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오픈넷 손지원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법익균형성을 위반하고 있는 위헌적 법률”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손 변호사는 형법과 정보통신망 명예훼손죄 조항에서 ‘사실의 적시’를 ‘타인의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사실을 적시’로 개정하고, 또 명예훼손죄와 모욕죄의 징역형을 폐지하고, 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 개정할 것을 제안했다.

손지원 변호사
손지원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찬희), 판사 출신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동작을), 사단법인 오픈넷(이사장 황성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지난 7월 28일 오전 9시 40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의 균형적 보호를 위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개정방향”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좌측 아래부터 손지원 변호사, 이찬희 변협회장, 이수진 의원, 정춘숙 의원, 황상기 교수, 윤해성 선임연구위원, 좌측 위에는 정성민 판사, 장철준 교수, 김한규 변호사, 대한변협 왕미양 사무총장, 이충윤 대변인
좌측 아래부터 손지원 변호사, 이찬희 변협회장, 이수진 의원, 정춘숙 의원, 황상기 교수, 윤해성 선임연구위원, 좌측 위에는 정성민 판사, 장철준 교수, 김한규 변호사, 대한변협 왕미양 사무총장, 이충윤 대변인

이날 발제자로 나온 손지원 변호사(변호사시험 2회)는 먼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해와 개정 필요성’을 짚었다.

손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타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발언이라면 ‘진실’, ‘허위’를 불문하고 일단 모두 형사범죄를 구성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 형벌조항의 존재 자체로 인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엄청난 위축효과를 발생시킨다”고 말문을 열었다.

주제발표하는 손지원 변호사
주제발표하는 손지원 변호사

손지원 변호사는 “적시된 사실이 허위이든 진실이든,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에는 일단 모두 해당되기 때문에, 명예훼손 고소를 하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적시된 사실이 ‘허위’임을 구체적으로 입증할 필요가 없으며, 피고소인은 자신이 공표한 사실이 ‘진실’임을 증명해도 피의자 신분을 당장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손 변호사는 “진실한 사실을 고발한 사람들은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를 당하고 형사범죄의 피의자, 수사 대상이 돼 또 다른 피해와 고통을 겪게 되고, 사람들은 이와 같은 위험이 부담스러워 진실한 사실을 말하는 것을 스스로 억제하게 된다”고 말했다.

손지원 변호사
손지원 변호사

손지원 변호사는 “이러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문제는 최근 미투 운동과 맞물려 부각됐다. 공개적이고 상습적인 성폭력 행위나 증거ㆍ증인이 충분해 진실로 쉽게 증명될 수 있는 성폭력 사실을 폭로한 경우에도, 성폭력 가해자가 폭로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협박ㆍ위축시키는 2차 가해를 더욱 손쉽게 해주는 요인으로 지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 변호사는 “성폭력 가해자가 일부분은 사실이고 일부분은 허위라며 상대 여성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 어떤 조항이든 범죄 성립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는 수사기관으로서도 이러한 고소만으로도 수사를 개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미투 폭로 여성들이 이러한 2차 피해를 겪고 있다는 제보가 속출했다”고 전했다.

오픈넷 손지원 변호사, 오픈넷 이사장 황성기 교수
오픈넷 손지원 변호사, 오픈넷 이사장 황성기 교수

손지원 변호사는 “성폭력 가해자들은 최종적으로 고발자들이 명예훼손으로 처벌받는 것을 목표로 한다기보다, 본인들에 대한 폭로를 초기에 진화하는 수단으로 명예훼손 고소를 남발하고 있다”며 “이는 비단 미투 외에도 기업의 비리, 상사의 갑질, 권력자의 부정행위 등을 내부고발하고 공론화시키는 과정에서 다수가 겪고 있는 폐해”라고 지적했다.

손 변호사는 “일반인들 역시 명예훼손죄를 우려해 본인이 직접 경험의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병원, 레스토랑 등에 대한 솔직한 비판적 후기, 소비자불만 글을 실명으로 올리는 것을 꺼려하고, 그 결과 우리나라 인터넷에서는 나쁜 후기를 찾아보기 어렵고, 전략적 마케팅으로 보이는 칭찬 일색의 글들만이 보이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인해 국민의 알권리 역시 심대하게 침해받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주제발표하는 손지원 변호사
주제발표하는 손지원 변호사

아울러 손지원 변호사는 “피고인이 임금을 체불하고 단체교섭에 성실히 임하지 않는 사장에게 항의하기 위해 피켓시위를 동반한 사례, 제약회사의 대리점에 대한 갑질을 고발한 사례조차도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가 있었다”며 “산후조리원 이용 후기를 소비자불만 글로 썼다가, 또 12년 전 미투 운동과 유사한 사안으로 국립대 교수가 여학생을 성추행했다는 내용의 글을 지역여성단체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했다가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당했는데, 최종적으로 다행히도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원심에서는 유죄로 판단했다”는 사례를 소개했다.

