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김정범 변호사(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의 기고 칼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수사심의위원회의 결정, 여론에 좌우되는 수사권의 행사가 염려된다>

김정범 변호사(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정범 변호사(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가관이라는 말은 딱 이런 때 쓰는 말이 아닌가 싶다. 지난 26일 개최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이하, ‘수사심의위’라 한다)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를 중단하고 기소조차 하지 말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쉽게 확보하려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추진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합병비율을 끌어내기 위해 각종 불법행위를 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고 구속영장까지 청구됐다가 법원에서 기각해 구속을 면한 상태였다. 수사팀은 이 부회장에 대해 자본시장법 제178조의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 등을 적용했다. 앞서 이재용 부회장 측은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의 타당성(구속영장 청구와 기소 여부 등)을 검토하기 위하여 수사심의위에 심의를 요청했었다.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수사심의위의 결정은 하나의 의견에 불과할 뿐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검찰은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기소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사심의위의 결정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수사심의위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검찰수사심의위원회(檢察搜査審議委員會)는 검찰의 기소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들이 검찰 수사와 기소 과정 등에 대한 심의를 하는 제도다.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에 대해 수사 계속 여부, 공소 제기 또는 불기소 처분 여부, 구속영장 청구나 재청구 여부 등 수사의 적정성과 적법성을 심의하기 위해 2018년 도입됐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결정은 권고 효력만 있기 때문에 검찰이 이 결정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도가 도입된 이후 검찰은 위원회의 결정을 모두 따른 바 있다. 수사심의위는 검찰이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전문가들에게 심의를 받아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2017년 12월 대검찰청예규 운영지침으로 마련됐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학계, 법조계, 언론계, 시민단체, 문화ㆍ예술계 등 사회 각 분야 전문가 150명 이상 250명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위원은 검찰총장이 위촉한다. 위원회에는 위원장 1인을 두며, 검찰총장이 위원 중에서 위원장을 지명한다. 위원장과 위원의 임기는 각 2년이며, 2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 사건관계인은 수사 중인 검찰청이나 종국처분을 한 검찰청의 검찰시민위원회에 위원회 소집을 신청할 수 있다. 신청을 받은 관할 검찰시민위원회 위원장은 검찰시민심의위원 중 무작위 추첨을 통해 15명을 선정해 부의 여부를 심의할 부의심의위원회를 구성한다. 비공개로 진행되는 부의심의위원회에는 당사자가 출석하지 않고 위원들이 양측에서 제출한 사건 기록, 의견서 등을 통해 수사심의위 개최 여부를 판단한다. 부의심의위원회에서 반대가 결정되면 수사심의위 소집은 무산된다. 부의심의위원회가 심의를 통해 참석 위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수사심의위 소집 결정을 하면 검찰총장은 수사심의위를 반드시 소집해야 한다. 수사심의위는 위원 15명을 무작위 선발해 현안위원회를 꾸려 검찰 수사, 기소 타당성 등을 판단한다. 이때도 10명 이상의 위원이 참석해 사건을 심의하며 양측의 의견서 제출 및 의견 진술을 거쳐 출석위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먼저 수사심의위는 수사의 객관성이 의심되는 경우에 한해서 적용돼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 사건이 수사심의위의 심의가 필요한 만큼 정치적 논란이나 객관성이 의심되는 경우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삼성그룹의 불법승계와 관련해 여러 차례 수사를 받고 기소돼 재판을 받아왔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이 사건 수사는 정치적 고려 없이 수사가 개시되었고, 법과 원칙에 따라서 수사가 진행되었던 상황이다. 오히려 삼성그룹은 총수나 다름없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수사와 기소만은 막아달라고 여론에 호소하는 입장이다. 국민경제의 어려움과 삼성이 차지하는 경제적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 부회장의 부재는 삼성의 국제적인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고, 우리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면서 읍소하는 형국이다. 주로 보수언론들이기는 하지만 주요 언론들도 삼성의 그러한 논리를 그대로 보도하면서 국민여론을 호의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총동원되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그룹의 이 부회장 측은 법 논리로는 상황이 여의치 않자 여론에 호소하는 방편으로 수사심의위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수사심의위의 제도적 취지에 비춰볼 때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수사는 처음부터 수사심의위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사건은 수사자료도 방대하고 전문적인 지식 없이는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 수사심의위 위원들이 짧은 시간 내에 사건을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떻게 보면 위원들이 수사자료 등에 대한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수사심의위 심의를 받는다는 것 자체라 어불성설이다. 법 논리적인 접근이 아니라 국민여론에 호소하는 방식의 심의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삼성 측의 의도는 전문적인 지식과 증거를 파악하고 있는 검사들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정보를 갖지 못한 심의위원들을 들러리로 내세워 수사와 재판에서 벗어나려는 술수에 불과하다.

​편의적으로 수사심의위를 이용한다면 법치주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수사와 재판은 국민여론에 좌우돼서는 안 된다. 법치주의는 여론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국회가 제정한 법에 따라서 절차를 진행하려는 것이다. 예측가능성과 법적안정성을 그 생명으로 한다. 그런데 자신에게 불리한 사건에 대하여는 여론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수사와 기소 여부를 결정해 달라는 것이어서 법치주의 기본원칙에 반한다.

국가가 수사권을 검찰에 부여했으면 그 행사는 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서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 법률에서 정하고 있지 않은 수사심의위를 자의적으로 이용할 수 있고, 법률적인 의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그 결정을 그대로 따르게 된다면 더 이상 법치주의는 유지될 수 없게 된다.

​수사심의위가 악용되면 형평성의 원칙에 반하게 된다. 누구든지 수사심의위를 이용할 수 있다면 검찰에 주어진 수사권은 무력하게 된다. 주관적으로 수사심의위를 이용할 수 있다면 형평성에 반하게 된다. 따라서 수사심의위를 이용할 수 있는 요건을 엄격하게 마련해야 한다. 누구는 경제적인 힘이나 정치적인 권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사심의위를 통해서 처벌을 면하고, 그러한 힘이 없는 경우에는 수사와 재판을 받아야 한다면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평등의 원칙은 공염불이 되고 만다.

수사심의위 자체가 깊은 고민을 통해서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 검찰에 대한 부정적인 국민여론을 희석시킬 목적에서 급조된 기구다. 그만큼 엉성하다는 이야기다. 결국은 이재용 부회장이 수사심의위를 이용하면서 심의위 제도 자체가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다. 검찰이 수사심의위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까닭이다.

<위 글은 법률가의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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