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손해배상 청구소송 대리인단’(이하 대리인단)은 “오늘의 항소심 판결은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 강기훈에게 다시 한 번 상처를 입힘으로써, 정의의 회복을 부인한 것과 다름 아니다. 참담하며 절망스럽다”며 재판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대리인단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제4민사부(재판장 홍승면 부장판사)는 5월 31일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피해자 강기훈과 가족들이 대한민국과 직접 가해행위자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을 제외한 직접행위자들의 책임을 모두 면제시켜줬다고 밝혔다.

직접가해행위자로는 1991년 유서대필 조작사건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 부장검사 강신욱(2000년 7월~2006년 7월 대법관 역임), 주임검사 신OO, 필적감정인 김OO씨를 지목해 소송을 제기했다.

대리인단은 “유서대필 조작사건이 무엇인가. 1991년 당시 정권의 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국가기관이 유서대필범을 만든 사건이다. 있지도 않은 유서대필범을 만들기 위해 무슨 일이 있었는가. 피고인(강기훈)에게 유리한 증거들을 은폐하고, 가혹행위를 하고, 허위감정을 했다”며 “(손해배상) 피고들은 이 사건의 담당검사이고 국과수 감정인이었다”고 사건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대리인단은 “오늘 법원(서울고법)은 검사의 불법행위 책임을 부인한 1심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을 뿐 아니라, 감정인에 대하여도 실체적 판단 없이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조작 당시로부터 3년 내에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어야 한다는 의미다”라며 “과연 유서대필범으로 복역을 하고, 석방 이후에도 유서대필범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살아야 하였던 강기훈씨가 그 20년 세월 속 어느 시점에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는가?”라고 재판부에 반문했다.

대리인단은 “법원 스스로 그 단계에서 대한민국과 검사, 그리고 감정인에게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했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또 “3년이면 강기훈씨가 아직 유서대필범으로, 희대의 악마로 사법적 평가를 받아서 감옥에 갇혀 있을 때이고, 있지도 않은 유서대필 사건을 수사하고 기소한 검사들은 모두 현직에 있었을 때이기도 하다”고 환기시켰다.

대리인단은 “소멸시효는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법은 보호하지 않는다’는 법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리를 행사하고 싶었어도 할 수 없었던 경우에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는다”면서 “수사기관의 위법행위에 기반해 공소가 제기돼 유죄가 선고되었던 과거사 사건의 경우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되기까지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다는 장애사유를 인정해 소멸시효 완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확립된 법리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강기훈씨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것은 2015년이다.

대리인단은 “재심 무죄확정 판결을 통해 비로소 필적감정의 허위성이 법원에 인정됐던 것인바, 이때까지는 소송을 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사유가 있었다는 것이 기존의 판례”라며 “그런데 이번 항소심 법원이 검사는 물론 필적감정인에 대해서도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판단했다는 것은 기존 판례로부터도 후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리인단은 “많은 과거사 사건에서 사법부는 부정의의 최종적 마감자였다. 그 회복절차 역시 사법부가 부담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오늘의 판결은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강기훈)에게 다시 한 번 상처를 입힘으로써, 정의의 회복을 부인한 것과 다름 아니다. 참담하며 절망스럽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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