손 변호사는 “‘공익 목적’은 법관의 기준의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사실상 (명예훼손죄 고소의 남발에 대한) 제한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면도 있다”고 말했다.

손지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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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원 변호사는 그러면서 “진실을 적시함으로 인해 침해받는 ‘명예’는 처음부터 그 사람이 가질 자격이 없는 명예인데, 이러한 ‘허명(虛名)’을 보호하기 위해 폭로자, 국민의 알권리와 법익들을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균형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즉,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법익균형성을 위반하고 있는 위헌적 법률이라 평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손 변호사는 “세계적으로도 명예훼손죄의 형사범죄화 자체를 폐지해가는 추세이고, 적어도 진실한 사실을 말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 것이 국제법의 원칙”이라며 “미국,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의 선진국들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두고 있지 않으며, 2015년 유엔 자유권 규약 위원회와 2011년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역시 대한민국 정부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주제발표하는 손지원 변호사
주제발표하는 손지원 변호사

또 “2018년에는 국제인권기구인 아티클19(Article19)이 대한민국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비롯한 형사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며 “이와 같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실재적 폐해 및 헌법과 국제 인권기준, 세계적 흐름 등을 고려할 때, 본 조항의 개정은 시급한 과제”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손지원 변호사는 프라이버시 보호 필요성도 짚었다.

손지원 변호사
손지원 변호사

손 변호사는 “적시된 사실이 아무리 진실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숨기고 싶은 성이력 등의 과거, 전과기록, 질병명, 성적 취향 등 내밀한 정보가 공개되는 것은 한 사람의 인격권을 심대하게 침해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봤다.

그는 “이건 단순히 외부적 평가나 명예가 아니라 사생활의 비밀, 사생활 자유의 또 다른 헌법적 보호법익이 침해되는 결과가 생기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는 형사적 제재의 영역에 남겨둬 개인의 프라이버시, 사생활의 비밀을 균형적으로 보호하고 이런 누설행위를 예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지원 변호사
손지원 변호사

손지원 변호사는 대안으로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를 균형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관련 조항들에 대한 4가지 개정 방향을 제시했다.

◆ 형법 제307조 제1항 및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에서 ‘사실’ 부분을 ‘타인의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사실’로 개정.

◆ 형법 제310조 위법성 조각 규정에 ‘진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를 추가하고, ‘오로지 공공에 이익에 관한 때’에서 ‘오로지’를 삭제.

◆ 명예훼손죄와 모욕죄의 징역형 폐지 제안.

◆ 명예훼손죄를 반의사불벌죄에서 반드시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수사가 진행되는 ‘친고죄’로 개정.

정성민 판사, 손지원 변호사, 황성기 교수
정성민 판사, 손지원 변호사, 황성기 교수

‘사실’을 ‘타인의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사실’로 개정에 대해 손지원 변호사는 “모든 일반적인 사실의 적시가 아니라 ‘타인의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사실의 적시’가 있는 표현물에 대해서만 고소 및 수사의 개시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최소한 내부고발과 같은 업무상 행위 기타 사회적ㆍ공적 행위에 대한 사실의 적시들은 초기부터 형사처분 대상에서 배제 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해악을 현저히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손 변호사는 “헌법재판소 등 판례의 판시들을 종합하면 ‘사생활의 비밀’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개인의 전체적 인격과 관계되는 내밀한 영역’으로 해석할 수 있고, 이를 침해하는 사실을 적시한 경우를 본안으로 규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지원 변호사
손지원 변호사

손지원 변호사는 “만일 허위성 혹은 행위자의 허위성에 대한 인식이 증명될 수 없는 사실적시 행위를 예방할 필요가 있다고 보더라도, 이는 민사법상 구제로 해결해야 할 영역으로 봐야 한다”며 “다만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사실적시의 경우에는 진실ㆍ허위 여부와 무관하게 당사자의 명예(외부적 평가)를 넘어 헌법 제17조가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이라는 법익도 추가적으로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비난가능성이 큰 행위이므로 예외적으로 형사적 제재의 영역에 남겨놓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찬희 변협회장이 손지원 변호사의 주제발표를 경청하며 자료집을 살펴보고 있다.
이찬희 변협회장이 손지원 변호사의 주제발표를 경청하며 자료집을 살펴보고 있다.

