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임신 중 업무로 태아 건강손상…근로자 업무상 재해 첫 판결
대법원, 임신 중 업무로 태아 건강손상…근로자 업무상 재해 첫 판결
  • 신종철 기자
  • 승인 2020.05.0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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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더] 대법원은 임신한 여성 근로자가 업무로 인해 태아의 선천성 장애를 가진 아이를 출산했다면 산재보험법에서 정한 ‘업무상 재해’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태아의 건강손상 또는 출산아의 선천성 질환이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관한 최초의 대법원 판례다.

법원에 따르면 원고(4명)들은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로 모두 2009년에 임신해 2010년에 아이를 출산했는데, 아이들이 모두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고 있었다.

제주의료원에 근무하던 간호사들 중 2009년에 임신한 사람은 15명이었는데, 그 중 6명만이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을 뿐이고, 원고들은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하고, 다른 5명의 간사호사들은 유산했다.

원고들은 역학조사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임신 초기에 유해한 요소들에 노출돼 태아의 심장 형성에 장애가 발생했으므로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2012년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청구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재해란 근로자 본인의 부상ㆍ질병ㆍ장해ㆍ사망만을 의미하며 원고들의 자녀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에 원고들은 “태아의 심장 형성에 방애가 발생했을 당시에 태아는 모체의 일부였으므로, 발병 당시 태아의 질병은 모체의 발병으로 봐야 하므로, 출산아의 선천성 심장질환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해야 한다”며 2013년 9월 공단에 다시 요양급여를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이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1심인 서울행정법원 이상덕 판사는 2014년 12월 “임신 중 업무에 기인해 태아에게 발생한 건강손상은 산재보험법상 임신한 근로자에게 발생한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며 원고 간호사 4명의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2심인 서울고등법원 제11행정부(재판장 김용빈 부장판사)는 2016년 5월 1심 판결과 달리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각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은 출산아의 질병일 뿐 근로자인 원고들 본인의 질병이 아니므로 원고들의 업무상 재해로 포섭할 수 없고, 출산아와는 별도의 인격체인 원고들을 각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 관련 산재보험급여의 수급권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원고들이 대법원에 상고했고, 대법원은 서울고법의 판단과 달랐다.

이 사건의 쟁점은 母(여성 근로자)의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 또는 ‘출산아의 선천

성 질환’을 산재보험법 제5조 제1호의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로 포섭할 수 있는지 여부다.

대법원 제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4월 29일 원고(간호사들) 패소 판결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라며 서울고법으로 환송했다.

재판부는 “산재보험법의 해석상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업무에 기인해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여성 근로자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 정도와 관계없이 산재보험법 제5조 제1호에서 정한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포함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산재보험제도와 요양급여제도의 취지, 성격 및 내용에 여성 근로자 보호(헌법 제32조 제4항), 모성 보호(헌법 제36조 제2항)의 취지 등을 종합하면, 여성 근로자와 태아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 요소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산재보험법의 해석상 모체와 태아는 ‘본성상 단일체’로 취급된다”며 “여성 근로자는 출산 이후에도 모체에서 분리돼 태어난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 등에 관해 요양급여를 수급할 수 있는 권리를 상실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산재보험의 발전 과정, 민사상 불법행위책임 증명의 어려움, 사업주의 무자력 등을 고려하면 산재보험으로 해결하는 것이 근로자 및 사용주 모두에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업무에 기인해 모체의 일부인 태아의 건강이 손상되는 업무상 재해가 발생해 산재보험법에 따른 요양급여 수급관계가 성립하게 됐다면, 이후 출산으로 모체와 단일체를 이루던 태아가 분리됐다 하더라도 이미 성립한 요양급여 수급관계가 소멸된다고 볼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한편, 대법원 공보관실은 이번 판결에 대해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에 관해 원고들(母, 여성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로 포섭할 수 없다고 본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한 사례로서, 태아의 건강손상

또는 출산아의 선천성 질환이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관한 최초의 판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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