’라는 호칭은 쓸 수 있고, ‘피해호소인’이든 ‘피해주장자’든 쓸 수 있는 명칭이라 본다. 그 뜻은 ‘피해를 주장하면서 고소하거나 신고하는 자’로 이해하면 된다”고 정리해줬다.

특히 한인섭 형사정책연구원장은 “위에서 B는? 아직 ‘가해자’라 불러서는 안 된다”며 “‘피고소인’이나 ‘피신고인’으로 쓰는 것이 합당하다”고 밝혔다.

한 원장은 “조사를 통해 혐의점이 드러날수록 피의자, 피고인 단계로 진전될 수도 있다. 가해자라 호칭되려면, 어떤 확증의 단계에 이를 때(예컨대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면 사법부에서 ‘범죄의 상당한 혐의’ 정도가 인정된 것), 나아가 1심판결 정도가 났을 때, 더 신중하게는 판결확정 시부터, 지칭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고 봤다.

한인섭 원장은 “다만 위의 설명은 형사절차상의 정리다. A는 처음부터 B를 ‘가해자’라 지칭하고플 것이다. A의 편에 선 분들(가령 신뢰관계자)은 B를 ‘가해자’라 부를 것”이라며 “그건 사회적 언어관습이고 주관적 정의감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 원장은 “하지만 공식적으로 절차에 관여하는 법률가와 공적책임자(정치ㆍ행정ㆍ언론ㆍ수사ㆍ사법)들은 훨씬 신중해야 한다”며 “가해자(실제 범죄자)라는 것은 일방의 주장으로만 되지 않고, 증거와 증언을 제시하고, 합리적 의심과 반대신문의 도전을 이겨낸 후에 호칭되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인섭 원장은 “형사고소는 처벌해 달라는 명시적 행위다. 그만큼 엄중하기에 수사기관의 수사가 개시되고, 또한 증거재판, 변호인조력, 무죄추정원칙, 무고죄 처벌 등도 고려된다”며 “어떤 피해고소인이 단지 ‘사실여부를 알고 싶었다거나, 사과하면 더 추궁 않으려 했다’는 주장한다면, 그건 속마음일 뿐이고, 경찰에 그런 속마음까지 명시적으로 표현하면 진지한 고소로 인정해주지도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따라서 피해자로서 고소한 이상, 형사절차의 용어와 규율원리를 기준삼아 행동하는 것이 적어도 법률가로서는 온당하고 합리적이다”고 짚었다.

형사법학자인 한인섭 원장은 끝으로 “법률용어가 일상용어와 괴리되거나 심각한 오해를 빚기 십상일 때는, 법률용어를 적절히 바꿔주든가, 일반인에게 법률용어 오해 말라고 열심히 알려드리든가, 여하튼 법률용어와 일상용어를 일치토록 노력해야 할 의무를 전문가들은 가진다”고 글을 올린 배경을 설명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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