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남용에 대한 특별조사단의 3차 조사결과 발표에 대해 류영재(사법연수원 40기) 춘천지방법원 판사는 29일 “제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법부의 치부를 보게 되어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며 “판사님들, 같이 분노합시다”라고 호소했다.

류영재 판사는 “이 사안을 피하지 않고 마주보아 사법부의 해결의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도록 하자”며 “더 이상 좌고우면, 많은 것들을 신경 쓰고 고려할 때가 아니다. 이번 사태도 그냥 넘어가면, 국민들께 앞으로 사법부는 어떠한 짓도 할 수 있는 조직임을 자인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판사들이 나서줄 것을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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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판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류영재 판사는 “1, 2차 조사결과가 주로 사법부에 의한 법관 독립 침해 사안을 다루었다면, 3차 조사결과는 사법부에 의한 법관 독립 침해뿐만 아니라 사법부가 스스로 삼권분립원칙 및 특히 청와대와의 관계에서의 사법독립을 스스로 내팽개치는 사법독립 포기 사안을 다루었다”며 “1, 2차 조사결과가 매우 참담했음에도 불구하고 판사들이 이것이 재판독립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볼만한 지점이 있었다면, 3차 조사결과는 정면으로 재판독립이 사법부에 의해 흔들렸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류 판사는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의 조사에 한계를 느끼거나 그 평가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조목조목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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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재 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에 의한 판사 사찰 등 판사통제와 사법행정권의 재판개입 의혹 및 재판거래 정황 등의 총 책임자다. 사법행정 총괄권자이자 대법원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사결과상 드러난 사안에 대한 보고 또는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는 필수적으로 조사했어야 할 사안”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께서 조사를 거부해서 조사를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실무자들로부터 ‘기억이 안 난다’라는 답변만을 들어 제대로 된 조사에 나아가지 못했다면 그러한 취지를 조사보고서에 기재해 조사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는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며 “그러지 않고 조사보고서처럼 마치 조사를 완전히 마쳤는데 조사 결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지시 또는 보고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양 조사보고서를 작성한 것은, 왜곡에 가까운 결과를 발생시킨다”고 지적했다.

류 판사는 “조사보고서를 보면, 법원행정처 기조실장 또는 차장에 불과한 임종헌 전 차장이 이 모든 사법행정남용을 자신의 무한한 재량으로 기획하고 지시하고 실행시킨 것처럼 보인다”며 “임 전 차장이 아무리 법원행정처에 오래 근무했다고는 하나 행정처 각 부서를 모두 동원할 정도의 거대한 작업을 오롯이 자신만의 재량으로 실시할 수 있었다는 의미인지 의문”이라고 봤다.

류영재 판사는 “특히, BH 대응 문건 등을 작성한 심의관 답변에 의하면, BH 관련 부분은 임 전 차장으로부터 들은 내용을 문건에 기재하였다는 점(즉, 그 문건의 최종 보고대상이 임종헌 전 차장은 아님을 의미함),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을 자신의 카운터파트너로 인식했다는 언급이 나와 있는 점에 비추어 보면 더욱 그러하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류 판사는 “원세훈 (공직선거법, 국정원법 위반사건) 재판의 경우, 법원행정처가 사건 파악 및 대외적 설명용으로 작성했다는 보고서를 상고심 사건 담당 재판연구관과 수석연구관에게 전달했다. 아무리 중요사건이라고는 하나 행정처가 어째서 재판을 별도로 상세히 분석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는지가 의문이고, 보고서의 상세함 수준이 재판 상황 및 판결 요약에서 벗어나 특히 공직선거법위반 유죄를 피하기 위한 목적의식 하에 쟁점분석이 된 듯한 점에 더더욱 의문을 느끼지만, 무엇보다도, 행정처가 최종 도착지가 되어야 할 보고서가 왜 다시 재판연구관실로 넘어가게 된 것인지에 대하여는, 의문을 넘어 재판개입시도라는 의혹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류 판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조사단은 원세훈 상고심 사건으로 전원합의체로 넘어가게 된 경위, 행정처 보고서가 재판연구관 보고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 전원합의체 판단 과정에서 행정처 보고서가 영향을 미친 재판연구관 보고서(만일 있다면)가 대법관들께 보고되었는지 여부, 대법관들 중 일부가 원세훈 BH 대응 전략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 등에 대해 어떠한 조사도 하지 못했다”며 “그럼에도 특조단은 여러 정황에 비추어 재판에 영향력은 없었다고 단정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조단의 조사상의 한계는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조사한계가 명백함에도 재판에 영향력이 없었다고 단정한 부분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백번 양보해도, 상고심 재판 형성에 주요하게 관여하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실에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보고서가 흘러들어갔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재판의 외관상 공정성은 침해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류영재 판사는 “흔히 수사의 A, B, C라고 하는 이메일 조사, 핸드폰 조사 등을 특조단은 하지 못했다. 강제조사권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합니다만, 이런 조사도 하지 못한 특조단의 조사에 한계가 있음은 명백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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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뒷조사 소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류영재 판사는 “블랙리스트, 즉 판사뒷조사 파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1차 조사보고서의 결론과 달리 2차 추가조사 결과 판사뒷조사 파일이 무더기로 작성됐음이 발견됐다. 즉, 2차 추가조사로 인해 블랙리스트는 존재함이 밝혀진 것”이라며 “1차 조사에서는 판사뒷조사 파일 유무가 가장 큰 쟁점이었고, 2차 조사에서 판사뒷조사 파일의 존재가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언론들은 ‘블랙리스트가 없다’고 보도하며 사법행정권 남용의 심각성을 축소했다. ‘판사 사찰은 했으나 블랙리스트는 없다’라는 식의 보도로 말이다. 그러한 언론의 의도는 눈에 보일 정도로 명백했다. 기준을 높여 사안의 심각성을 축소하려는 것”이라고 언론을 비판했다.

