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해군본부가 해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집단적으로 게시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사업 반대 항의글을 삭제한 것에 대해, 대법원이 국가에 배상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에 비추어 해군 홈페이지가 정치적 논쟁의 장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하면, 해군본부의 삭제 조치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위법한 직무집행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 등 3명은 2011년 6월 해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사업에 반대한다는 취지의 항의글 100여건을 집단적으로 게시했다.

해군본부가 항의글을 삭제하자 A씨 등은 “해군본부가 해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항의글을 삭제한 조치는 위법한 직무수행”이라며 “작성자의 표현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고 주장하며 국가배상을 청구했다. 청구금액은 1인당 700만원이었다.

1심은 2014년 11월 “담당 공무원이 원고들의 항의글을 해군 홈페이지 운영규정에서 삭제사유로 정한 ‘정치적 목적이나 성향이 있는 경우’로 판단해 삭제한 조치에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항소심은 2015년 8월 원고들의 청구를 일부 받아들여 1인당 위자료 3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민들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넓게 보호하기 위해서는 해군 홈페이지 운영규정에서 삭제사유로 정한 ‘정치적 목적이나 성향이 있는 경우’란 특정 정파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직접 포함된 경우로 한정해야 하고, 원고들의 항의글은 그런 경우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정당한 삭제사유가 없고 공무원의 과실이 인정되므로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국가가 상고해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다.

이 사건의 쟁점은 국가기관이 자신이 관리ㆍ운영하는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을 정부의 정책에 찬성 또는 반대하는 내용인지에 따라 선별적으로 삭제 여부를 결정하는 조치가 허용되는지 여부다.

또 이 사건 삭제 조치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위법한 직무수행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대법원 제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6월 4일 A씨 등 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다시 심리ㆍ판단하라”며 서울중앙지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재판부는 먼저 2013년 3월 21일 헌법재판소가 선고(2010헌바70)한 다음과 같은 결정 내용을 언급했다.

“정부의 정책에 대해 정치적인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정치적 자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며 “자신의 정치적 생각을 합법적인 집회와 시위를 통해 설파하거나 서명운동 등을 통해 자신과 의견이 같은 세력을 규합해 나가는 것은 국가의 안전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우리 헌법의 근본이념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적인 보장 영역에 속한다”

“정부에 대한 비판에 대해 합리적인 홍보와 설득으로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 자체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려는 공권력의 행사는 대한민국 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그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

이어 대법원 재판부는 “그러나 공무원의 행위를 원인으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기 위하여는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때’라고 하는 국가배상법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국가기관이 자신이 관리ㆍ운영하는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에 대해 정부의 정책에 찬성하는 내용인지, 반대하는 내용인지에 따라 선별적으로 삭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배치되므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사건 삭제 조치의 경우에는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위법한 직무집행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그 이유로 재판부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에 관한 국방부장관의 실시계획 승인처분에 주민들이 주장하는 절차상ㆍ실체상 하자는 없는 것으로 판단해 주민들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됐고, 원고들의 항의글은 정부정책에 대한 정치적 반대의사의 표시인데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에 비추어 해군 홈페이지가 정치적 논쟁의 장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의 결정권자는 국방부장관이므로 결정권이 없는 해군본부에 항의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여기에다 “해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은 평소 주로 해군 입대나 복지 관련 정보를 문의하는 글, 해군 복무 중인 가족의 안전을 기원하는 글이 게시됐는데, 여러 명이 정치적 항의글을 100여건 게시한 행위는 일반 이용자들의 인터넷 게시판 이용을 방해하는 부정적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해군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의 목적ㆍ기능에 관한 해군본부나 일반인의 기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여러 명이 정치적 항의글을 100여건 게시한 행위는 해군본부에 대한 ‘인터넷 공간에서의 항의 시위’로서의 성격이 있는데, 해군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집단적으로 항의글 게시함으로써 자신들의 반대의견을 표출하는 항의 시위의 1차적 목적은 달성됐다”며 “삭제 조치는 인터넷 공간에서의 항의 시위의 ‘결과물’을 삭제한 것일 뿐, 자유게시판에 반대의견을 표출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거나 제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집단적 항의글을 게시한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에 대한 제한 정도는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해군본부는 삭제 조치를 하면서 해군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삭제 조치를 하는 이유를 밝히는 입장문을 게시하는 등 공개적으로 떳떳하게 이루어진 조치이며, 국가기관이 인터넷 공간에서 반대의견 표명을 억압하거나 일반 국민의 여론을 호도ㆍ조작하려는 시도가 아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대법원 공보관실은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은 ‘일반적으로 국가기관이 자신이 관리ㆍ운영하는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에 대해 정부의 정책에 찬성하는 내용인지, 반대하는 내용인지에 따라 선별적으로 삭제 여부를 결정하는 것’, 즉 관점에 근거해 차별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공무원의 직무집행이 적절ㆍ타당한지 여부와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하는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로서, 국가배상책임에 관한 일반 법리를 개별사안에 적용하는 판단에서 좀 더 신중해야 함을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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