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헌법재판소가 “‘정당’은 국가기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권한쟁의심판 당사자능력을 부정했다. 헌법재판소의 첫 판단이다.

또한 작년 12월 국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포함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과 국회의장이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의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 요구를 거부한 것이 정당했는지를 두고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27일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108명이 문희상 국회의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심판 사건에서 공직선거법 본회의 수정안 가결ㆍ선포행위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각하하고, 무제한토론 거부행위에 대해 재판관 5 대 4 의견으로 기각 결정했다.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이 제기한 국회가 국회의장의 2019년 12월 27일 수정안 가결ㆍ선포행위를 통해 공직선거법을 개정한 행위의 권한침해확인 및 무효 청구도 각하했다.

정당의 청구에 대해 헌재는 “정당은 현대의 대의제 민주주의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공적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나, 정당은 국민의 자발적 조직으로, 법적 성격은 일반적으로 사적ㆍ정치적 결사 내지는 법인격 없는 사단인바, 공권력의 행사 주체로서 국가기관의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다”며 “따라서 정당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한쟁의심판절차의 당사자가 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헌재는 “정당은 헌법 제111조 제1항 제4호 및 헌법재판소법 제62조 제1항 제1호의 ‘국가기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권한쟁의심판의 당사자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결국 청구인 자유한국당의 승계인 미래통합당의 심판청구는 청구인능력이 없는 자가 제기한 것으로서 부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헌재 관계자는 “이 결정은 정당이 권한쟁의심판의 당사자능력이 있는 헌법 제111조 제1항 제4호 및 헌법재판소법 제62조 제1항 제1호의 ‘국가기관’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최초로 판단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가 정당의 권한쟁의심판 당사자능력을 부정했으므로, 정당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는 없고, 소속 국회의원이 국회의장 등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거나, 정당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는 등의 방법으로 구제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작년 12월 국회의장이 신속처리대상 안건으로 지정된 원안 내용과는 다른 공직선거법 수정안을 신속처리절차에 따라 본회의에 상정하고 가결ㆍ선포한 것은, 국회의원들의 법률안 제출권, 법률안 심의ㆍ표결권을 침해하고, 자유한국당의 입법절차 참여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위헌ㆍ무효확인을 구하는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의원들은 또 2019년 12월 23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 회기를 30일에서 15일로 단축하자는 안건이 제출되자 무제한 토론을 요구했다. 그러나 문희상 국회의장은 ‘회기결정 건은 무제한 토론에 적합하지 않다’며 실시하지 않고, 찬반토론만 허용한 다음 표결해 회기를 단축하자는 수정안을 가결, 선포한 것도 문제 삼았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공직선거법 개정행위에 대한 청구를 각하했다.

헌재는 “국회의 입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이 적법하기 위해서는 청구인의 권한을 침해했거나 침해할 현저한 위험성이 있어야 한다”며 “그런데 개정된 공직선거법의 내용은 국회의원선거와 관련해 부분적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등 선거와 관련된 내용만을 담고 있어,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방법과 관련될 뿐, 청구인 국회의원들이 침해됐다고 주장하는 법률안 심의ㆍ표결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헌재는 “그렇다면 국회의 공직선거법 개정행위로 인해 청구인 국회의원들의 법률안 심의ㆍ표결권이 침해될 가능성은 없다고 할 것이므로, 이 부분 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며 각하했다.

이와 함께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장이 무제한 토론을 거부하고 회기 수정안을 가결ㆍ선포한 것도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국회의장의 의사진행에 관한 폭넓은 재량권은 국회의 자율권의 일종이므로, 다른 국가기관은 헌법이나 법률에 명백히 위배되지 않는 한 국회의장의 의사절차 진행 행위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헌재는 “무제한토론제도의 입법취지는 ‘소수 의견이 개진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면서도, 의사절차가 지나치게 지연되거나 안건에 대한 처리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을 방지해 ‘안건에 대한 효율적인 심의’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라며 “무제한토론 역시 국회가 집회 후 즉시 의결로 국회의 회기를 정해 해당 회기의 종기가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실시되는 것을 전제로 해당 회기의 종기까지만 보장되도록 국회법에 규정돼 있다”고 밝혔다.

