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경찰이 압수수색을 집행하면서 압수영장의 일부분만 보여준 것은 적법절차의 원칙을 위반해 압수수색 상대방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는 국가인권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22일 압수영장 집행 시 압수수색의 상대방이 영장 내용을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영장 제시의 범위와 방법 등에 대해 ‘범죄수사규칙’에 구체적으로 규정할 것을 경찰청장에게 권고했다고 밝혔다.

진정인 A씨는 2018년 8월 경찰로부터 자신의 거주지에 대해 압수수색을 당했다. A씨는 “압수수색영장에 기재된 내용을 확인하고자 했지만, 경찰관이 압수영장을 빼앗아서 영장을 끝까지 볼 수 없었다”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진정인이 영장을 꼼꼼히 열람했고, 영장을 읽을 시간을 5분 이상 줬으나 진정인이 누워서 영장을 읽고 또 읽는 등 영장 집행을 방해해 영장을 회수했다”고 주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결과,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할 당시 촬영된 영상에 따르면, 경찰이 압수수색영장을 제시한 후 진정인이 약 1분간 압수수색영장을 열람하는 모습, 진정인이 압수수색영장 뒷장을 읽으려고 하자 경찰관이 영장을 뺏는 모습, 경찰관이 ‘제시해 주고 고지만 해주면 된다. 읽으라고 주는 것이 아니다. 영장 앞부분만 보여주면 된다’라고 말하는 모습, 진정인이 영장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며 항의하는 모습, 진정인이 압수수색영장을 다시 보여 달라고 말하면서 압수증명서에 서명하지 않는 모습 등이 확인됐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 침해구제제1위원회(위원장 박찬운, 위원 조현욱, 김민호)는 “‘압수수색영장의 제시’는 적법한 권한에 의해 압수수색을 하는 것임을 알도록 해 불필요한 다툼이 발생하는 것을 막고, 압수수색영장에 기재된 물건, 장소, 신체에 대해서 영장에서 정한 방법으로 압수수색을 하도록 함으로써 수사기관의 자의적인 영장집행을 방지하는데 취지가 있으므로, 그 내용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영장을 제시하는 것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그러면서 경찰의 압수수색 절차 위반을 인정했다.

인권위는 “당시 촬영 영상에 따르면, 진정인이 영장을 열람하는 과정에 경찰관이 영장 집행을 하지 못하도록 구체적으로 방해했다고 볼 만한 별다른 정황이 없고, 진정인이 영장을 열람한 시간은 약 1분 정도에 불과했던 상황이었던바, 당시 진정인의 행위가 영장집행을 방해하려는 행위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인권위는 “특히, 압수수색영장 별지에 기재된 내용(압수의 대상 및 방법의 제한)은 압수수색의 상대방이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고, 압수수색영장에 피해자의 진술내용 등 수사정보가 기재되어 있어 이를 수사대상자에게 공개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나머지 내용도 읽지 못하게 하는 행위까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따라서 경찰관의 행위는 헌법 제12조 제3항에서 보장하는 적법절차의 원칙을 위반해 진정인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다만, “피진정인(경찰관)이 압수수색 과정을 영상으로 촬영하는 등 압수수색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와 같은 압수수색영장 제시가 상당부분 수사 관행에서 기인한다고 보여지는 점 등을 감안해 피진정인 개인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기로 하되, 유사사례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소속 경찰서장으로 하여금 소속 직원 대상으로 직무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한다.

인권위는 아울러 “경찰공무원의 수사의 방법과 절차 등을 정하고 있는 현행 범죄수사규칙에서는 영장 집행 시 영장을 반드시 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영장의 제시 범위와 방법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아 이와 같은 사례가 재발되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경찰청장에게 범죄수사규칙에 영장의 제시 범위 및 방법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하도록 할 것과, 규칙 개정 전이라 하더라도 이와 같은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전국 일선 기관에 이 사건 사례를 전파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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