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제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20일 국회는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 국무총리 공관 인근 100m 이내에서의 집회ㆍ시위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규정을 마련해 집시법을 통과시켰다.

시민사회단체는 절대적 집회금지장소를 규정한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위헌 헌법불합치 결정 취지에 따라 집시법 제11조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지만, 국회는 예외적 규정을 둬 집회ㆍ시위를 허용하는 방안으로 입법을 마련했다.

게다가 ‘지각입법’이다.

집시법 제11조(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장소)는 “누구든지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 청사, 대통령 관저(官邸),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 국무총리 공관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처벌된다.

헌법재판소는 2018년 5월 국회의사당 경계지점으로부터 100m 이내에서 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 제11조 조항에 대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다만 국회가 2019년 12월 31일까지 개정하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18년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사당, 국무총리 공관 및 각급 법원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장소에서 옥외집회 및 시위를 금지하는 집시법 11조 규정에 대해 연이어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이와 관련 지난 3월 4일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박주민, 이재정, 권칠승, 이수혁, 박홍근, 김삼화, 유동수, 송갑석, 강창일 의원이 각각 발의한 9건의 집시법 관련 법률안을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기로 하고, 각 법률안의 내용을 통합ㆍ조정해 위원회 대안을 제안하기로 했다.

지난 3월 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법안심사소위원회의 심사결과를 받아들여 위원회 대안을 제안하기로 의결했다.

5월 20일 국회 제1차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국가기관 주변의 집회ㆍ시위에 관한 타국 입법례 및 명확성 원칙 등 헌법 위반 여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소수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행정안전위원회의 집시법 개정안 대안은 “집회ㆍ시위의 자유는 헌법상 기본권으로 의사표현의 수단이며 특히 소수집단에게 의사표현의 통로가 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요소”라며 “다만 집회ㆍ시위는 집단적 행동을 수반하므로 타인의 법익을 침해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와 충돌할 수 있기 때문에 집회ㆍ시위의 자유와 공공의 안녕질서의 적절한 조화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에 국회의사당, 국무총리 공관,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장소에서 집회ㆍ시위를 예외적으로 허용해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에 따라 옥외집회 및 시위의 금지 장소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집회ㆍ시위의 자유와 공공의 안녕질서의 조화를 이루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5월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집시법 개정안은 국회의사당, 국무총리 공관,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장소에서 집회ㆍ시위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국회의사당의 경우 “‘국회의 활동을 방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경우’로서 국회의 기능이나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예외 규정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각급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경우 “‘법관이나 재판관의 직무상 독립이나 구체적 사건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는 경우’,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경우’로서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의 기능이나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예외 규정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국무총리 공관의 경우, “‘국무총리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 경우’,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경우’로서 국무총리 공관의 기능이나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예외 규정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한편, 이번 개정안은 집시법 제11조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입법시한으로 제시한 2019년 12월 31일을 훌쩍 넘겨 집시법 제11조가 효력을 상실해 지각 입법이다.

이에 국회는 집시법 개정안이 공포한 날부터 시행되도록 부칙을 마련해 입법공백을 최소화했다.

사회자 이재근 참여연대 국장의 선창에 따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회자 이재근 참여연대 국장의 선창에 따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편, 참여연대와 ‘집시법 11조 폐지 행동’은 지난 3월 6일에 이어 5월 19일에도 국회 정문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개정안은 국회의사당, 법원, 국무총리공관 인근 100미터를 집회금지장소로 정하면서, 집회 및 시위가 예외적인 경우를 몇 가지 정하고 있어, 개정안은 개선이 아닌 개악”이라며 “위헌적 조항을 다시 입법하려는 집시법 개정안 논의를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했었다.

헌법학자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19일 기자회견에 참여해 국회에 쓴소리를 냈다. 한 교수는 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과 ‘집회와 시위의 자유 확대 사업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참여연대 김선휴 변호사, 한상희 교수, 정진우 권유하다 집행위원장
참여연대 김선휴 변호사, 한상희 교수, 정진우 권유하다 집행위원장

한상희 교수는 “국회가 통과시키려는 행안위 대안 집시법은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정이 내려진 규정”이라며 “국회, 법원 관공서 주변 100미터 이내에서는 절대적으로 집회를 하지 못했던 과거의 규정이 위헌이라고 판단하니까, 국회 행안위에서는 100미터 이내에서 집회를 하는 것을 허용하는 전향적이고 민주적인 조치를 하지 않고, 그것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특별한 경우에만 허가를 해주는 그런 제도를 도입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그런 제도는 헌법재판소가 집시법 11조를 위헌이라고 판단한 취지에도 정면으로 위반될 뿐만 아니라, 헌법 제21조 2항에서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집회에 대한 허가제를 도입하는 제도”라며 “헌법을 명시적으로 정면에서 침해하는 규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행안위 대안 집시법 개정안을 비판했다.

한상희 교수는 특히 “규정 자체도 ‘업무를 방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 ‘대규모 집회로 나아갈 우려가 없는 경우’, 아주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용어를 써가면서 허용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며 “한 마디로 경찰 권력에게 집회를 허용할 것이냐를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는 자의적인 판단기준을 부여하고 있는 악법 중의 악법”이라고 혹평했다.

한 교수는 “국회는 더 이상 잘못된 법을 통과시키려 하지 말고, 헌법재판소의 결정 그대로 집시법 11조 100미터 이내에서 집회를 원천적으로 하지 못하는 규정을 철폐함으로써, 국민들이 자유롭고 원활하게 자기의 목소리를 국가 운영에 반영시킬 수 있는 명실상부한 민주정치가 만들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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