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문재인 대통령은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하면 떠오르는 인물로 인권변호사의 길을 함께 걸었던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꼽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방영된 광주 MBC와의 인터뷰에서 ‘5ㆍ18과 관련해 생각나는 인물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5ㆍ18하면 노무현 대통령, 당시 노무현 변호사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고 소회를 밝혔다.

사진=노무현재단 사람사는 세상
사진=노무현재단 사람사는 세상

그 이유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80년대 이후의 부산 지역의 민주화운동은 광주를 알리는 것이었다”며 “처음에는 유인물들을 통해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도 하고, 해마다 전세버스로 민주화운동을 하는 분들과 함께 합동으로 5.18묘역을 참배하기도 하고”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6월 항쟁이 일어났던 87년 5월에는 당시 노무현 변호사와 제가 주동이 돼서 부산 가톨릭 센터에서 5ㆍ18 광주 비디오, 말하자면 관람회를 가졌다. 영화 상영하듯이 하루 종일 모니터로 광주 비디오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 부산시민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서 광주 비디오를 보고, 그때 비로소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된 그런 분들도 많았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주항쟁 비디오 상영을) 3~4일 정도 한 것 같다. 그런 것이 부산지역 6월 항쟁의 큰 동력이 됐다고 생각하고, 또 부산의 가톨릭 센터가 6월 항쟁 때 서울의 명동성당처럼 자연스럽게 부산지역 6월 항쟁을 이끄는 중심지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그런 일들을 함께 했던 노무현 변호사, 광주 항쟁의 주역은 아니지만 광주를 (알리는데) 확장한 그런 분으로 기억하고 싶다”고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마쳤지만, 유신반대 시위 전력이 결격 사유가 돼 판사 임용에 탈락했다. 대형 법률사무소에서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지만, ‘억울한 사람을 돕고 보람을 찾는 것’이 변호사의 소임이라고 생각한 그는 결국 스카우트 제안을 마다하고,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가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 변호사와의 인연도 그때 처음 맺어졌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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