류 판사는 “블랙리스트 개념의 변천사를 누구보다 잘 아실 특별조사단장인 안철상 법원행정처 처장께서 왜 이러한 언론의 시도에 동조하는 발언을 했는지 의문”이라며 “판사사찰 문건이 다수 존재함이 확정됐는데, 왜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하십니까”라고 안철상 처장에게 따져 물었다.

인사상 불이익 조치 유무에 대해서도 류영재 판사는 “인사와 윤리감사를 모두 손에 쥐고 있고, 고등부장 선발권 및 법원장 보임권도 모두 갖고 있는 대법원장 산하 법원행정처에서 몇몇 판사들을 명단화해 이들을 사법부의 적 취급해 사찰하고 관리하며 사법행정에 이들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섬세하게 대응했다”며 “그런 ‘문제판사들’에 대해 법원장들에게 이들의 문제점을 전하고 함께 고민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는데 있어 어떠한 별도의 문건 작성이 필요할 것 같으셨습니까”라고 반문했다.

류 판사는 “문제판사들이 평정을 잘 받을 수 있는 소위 ‘요직’의 사무분담을 맡을 수 있습니까, 혹은 업무를 열심히 하면 평정을 잘 받을 수 있습니까, 선발성 보직에 대한 긍정적인 법원장 의견을 받을 수 있습니까, 아니 다 떠나서, 최종적인 선택을 하는 법원행정처에서 긍정적인 시각으로 이들을 봐 최종 선발에 올릴 수 있습니까. 이왕이면 다홍치마인데 말입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회사의 비서실 및 인사실이 특정 직원들을 회사의 적 취급하며 명단 만들어 일일히 사찰하고 그들의 의견을 방해하고자 조직적으로 대응하며 관리하던 상황에서, 그 직원들 인사고과 자체를 잘 받을 수 있냐고요. 그 인사고과 잘 받아 승진이나 각종 기회에 선발되는 것이 가능하냐고요. 만일 그 직원들이 승진이 못되면 그것이 그 직원들의 업무능력 부족 탓인지 아니면 회사 비서실 및 인사실에 찍힌 탓인지요”라며 국민에게 물어보라고 말했다.

또 “판사들께도 물어보라”며 “당신을 사법부의 적으로 규정하고 명단 만들어 열심히 사찰하고 관리하고 대응하긴 할 건데, 그래도 평정 및 법원장 의견에는 전혀 영향 없고, 그래서 선발성 보직에도 전혀 영향 없을 거라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명단에 올라가 있어도 아무런 인사상 불이익은 없다고. 이런 설득에 동의할 판사들이 몇이나 있을지 궁금하다”고 따졌다.

그러면서 “즉, 모든 인사를 최종적으로 관리하며, 각급 법원의 평정권자에게도 영향력을 미치는 법원행정처에서 몇몇 판사들을 자의적으로 성향 분류해 리스트를 만들고 이들을 집중 사찰/통제/대응한 것 자체가 블랙리스트이자 곧 중대한 인사상 불이익”이라며 “애초에 법원장 재량이 거의 다인 인사를 어떻게 검증하려고 하신 겁니까. 재량권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관(법원행정처)이 특정 판사들을 블랙리스트로 만들어 관리한 것 자체가 인사상 불이익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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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재 판사는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제도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칼럼에 실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판사에 대한 재산정보를 검토해 혹시나 ‘털 것’이 없는지 살펴보고 그 재산정보를 유출했다. 정보접근권한이 부여된 (법원행정처) 차장이면 그런 재산정보 아무 때나 마음대로 제공받을 수 있습니까. 뇌물을 제공받았다는 등의 의심혐의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판사의 재산정보를 검토하고 제공받는 것은 인사상 불이익 조치가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류 판사는 “사실 털었는데 털린 것이 없어 해당 판사에 대한 경고나 징계로 나아가지 못한 것뿐이지, 경고나 징계를 예정하고 턴 것이니, 이것은 인사상 불이익 조치의 실행이라고 봐야 한다”며 “특별조사단이 파악하는 블랙리스트 및 인사상 불이익에 대한 개념 파악에 대하여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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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혐의 유무에 대한 특별조사단의 발표도 비판했다.

