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경찰청장에게 ‘경찰서 유치장 의료처우 개선을 위한 의견표명’을 했다고 27일 밝혔다,

인권위는 질병이나 부상 등으로 인해 의사의 처방에 따른 약제 복용이나 치료 등이 필요한 유치인에게 진료비가 없다는 사정만으로 약제 처방 등을 위한 외부 진료나 검사와 같은 최소한의 의료적 보호조치조차 제공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비인도적이고 가혹한 처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경찰청장에게 유치장 구금 기간 중에도 기본적인 의료 처우가 보장될 수 있도록 유치인 의료처우의 방법 및 절차 등에 대해 관련 법령 및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진정인 A씨는 2018년 12월 현행범으로 체포돼 B경찰서 유치장에 유치됐다. 진정인은 유치장 입감 전에 다쳤던 왼쪽 갈비뼈 골절 부상과 평소 지병인 고혈압과 신경정신과 질환 등에 따른 복용할 약이 떨어져 약을 처방받을 수 있도록 경찰관들에게 요청했다.

경찰관들은 진정인을 경찰서 옆에 있는 병원으로 데리고 나갔으나, 진정인은 병원비가 없어 아무런 진료도 받지 못했다. 경찰관들은 나중에 다시 병원에 데려 가겠다고 했으나,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구치소로 이송시켰다.

이번 의견표명은 경찰서 유치장에 있으면서 병원비가 없어 갈비뼈 골절 등에 대한 진료를 받지 못하였다는 진정에 따라 검토하게 됐다.

인권위는 이러한 상황은 비단 진정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인과 유사한 처지에 있는 다수의 유치인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사례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짧은 기간 동안 유치장에 구금돼 있는 유치인이라 하더라도 질병이나 부상이 있는 경우 국가에 의한 의료적 보호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인권위 조사결과, 진정인은 B경찰서 유치장에 3일간 구금돼 있으면서 경찰관들과 함께 병원을 방문했으나 병원비가 없어 진료를 받지 못하고 유치장에서 진통제만 4차례 제공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2017년과 2019년 인권위가 실시한 유치장 방문조사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닌 한 치료비를 부담할 능력이 없는 유치인을 위해 의료비 예산을 집행한 사례가 드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에서는 유치인에게 질병이나 부상이 있는 경우 기본적으로 유치인의 자비(自費)로 치료하도록 하고 있고, 유치인이 치료비를 부담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또는 의료급여법의 제도를 활용하도록 하고 있는데, 응급환자 또는 의료급여 수급자 등 일정한 자격을 갖춘 경우에만 가능한 실정이다.

이에, 인권위 침해구제제1위원회(위원장 박찬운, 위원 조현욱, 김민호)는 유치장 자체적으로 의료시설과 의료인력 등을 갖추지 못해 외부병원 진료에 상당 부분 의존해야 하는 상황, 의료비 예산이 넉넉하지 않아 모든 유치인의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진료비를 부담할 능력이 없는 유치인이 의사의 처방에 따른 약제 복용이나 치료 등이 필요한 경우에는 국가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국제기준 및 국내법 취지에 부합한다는 점을 고려, 현재와 같은 유치인 의료처우는 국가의 보호 의무를 다 하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인신의 자유가 제한된 사람이 질병이나 부상을 당한 경우에 국가는 무상으로 검사나 치료 등 의료적 보호조치를 할 의무가 있다”며 “단기간에 유치장에 구금돼 있는 유치인이라 하여 그러한 의무가 일시적으로 유예되거나 면제될 수 없으므로 원칙적으로 유치인에게도 무상으로 의료적 보호조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따라서 “유치인에게 치료비가 없다는 사정만으로 약제 처방 등을 위한 진료나 검사와 같은 최소한의 의료적 보호조치조차 제공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비인도적이고 가혹한 처우에 해당하고, 이는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유치장 구금 기간 중에도 기본적인 의료 처우가 보장될 수 있도록 유치인 의료처우의 방법 및 절차 등에 대하여 관련 법령 및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표명을 결정했다.

한편, 이번 진정 사건은 진정인의 고소로 다른 수사기관을 통해 경찰관의 의료조치 미흡에 대한 판단이 종결된 사안이라는 점을 고려해 진정 사건에 대해서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라 각하하기로 결정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저작권자 © 로리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