또 ‘형법 제310조 위법성 조각 조항의 유지 및 수정’ 부분에 대해 손지원 변호사는 “‘사생활’이라는 개념이 확장해석 될 우려가 있고, 또한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관련된 정보라도 일정한 경우 공적인 관심 사안에 해당해 공익목적으로 공표가 이루어질 수 있다”며 “예를 들면 공적 인물의 자질ㆍ도덕성ㆍ청렴성 등의 판단을 위해 간통, 성희롱, 범죄 전과, 재산상황, 가족 문제에 대한 대처 등을 적시하는 경우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를 형사처벌 대상에서 배제하기 위해 위법성 조각을 명시한 현행 규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 변호사는 “예를 들어 미투와 같은 경우에도 대상자가 ‘그건 나의 사생활의 영역’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공익적 목적일 때는 위법성을 조각할 수 있는 규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성민 판사, 손지원 변호사, 황성기 교수
정성민 판사, 손지원 변호사, 황성기 교수

이와 함께 반의사불벌죄에서 ‘친고죄’로 개정과 관련, 현재 형법 제307조, 제309조와 정보통신망법 제70조의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로 규정돼 있다.

손지원 변호사는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더라도 수사기관이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친고죄보다 형벌권의 발동 시기를 앞당겨 위축효과를 더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불러올 수 있다”며 “무엇보다 제3자가 고발이 가능해짐으로써 정치적으로 공적인물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위축시키기 위해 지지자들이나 팬클럽 등이 정치적으로 남용될 수 있는 위험을 매우 크게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지원 변호사
손지원 변호사

손 변호사는 “독일, 일본의 경우에도 친고죄로 규정하고 있는 명예훼손죄가 왜 우리나라에서만 반의사불벌죄로 규정된 것인지 명확한 유래를 찾을 수 없으나, 인격권이라는 개인적 법익을 보호하기 위한 명예훼손 법제의 취지에 맞도록 친고죄로 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손지원 변호사는 “징역형의 폐지가 가장 관건일 것 같다”고 말했다.

손지원 변호사, 황성기 교수
손지원 변호사, 황성기 교수

손 변호사는 “명예훼손의 비범죄화는 국제적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세계 각국은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추세다. 유럽평의회도 회원국들에게 명예훼손의 비형사범죄화를 촉구해 왔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징역형은 어떠한 경우에도 적정한 형이 될 수 없다’고 선언한 바도 있다”고 밝혔다.

손지원 변호사는 “우리나라의 현행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는 징역형을 포함해 상당히 무거운 형벌을 규정하고 있으며, 재판 전 구속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며 “이런 표현행위로 인신구속이 이뤄지는 것이 과연 적정한 수준의 형사적제재인가 생각해 볼 시점”이라고 짚었다.

손지원 변호사
손지원 변호사

손 변호사는 그러면서 “사실 이는 개인의 평판과 명예를 중요시하고 이를 침해하는 행위의 가벌성을 높게 평가하는 사회ㆍ문화적 인식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한 부분이겠으나, 국제인권기준과 국제사회의 권고, 세계적 흐름을 고려해 징역형 폐지의 적극적인 검토를 해볼 시점”이라고 강조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이수진 국회의원이 개회사를 하고, 이찬희 변협회장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인 정춘숙 의원이 축사를 했다.

축사하는 이찬희 대한변협회장
축사하는 이찬희 대한변협회장

오픈넷 이사장인 황성기 한양대 로스쿨 교수가 토론회 사회를 진행했으며, 오픈넷 손지원 변호사가 주제발표를 했다.

토론자로는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장철준 단국대 법과대학 교수, 정성민 판사(사법정책연구원 기획연구위원)가 참여했다.

좌측 아래부터 손지원 변호사, 이찬희 변협회장, 이수진 의원, 정춘숙 의원, 황상기 교수, 윤해성 선임연구위원, 좌측 위에는 정성민 판사, 장철준 교수, 김한규 변호사, 대한변협 왕미양 사무총장, 이충윤 대변인
좌측 아래부터 손지원 변호사, 이찬희 변협회장, 이수진 의원, 정춘숙 의원, 황상기 교수, 윤해성 선임연구위원, 좌측 위에는 정성민 판사, 장철준 교수, 김한규 변호사, 대한변협 왕미양 사무총장, 이충윤 대변인

한편, 토론회 자리에 대한변협 사무총장 왕미양 변호사, 대한변협 대변인 이충윤 변호사 등이 참석해 관심을 나타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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