헌재는 “‘회기결정의 건’에 대해 무제한토론이 실시되는 경우, 무제한토론을 할 의원이 더 이상 없거나 무제한토론의 종결동의가 가결되지 않으면, 국회가 해당 회기를 정하지 못하게 된다”며 “결국 ‘회기결정의 건’에 대해 무제한토론이 실시되면, 무제한토론이 ‘회기결정의 건’의 처리 자체를 봉쇄하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당초 특정 안건에 대한 처리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처리를 지연시키는 수단으로 도입된 무제한토론제도의 취지에 반할 뿐만 아니라, 국회법 제7조에도 정면으로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또 “국회가 집회할 때마다 ‘해당 회기결정의 건’에 대하여 무제한토론이 개시돼 헌법 에 따라 폐회될 때까지 무제한토론이 실시되면, 국회는 다른 안건은 전혀 심의ㆍ표결할 수 없게 되므로, 의정활동이 사실상 마비된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국민의 안전이나 경제정책과 관련된 주요 법안 등 국가적으로 반드시 긴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안건의 처리가 지연되면 국회가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며 “그런데 ‘회기결정의 건’이 무제한토론의 대상이라고 보면, 의정활동이 사실상 마비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를 피하기 위해 국회가 매 회기에 회기를 정하는 것을 포기하고 쟁점 안건을 먼저 상정하더라도, 정기회의 경우 100일, 임시회의 경우 30일이 넘는 기간 동안 단 한 건의 안건만을 처리할 수 있게 된다고 봤다.

헌재는 “국회법 제106조의2 제8항은 무제한토론의 대상이 다음 회기에서 표결될 수 있는 안건임을 전제하고 있다”며 “그런데 ‘회기결정의 건’은 해당 회기가 종료된 후 소집된 다음 회기에서 표결될 수 없으므로, ‘회기결정의 건’이 무제한토론의 대상이 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국회법 제106조의2 제8항에도 반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그렇다면, ‘회기결정의 건’은 본질상 국회법 제106조의2에 따른 무제한토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국회의장의 회기 수정안 가결ㆍ선포행위는 청구인 국회의원들의 심의ㆍ표결권을 침해하지 않으므로, 무효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헌재는 “국회법 제95조가 본회의에서 수정동의를 제출할 수 있도록 한 취지는 일정한 범위 내에서 국회의원이 본회의에 상정된 의안에 대한 수정의 의사를 위원회의 심사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본회의의 심의과정에서 표시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의안 심의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며 “그런데 수정동의를 지나치게 넓은 범위에서 인정할 경우 국회가 의안 심의에 관한 국회운영의 원리로 채택하고 있는 위원회 중심주의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선애ㆍ이은애ㆍ이종석ㆍ이영진 재판관은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 재판관들은 “무제한토론은 헌법에 규정된 제도는 아니지만 국회의 소수파가 합법적으로 의사진행을 지연할 수 있는 수단으로 도입된 이상, 국회 소수파 보호의 정신에 비추어 소수파의 무제한토론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현행 국회법에 ‘회기결정의 건’을 무제한토론에서 배제하는 조항 및 관행이 존재하지 않고, ‘회기결정의 건’의 성격도 무제한토론에 부적합하다고 볼 만한 것이 없는 이상, 회기결정의 건에 대해서 청구인 국회의원들의 무제한토론 요구를 거부한 국회의장의 행위는 국회법 제106조의2 제1항을 위반했다”고 봤다.

그러면서 “국회법을 위반한 국회의장의 행위는 결국 ‘회기결정의 건’에 대해서 표결을 실시해 가결을 선포한 국회의장의 행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며 “따라서 이 사건 회기 수정안 가결선포행위는 국회법 제106조의2 제1항을 위반해 청구인 국회의원들의 회기 수정안에 관한 심의ㆍ표결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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