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경계지점으로부터 100m 이내에서 집회를 금지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5월 31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집시법 제11조 조항의 ‘국회의사당’에 관한 부분은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다만 위 법률조항은 국회가 2019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개정될 때가지 계속 적용하기로 했다.

청구인들은 국회의사당 경계지점으로부터 30~40미터 이내의 거리에 있는 국회 북문 앞에서부터 동문 앞까지의 우측 고수부지, 국회 정문 앞 도로,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집회를 주최하거나 개최된 집회에 참가했다는 공소사실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청구인들은 1심 계속 중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 제1호, 제23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했는데, 그 신청이 기각되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옥외집회와 시위의 금지 장소)는 “누구든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청사 또는 저택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금지 장소는 국회의사당, 각급 법원, 헌법재판소, 대통령 관저(官邸),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 등이다.

집시법 심판대상조항에 의한 집회의 제한은 국회의사당 경계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장소(이하 ‘국회의사당 인근’)이라는 특정한 장소에서 옥외집회 및 시위(통틀어 집회)가 행해진다는 사실만으로 이를 일괄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으로 예외 없는 절대적인 집회금지장소를 설정한 것이다.

이번 헌법소원에 대해 헌재는 먼저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대의기관으로서 법률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며, 국정통제기관으로서 특히 행정부에 대한 강력한 통제권한을 행사하는 등 국가정책결정의 주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며 “이와 같은 국회의 기능과 역할은 그 특수성과 중요성에 비추어 특별하고도 충분한 보호가 요청된다”고 봤다.

이어 “심판대상조항은 국회의원과 국회에서 근무하는 직원, 국회에 출석해 진술하고자 하는 일반 국민이나 공무원 등이 어떠한 압력이나 위력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게 국회의사당에 출입해 업무를 수행하며, 국회의사당을 비롯한 국회 시설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에서 입법된 것으로 목적은 정당하고, 국회의사당 인근에서의 옥외집회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국회의 기능을 보호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므로 수단의 적합성도 인정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국회의 헌법적 기능은 국회의사당 인근에서의 집회와 양립이 가능한 것이며, 국회는 이를 통해 보다 충실하게 헌법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며 “‘민의의 수렴’이라는 국회의 기능을 고려할 때, 국회가 특정인이나 일부 세력의 부당한 압력으로부터 보호될 필요성은 원칙적으로 국회의원에 대한 물리적인 압력이나 위해를 가할 가능성 및 국회의사당 등 국회 시설에의 출입이나 안전에 위협을 가할 위험성으로부터의 보호로 한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심판대상조항의 ‘국회의사당’을 ‘국회 본관뿐만 아니라 의원회관, 국회도서관 등 국회의 기능적 활동이 이루어지는 국회 부지 내의 장소 전체’로 해석하게 되면, 국회의사당으로의 출입과 무관한 지역 및 국회 부지로부터 도로로 분리돼 있거나 인근 공원ㆍ녹지까지도 집회금지장소에 포함되게 된다”며 “더욱이 대한민국 국회는 국회 부지의 경계지점에 담장을 설치하고 있고, 국회의 담장으로부터 국회의사당 건물과 같은 국회 시설까지 상당한 공간이 확보돼 있으므로 국회의 헌법적 기능은 이를 통해서도 보장될 수 있다”고 봤다.

헌재는 “국회의사당 인근에서의 집회가 심판대상조항에 의해 보호되는 법익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초래한다는 일반적 추정이 구체적인 상황에 의해 부인될 수 있는 경우라면, 입법자로서는 예외적으로 옥외집회가 가능할 수 있도록 심판대상조항을 규정해야 한다”고 봤다.

예를 들어, 국회의 기능을 직접 저해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소규모 집회’, 국회의 업무가 없는 ‘공휴일이나 휴회기 등에 행해지는 집회’, ‘국회의 활동을 대상으로 한 집회가 아니거나 부차적으로 국회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의도가 내포돼 있는 집회’처럼 옥외집회에 의한 국회의 헌법적 기능이 침해될 가능성이 부인되거나 또는 현저히 낮은 경우에는, 입법자로서는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해 발생하는 집회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 가능성이 완화될 수 있도록 그 금지에 대한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대상조항은 전제되는 위험 상황이 구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경우까지도 예외 없이 국회의사당 인근에서의 집회를 금지하고 있는바, 이 또한 입법목적의 달성에 필요한 범위를 넘는 과도한 제한”이라고 판단했다.

또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대규모 집회가 행하여지는 경우에는 국회의 헌법적 기능이 훼손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나, 집시법은 이러한 특수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집회의 성격과 양상에 따른 다양한 규제수단들을 규정하고 있다”며 “집회 과정에서의 폭력행위나 업무방해행위 등은 형사법상의 범죄행위로서 처벌된다. 그렇다면 국회의사당 인근에서의 옥외집회를 예외적으로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수단들을 통해 심판대상조항이 달성하려는 국회의 헌법적 기능은 충분히 보호될 수 있다고 할 것이므로, 단지 폭력적ㆍ불법적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률적ㆍ절대적 옥외집회의 금지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그러면서 “심판대상조항은 입법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를 넘어, 규제가 불필요하거나 또는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가능한 집회까지도 이를 일률적ㆍ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므로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이와 함께 헌재는 법익의 균형성도 지적했다.

헌재는 “헌법기관인 국회의 기능을 보호하는 것이 매우 특별한 중요성을 지닌 공익에 해당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심판대상조항은 국회의 헌법적 기능을 무력화시키거나 저해할 우려가 있는 집회를 금지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평화적이고 정당한 집회까지 전면적으로 제한함으로써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해 상충하는 법익간의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심판대상조항으로 달성하려는 공익이 제한되는 집회의 자유 정도보다 크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므로 심판대상조항은 법익의 균형성 원칙에도 위배된다”며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한편 헌재는 단순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이 가지는 위헌성은 국회의 헌법적 기능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범위를 넘어 국회의사당 인근에서의 집회를 일률적ㆍ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데 있다”며 “즉, 국회의사당 인근에서의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것에는 위헌적인 부분과 합헌적인 부분이 공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헌재는 “그런데 국회의사당 인근에서의 옥외집회 중 어떠한 형태의 옥외집회를 예외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집회의 자유를 필요최소한의 범위에서 제한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이를 입법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따라서 심판대상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하되, 입법자가 2019년 12월 31일 이전에 개선입법을 할 때까지 계속 적용돼 효력을 유지하고, 만일 개선입법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심판대상조항은 2020년 1월 1일부터 효력을 상실하도록 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한편, 이번 결정에 대해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이 사건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집시법 제11조 제1호 중 ‘국회의사당’에 관한 부분 및 제23조 중 제11조 제1호 가운데 ‘국회의사당’에 관한 부분이 입법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를 넘어 국회의사당 인근의 집회를 금지하고 있고, 이로써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해 상충하는 법익간의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고 있으므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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