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이른바 ‘모태신앙’으로서 여호와의 증인 신도임을 자처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해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은 여호와의 증인에 정식으로 입문하는 의식인 ‘침례’를 받지 않은 점 등 여러 의문점을 짚으며 유죄 취지로 판단했다.

이번 대법원 판단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받아들인 2018년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이후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심리미진 등을 이유로 파기환송한 최초의 판결이다.

이 사건은 1심 유죄 → 2심 유죄 → 3심(대법원) 무죄 취지 파기환송 → 파기환송심 무죄 → 대법원 유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로 이어지며, A씨는 6번째 재판을 받게 됐다.

법원에 따르면 현역병 입영대상자인 A씨는 2015년 12월 춘천에 있는 102보충대에 입영하라는 입영통지서를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했다.

하지만 1심은 2016년 4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항소심도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8년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제시한 ‘진정한 양심적 병역 거부’ 기준에 따라 A씨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라며 창원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인 창원지법은 “A씨의 입영거부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봐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아직 정식으로 침례를 받지 않았으나 이른바 ‘모태신앙’으로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인 어머니의 영향 하에 어렸을 때부터 위 종교를 신봉해 왔다”며 “피고인은 정기적으로 집회에 참석하고, 신앙생활과 관련된 각종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또한 각종 선교활동에 참여하고 종교시설에 대한 유지보수에 자원해 봉사하는 등 생활의 상당 부분을 종교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A씨는 입영통지를 받은 후 병무청에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다는 취지가 기재된 진술서를 제출하고, 병역법위반 혐의에 대해 조사를 받으면서 ‘저는 침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하여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것이다. 대체복무가 생긴다면 대체복무를 하겠다는 내용의 서한문을 병무청장에게 보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입영을 거부할 당시 다른 신도들이 병역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선고받아 형 집행을 받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입영 거부에 따른 불이익이 있음에도, 피고인은 병역법위반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환송 전 항소심과 상고심 및 원심법원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며 양심적 병역거부에 정당한 사유가 있음을 인정했다.

사건은 다시 검사의 재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대법원 제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지난 7월 9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심리미진 등을 이유로 무죄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임을 자처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고 있지만, 피고인의 병역거부가 실제로도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따른 것으로서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에 의문이 남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이 ‘모태신앙’으로서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어머니의 영향 하에 어렸을 때부터 해당 종교를 신봉해 왔다고 주장하면서도, 위 종교의 공적 모임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다른 신도들로부터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는 중요한 의식인 침례를 병역거부 당시는 물론이고 원심 변론종결 당시까지도 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비록 침례를 받았는지 여부가 피고인이 주장하는 양심이 그의 내면에 실재하는지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유일한 사항은 아닐지라도, 종교적인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고 있는 이 사건의 특성상 피고인이 밝히는 양심과 불가분적으로 연계된 종교적 신념이 얼마만큼 피고인에게 내면화ㆍ공고화 됐는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단초로 삼기에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더욱이 피고인은 여호와의 증인에 정식으로 입문하는 의식인 침례를 아직까지 받지 않은 경위는 물론이고, 향후 계획 등에 대하여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며 “심지어 위 종교에서 피고인을 정식 신도로 인정하고 있는지, 피고인의 신앙기간과 실제 종교적 활동이 어떠했는지 등을 보여주는 회중(교회)의 사실확인원과 같은 자료조차도 제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처럼 피고인이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라고 하면서도 아직 침례를 받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피고인의 종교적 신념의 형성 여부 및 과정 등에 관해 구체성을 갖춘 객관적 자료를 전혀 제출하지 않고 있어, 피고인의 주장과 달리 가정환경 및 성장과정 등에서 해당 종교의 교리 및 가르침이 피고인의 신념 및 사유체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만큼 지속적으로 공고하게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려운 것은 아닌지, 다른 의식들에도 피고인이 종교적 신념에 따라 임해 온 것이 맞는지 등과 같은 의문들을 불러일으킨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병역거부에 이르게 된 원인으로 주장하는 ‘양심’이 과연 그 주장에 상응하는 만큼 깊고 확고하며 진실된 것인지, 종교적 신념에 의한 것이라는 피고인의 병역거부가 실제로도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따른 것으로서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에 대하여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런데도 원심은 의문점을 비롯해 피고인이 주장하는 종교적 신념의 형성 여부 등에 관해 구체적인 소명자료를 제시하도록 석명을 구한 다음 추가로 심리 판단하지 않은 채 무죄를 선고했다”며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받아들인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이후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심리미진 등을 이유로 파기환송한 최초의 사안”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 판결로써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 주장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전원합의체 판결이 주요한 판단요소로서 앞서 제시했던 바를 중심으로 충실한 심리를 거쳐야 하는 것이지, 이와 같은 심리도 없이 피고인의 변소를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점이 하급심에 분명히 전달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전원합의체가 제시했던 것은 ▲해당 종교의 구체적인 교리가 어떠한지 ▲그 교리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명하고 있는지 ▲실제로 신도들이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있는지 ▲그 종교가 피고인을 정식 신도로 인정하고 있는지 ▲피고인이 교리 일반을 숙지하고 철저히 따르고 있는지 ▲피고인이 주장하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오로지 또는 주로 그 교리에 따른 것인지 ▲피고인이 종교를 신봉하게 된 동기와 경위 ▲만일 피고인이 개종을 한 것이라면 그 경위와 이유 ▲피고인의 신앙기간과 실제 종교적 활동 등이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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