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대법원이 아동의 ‘출생등록 될 권리’를 최초로 인정한 판결을 내렸다.

가족관계등록법의 ‘사랑이법’ 조항에 대한 대법원의 이번 판단으로 미혼부는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보다 간소하게 혼인 외 자녀에 대해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됐다.

대법원에 따르면 A씨는 중국 국적의 여성 B씨와 사실혼 관계에 있다가 2018년 9월 딸을 낳았다. A씨와 B씨는 바로 관할 주민센터에 딸의 출생등록신고를 하려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B씨가 2009년경 중국 당국으로부터 여권갱신이 불허됐고, 그 후 일본 정부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중국 여권이 아닌 일본 정부가 발행한 여행증명서를 이용해 대한민국에 출입했기 때문에 혼인신고에 필요한 서류 등을 발급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출생등록이 거부됐다.

이에 A씨는 2015년 5월 신설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2항에 의해 관할 가정법원에 출생신고를 위한 확인을 신청했다.

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제2항은 “모의 성명ㆍ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부의 등록기준지 또는 주소지를 관할하는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신고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부(父)가 홀로 ‘혼인 외 출생자’에 대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도입된 이른바 ‘사랑이법’ 조항이다.

1심과 2심은 A씨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출생신고에 관한 사무처리지침’(가족관계등록예규) 제8조에 의하면, 부가 혼인 외 출생자에 대한 출생신고를 할 때에는 모의 혼인관계증명서를 제출해야 하고, 그 모가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돼 있는지가 분명하지 않거나 등록돼 있지 아니한 경우에는 모에게 배우자가 없음을 증명하는 공증서면 또는 2명 이상의 인우인의 보증서를 제출해야 출생신고가 가능한데, 딸의 출생신고는 예규에 정한 서류를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리가 거부된 것”이라며 “그러므로 신청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A씨는 “원심은 이 사건 조항의 적용범위를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해석했다”며 대법원에 재항고를 제기했다.

A씨는 “딸의 엄마는 중국 당국의 여권 무효화 조치로 인해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지 못했는데, 이러한 경우도 이 사건 조항이 규정한 ‘모의 성명ㆍ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제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지난 8일 부(父)가 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2항(사랑이법)에 의한 A씨의 ‘혼인 외 출생자에 대한 출생신고 확인’ 신청을 기각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청주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아동에 대해 국가가 출생신고를 받아주지 않거나, 절차가 복잡해 준비해야 할 서류도 많고 시간도 오래 걸려 출생신고를 받아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가 발생한다면 이는 아동의 사회적 신분을 취득할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및 아동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아동은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 될 권리’를 가지고, 이러한 권리는 ‘법 앞에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로서 모든 기본권 보장의 전제가 되는 기본권이므로 법률로써도 이를 침해할 수 없다”며 받아들였다.

아동의 ‘출생등록 될 권리’를 최초로 인정한 판결이다.

대법원은 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제2항(이른바 ‘사랑이법’)의 도입 배경 및 취지를 살폈다.

모(母)의 인적사항을 모르거나 모가 자녀의 출산 후 잠적해 행방을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부(父)가 단독으로 혼인 외 자녀에 대한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고, 후견인 지정 신청, 가족관계등록 창설 및 성본 창설, 인지 등의 복잡한 절차를 거처야 부자관계가 확정될 수 있다.

그 결과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출생신고를 못하고 버려지는 사태마저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즉,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은 필수적인 예방접종을 받지 못하고,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질병 또는 상해로 치료가 필요한 때에도 적절한 의료조치를 받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아동수당 등의 복지혜택도 받지 못하며, 취학연령에 이르러도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됐다.

또한 출생기록이 없어 불법입양, 인신매매 등의 범죄에 노출될 위험도 있다. 이러한 아이들은 세상에는 존재하지만,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법의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사랑이법 조항은 2015년 5월 18일 미혼부의 자녀 출생신고를 간소하게 함으로써 출생 아동의 인권을 보장할 목적으로 가족관계등록법이 개정되면서 신설됐다.

이로써 모의 성명ㆍ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부의 등록기준지 또는 주소지를 관할하는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살핀 재판부는 “이 사건 조항의 취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아동의 출생등록 될 권리를 규정해 아동 인권을 보장함과 동시에 출생신고가 객관적 진실에 부합되도록 함으로써 가족관계등록사무의 정확성을 확보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이 사건 조항에 규정된 ‘모의 성명ㆍ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라 함은 ▲문언 그대로 출생신고에 필요한 모의 인적사항의 전부 또는 일부를 알 수 없는 경우뿐만 아니라 ▲모의 소재불명, 모가 정당한 사유 없이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 제출에 협조하지 않는 경우” 그리고 “이 사건과 같이 모가 외국인으로서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갖출 수 없는 경우 등을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사건본인(딸)과 신청인(A)에 대한 유전자검사결과 등에 의하면, 사건본인은 신청인의 친딸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사건본인의 모(母)는 중국 당국으로부터 여권의 효력을 정지 당하는 바람에 이 사건 예규 제8조에서 정한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구비하지 못했는데, 이는 ‘모가 외국인으로서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갖출 수 없는 경우’로서 이 사건 조항의 적용범위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신청인은 이 사건 조항에 따라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사건본인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은 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 공보관실은 “아동의 ‘출생등록 될 권리’를 최초로 인정한 사례”라며 “하급심에서는 가족관계등록법 제57조 제2항의 적용범위를 좁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이번 대법원 결정에 의해 미혼부는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보다 간소하게 혼인 외 자녀에 대하여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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