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대리기사가 도로에 차를 멈추고 내려 다른 차량들의 진로가 막히게 되자 진로 공간을 확보해주기 위해 음주 상태에서 승용차를 3m 운전한 행위에 대해 법원은 ‘긴급피난’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A씨는 2019년 11월 밤 11시께 혈중알코올농도 0.097% 술을 마신 상태에서 서울 서초구에 있는 대로의 노상에서 3m 구간을 운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 측은 재판 과정에서 “음주운전은 형법 제22조 1항의 ‘긴급피난’에 해당해 위법성이 조각돼 범죄가 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형법 제22조(긴급피난) 제1항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조사 결과 A씨는 음주 상태에서 귀가하기 위해 평소 자주 이용하던 대리운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대리운전기사를 호출했다. 그런데 대리운전기사는 도로를 출발해 잠시 운전하던 도중에 목적지까지의 경로에 대해 A씨와 이견이 생기자, 갑자기 차를 정차한 후 그대로 하차해 이탈했다.

정차 위치는 양방향 교차 통행을 할 수 없는 좁은 폭의 편도 1차로이자 대로로 이어지는 길목이어서, 정차가 계속될 경우 A씨의 차량 뒤쪽에서 대로로 나아가려는 차량과 A씨의 차량 앞쪽으로 대로에서 들어오려는 차량 모두 진로가 막히게 돼, 결국 A씨의 차량은 앞뒤 양쪽에서 교통을 방해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실제로 대리운전기사가 하차 이탈한 직후 A씨의 차량 뒤쪽에서 대로로 나아가려는 승용차의 진로가 막히게 되자, A씨는 조수석에서 하차해 승용차 운전자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다른 대리운전기사를 호출했다.

하지만 얼마 후 A씨의 차량 앞쪽으로도 대로에서 들어오려는 택시까지 나타나자, 비로소 A씨는 진로공간을 확보해주기 위해, 당초 대리기사가 정차시킨 지점에서 3미터 정도 운전해 도로의 가장자리 끝 지점에 차를 정차시켰다.

이에 차량 1대가 통행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고, 이에 따라 택시가 먼저 도로로 들어갔고, 이어서 위 승용차가 대로로 나아갈 수 있었다.

A씨는 차를 정차시킨 후 곧바로 하차해 택시와 승용차의 통행을 도왔다. 그런데 인근에서 몰래 A씨의 운전을 관찰하던 대리운전기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 의해 음주운전으로 단속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6단독 류일건 판사는 최근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2019고정2908)

류일건 판사는 “피고인은 교통방해와 사고위험을 줄이기 위해 편도 1차로의 우측 가장자리로 3m 가량 차를 이동시켰을 뿐, 더 이상 차를 운전할 의사는 없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류 판사는 “당시 피고인의 혈중알코올농도, 차량을 이동한 거리, 도로의 형상 및 타 차량 통행상황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의 행위로 타인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 발생하는 위험은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되는 반면, 피고인의 행위로 확보되는 법익이 침해되는 이익보다는 우월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봤다.

또 “당시 피고인에게는 운전을 부탁할 만한 지인이나 일행은 없었고, 승용차와 택시 운전자 또는 주변 행인에게 운전을 부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또한 다른 대리운전기사를 호출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당면한 교통 방해 및 사고 발생 위험이 급박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류일건 판사는 그러면서 “따라서 피고인이 공소사실과 같이 운전한 행위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어, 형법 제22조 제1항의 긴급피난에 해당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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