류영재 판사는 “특조단은 범죄혐의가 있다고 판단하고 고발할 경우 그 자체가 수사 및 재판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것이 될 수 있어 신중했다고 말했는데, 그 취지 매우 이해한다”며 “특조단처럼 법원행정처 처장을 단장으로 하여 고등법원 부장판사들과 부장판사들을 주요 구성원으로 하는 특조단의 판단은 가정적 판단이라 하더라도 수사기관과 재판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류 판사는 “그런 취지에서, 특조단이 범죄혐의 성립에 관해 보인 신중함이 어째서 ‘범죄혐의가 성립하지 아니함’이라는 결론에 대해서는 실종되었는지 의문”이라며 “특조단이 ‘범죄혐의 성립하지 아니함’이라는 결론을 내리면 그 또한 수사기관과 재판부에 부담이 되고 하나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 왜 이 부분에서는 신중함을 보이지 않은 겁니까”라고 따졌다.

이어 “특히 특조단의 조사는 스스로 인정한 만큼 한계가 뚜렷한 조사였다. 한계가 뚜렷한 조사였음에도 불구하고 특조단은 어떻게 범죄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까”라고 압박했다.

한편, 류영재 판사는 “개인적으로 이번 조사결과에 대한 문제제기와 분노를 표출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판사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저는 3000명의 다양한 판사들 중에 이런 판사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글을 올린 배경을 설명했다.

류 판사는 “조사결과는 제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결과였고, 순수하게 분노했다”며 “그리고 사법부가 판사들의 것이 아닌 주권자 국민들의 것인 만큼 이 사안을 국민들이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참담한 민낯에 사법신뢰가 하염없이 추락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지만, 그렇다고 민낯을 숨기는 임시방편이 사법신뢰를 위해 도움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진실만이 진정한 신뢰관계 구축을 위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보여주기 위해 편집된 낯만을 보여주는 것이 신뢰를 얻는 방법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런 의미에서 사법행정남용 의심 문건 원본들은 국민들에게 전부 공개되어야 할 것”이라며 “국민들은 사법부의 잘잘못을 감시ㆍ감독할 권한이 있기에 국민의 알 권리 대상이기도 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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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재 판사는 “‘괜히 사법부의 민낯만 드러내어 사법신뢰 하락만 초래하였다’고 사법부의 진실규명의지를 폄훼하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국민들은 편집된 좋은 낯만 보고 좋은 게 좋다고 믿어도 되는 우민이 아니다. 사법부의 주인”이라고 강조했다.

류 판사는 “판사들 중엔 이 모든 잘못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치하 법원행정처의 극히 중대한 일탈인 것이고, 나머지 열심히 일하는 판사들의 잘못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다”며 “이 모든 잘못은 그들이 겁도 없이 자행한 헌정유린 행위로 인한 것 맞다. 그러나 사법부의 진정한 주인인 국민들과의 관계에 있어 그러한 구분은 무의미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일을 제대로 해결해 사법부가 이 일을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분노하는지, 가담자들에게 철저한 책임을 지우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는지 국민들에게 보이지 못하면, 결국 이번 헌정유린으로 인한 사법신뢰 추락의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귀속될 수밖에 없다”고 경계했다.

류영재 판사는 “검찰수사만이 정답이란 얘기는 아니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류 판사는 “실제로 사법행정남용사안들이 탄핵사유에 해당할 정도로 중대한 헌법위반, 헌정유린 행위라고 해도 그것이 곧바로 형사상 범죄가 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그러나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번 사태의 의미를 우리는 정확히 판단하고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의 의미를 축소하고 무마하여 좋게 좋게 넘어가려는 모든 시도가 현재의 사법부에 치명적인 자살 행위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앞으로도 사법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에 모든 걸 맡기고 재판해야 할 우리다. 떳떳하게 재판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사법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을 존중해 달라고 요청드리기 위해 판사님들, 같이 분노하십시다”라고 호소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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