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수사기관에서의 진술과 달리 미성년 친딸이 법정에서 아버지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을 번복해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으나, 항소심과 대법원은 오히려 진술을 번복한 법정진술을 믿을 수 없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대법원은 자신을 보호 감독하는 지위에 있는 친족으로부터 성범죄를 당했다는 미성년자 피해자의 진술은 피고인(아버지)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 가족들의 계속되는 회유와 압박 등으로 인해 번복되거나 불분명해질 수 있는 취약성이 있으므로, 진술의 신빙성 판단에 있어 이러한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법원에 따르면 40대 A씨는 친딸인 피해자(당시 9~13세)를 상대로 3회(2014년 여름, 2017년 가을, 2018년 3월)에 걸쳐 몸을 더듬는 강제추행 범행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또한 A씨는 피해자 앞에서 피해자의 엄마를 폭행하거나 피해자에게 욕설을 하는 등 3회에 걸쳐 피해자를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도 받았다.

1심인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형사부(재판장 최호식 부장판사)는 2019년 2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제추행) 등의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아동복지법위반(아동학대) 혐의만 유죄를 인정해 A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법정에서 ‘피고인으로부터 강제추행 등 피해를 입은 사실이 없다. 피고인이 미워서 수사기관에서 거짓말했다’고 진술한 점에 비추어,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은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검사가 항소했고,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등법원 제10형사부(재판장 박형준 부장판사)는 지난 1월 “피해자의 수사기관 진술은 믿을 수 있고, 법정에서의 번복된 진술은 믿을 수 없다”며 A씨의 공소사실 혐의 모두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수사기관 진술은 실제로 경험한 사실에 관해 사실대로 진술할 때 나타나는 특징들이 포함돼 있고, 진술 내용 가운데 경험칙에 비추어 모순되거나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부분을 찾기 어려우며, 피해자가 피고인을 무고하기 위해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피해사실을 허위로 진술할 동기나 이유가 없다”고 봤다.

또 “피해자가 친구와 상담 교사에게 피해사실을 털어놓아 상담교사를 통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피해 내용이 통보된 후 상담사와 여성경찰관이 피해자를 찾아와 피해내용을 조사한 후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피해자를 보호시설에 입소시키고 수사를 개시한 경위가 자연스럽고, 이후 피해자룰 지속적으로 상담한 상담사와 진술분석 전문가 등이 피해자의 피해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말했다.

피해자를 치료한 정신과 의사는 법정에서 “피해자가 제1심 법정에서 엄마의 부탁으로 거짓말을 했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눈치를 많이 주었고, 할머니는 아버지 빨리 꺼내야 한다고 욕하고, 어머니는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데 정말 성폭행한 것이 맞느냐며 재차 묻고, 못 믿겠으니 그런 일 없다고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친구에게 ‘내가 아빠한테 성폭행 당했는데, 엄마가 아빠 교도소에서 꺼내려고 나한테 거짓말 치래’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점, 피해자의 어머니이자 피고인의 처는 피고인을 접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없던 일로 해 달라고 설득해 보겠다’, ‘피해자에게 울면서 부탁을 했더니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점도 주목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이에 A씨가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대법원 제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5월 14일 A씨의 상고를 기각하며 징역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제추행),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등의 혐의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친부(아버지)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는 미성년자 피해자(친딸)가 법정에서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을 번복한 경우 진술의 신빙성 판단 문제다.

재판부는 “미성년자인 피해자가 자신을 보호ㆍ감독하는 지위에 있는 친족으로부터 강제추행 등 성범죄를 당했다고 진술하는 경우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함에 있어서, 피해자가 자신의 진술 이외에는 달리 물적 증거 또는 직접 목격자가 없음을 알면서도 보호자의 형사처벌을 무릅쓰고 스스로 수치스러운 피해 사실을 밝히고 있고, 허위로 그와 같은 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술 내용이 사실적ㆍ구체적이고, 주요 부분이 일관되며, 경험칙에 비추어 비합리적이거나 진술 자체로 모순되는 부분이 없다면,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종전 대법원 판례를 언급했다.

재판부는 “특히 친족관계에 의한 성범죄를 당했다는 미성년자 피해자의 진술은 피고인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 가족들의 계속되는 회유와 압박 등으로 인해 번복되거나 불분명해질 수 있는 특수성을 갖고 있으므로, 피해자가 법정에서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을 번복하는 경우,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 내용 자체의 신빙성 인정 여부와 함께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게 된 동기나 이유, 경위 등을 충분히 심리해 어느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기존 대법원 판례에 추가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원심은, 친부로부터 성범죄를 당했다는 미성년자인 피해자가 제1심 및 원심 법정에서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을 번복했더라도, 피해자의 수사기관 진술 자체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에 대한 평가 등에다가, 피해자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게 된 동기와 경위 등을 더해 보면, 피해자의 번복된 법정 진술은 믿을 수 없고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을 신빙할 수 있다고 판단해, 제1심 판결을 파기하고 쟁점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며 “이러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 공보관실은 “공판중심주의와 실질적 직접심리주의 등 형사소송의 기본원칙상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보다 법정 진술에 더 무게를 두는 것이 일반적으로는 타당성을 갖고, 제1심의 판단은 이런 관념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원심은, 피해자의 수사기관 진술은 구체적인 내용과 진술 경위, 그에 대한 전문가의 평가 등에 비추어 신빙성이 있고, 법정에서의 번복된 진술은 번복 경위 등에 비추어 믿기 어렵다고 했고,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공보관실은 “이번 판결은, 자신을 보호ㆍ감독하는 지위에 있는 친족으로부터 성범죄를 당했다는 미성년자 피해자의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기존 법리를 재확인하는 한편, 이러한 지위에 있는 피해자의 진술은 피고인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 가족들의 계속되는 회유와 압박 등으로 인해 번복되거나 불분명해질 수 있는 취약성이 있으므로, 진술의 신빙성 판단에 있어 이러한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판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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