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26일 변호사시험(변시) 합격자의 성명을 공개하도록 규정한 변호사시험법 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4(합헌) 대 5(위헌)로 엇갈렸는데, 위헌 정족수(6인)에 1인이 부족해 합헌 결정이 났다.

이 사건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우재준 변호사(법무법인 신원)가 6일 본지에 <변호사시험 합격자 명단 공개 결정의 의미>에 대해 기고문을 보내왔다. 이에 본지가 법조계 소통창구 역할을 하기 위해 전문을 게재한다. 아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무관함을 공지한다. <로리더 편집자 주>

<변호사시험 합격자 명단 공개 결정의 의미>

헌법재판소 2020. 3. 26. 선고 2018헌마283(77, 1024 병합) 사건 청구인

법무법인(유한) 신원 우재준 변호사

얼마 전 헌법재판소는 변호사시험 합격자 명단 공개를 내용으로 하는 변호사시험법 제11조에 관한 헌법소원에 대하여 기각 결정을 내렸다(헌법재판소 2020. 3. 26. 선고 2018헌마77(283, 1024 병합)).

과거 사법시험을 비롯하여 각종 고시류 시험은 합격자 명단을 ‘가나다’ 순으로 하여 공고해왔고(예 : 합격자 갑 100001, 을 100002, 병 100003), 그러한 명단은 각종 신문에도 그대로 게재되어 합격자에 영광을 부여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런데 2010년경 명단 공개가 시험 응시자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여 변호사시험을 비롯한 대부분 시험이 성명을 제외한 수험번호만 공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예 : 합격자 100001, 100002, 100003). 그러자 반대로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을 반영한 변호사시험법 개정안이 2017. 12. 경 입법되었고, 이번 헌재에서 최종적으로 합헌 결정을 내림에 따라 앞으로 합격자의 명단은 다시 공개되게 되었다.

과거 사법시험을 추억하면, 합격자 명단 공개는 익숙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 합격자 명단을 공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공익은 크지 않다. 변호사 사칭 방지라는 목적을 생각할 수는 있으나, 현재 개업 중인 모든 변호사는 변호사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변호사협회에 등록하여야 하고, 협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등록된 변호사의 사진부터 전화번호까지 필요한 정보를 상세하게 공개하는 바, 법률서비스 수요자가 동명이인이 구분조차 되지 않는 합격자 명단을 통해 변호사 자격을 확인할 가능성은 낮다.

헌재는 ‘실무상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이 변호사등록을 하지 않고도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고 판시하였으나, 변호사법 제112조에 따라 등록하지 않은 변호사가 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부과되는 범죄라는 사정을 고려할 때, 과연 보호할만한 공익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더욱이 헌재는 ‘명단을 공개할 경우 시험 관리 업무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제고된다’고 판시하였으나, 투명성과 공정성은 출제위원의 선정, 출제와 채점 등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짐으로써 달성되는 것이지, 합격자의 성명을 공개하는 것과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긴 힘들다.

오히려 과거 사법시험 합격자 명단을 공개한 실질적 이유는 개별적 합격자 및 변호사 조회 시스템이 미비했던 점, 사법시험 합격자는 일종의 사회 특권층의 상징이었던 점 등이 작용한 결과라 본다. 이미 개별적 합격자 및 변호사 조회 시스템이 완비되었고, 법조인의 특권의식 타파는 사회적 과제이자 법학전문대학원의 도입 취지인 만큼, 과거 사법시험의 방식이라고 해서 그대로 변호사시험에서 적용되는 것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사실 합격자 명단 공개의 실질적 문제는 ‘불합격자가 쉽게 특정된다는 점’에 있다. 특정 수험생이 시험에 응시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합격자 명단을 통해 합격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 수험생이 탈락한 사실을 가장 숨기고 싶은 사람은 친척, 선후배 등 해당 응시자가 시험에 응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헌재는 ‘합격자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응시자 주변 사람에게 그의 합격 여부가 자연스럽게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고 판시하였으나, 그것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할 방향이라 볼 수는 없으며, 국가가 나서서 불합격 사실을 더욱 쉽게 알 수 있도록 공고해줄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이웃집 부부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경비실에 ‘1001호 부부는 이혼했습니다’라는 사실이 공고되었을 때 당사자들이 받을 심리적 고통은 분명 가중될 것이다.

비록 명단 공개로 인한 고통이 불합격 사실 그 자체에 의한 고통보다는 작은 것일지도 모르나, 합격자 명단을 공개하여 얻을 공익 또한 크지 않다면, 약자인 불합격자의 입장을 더 고려해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불합격자에게 자신의 불합격 사실을 누구에게 알리고 또 위로받을 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최소한의 배려라 생각한다.

이번 결정은 변호사시험에 대한 것이기는 하나, 시험 합격자 공개 방식에 대한 최초의 헌법재판소 결정이며, 앞으로 대부분 시험의 합격자 공개 방식에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헌재는 명단 공개의 이유로 변호사 직역의 공공성을 들고 있는데, 공무원, 회계사, 변리사, 의사 등에 요구되는 공공성이 결코 변호사에 비해 낮다고 볼 수 없으므로, 변호사시험 합격자를 공개해야하는 이유는 다른 시험에도 쉽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험이라는 경쟁은 때로는 패자에게 모든 고통을 감내하게 한다. 마치 모든 고통은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수험생의 탓인 냥 당연시되곤 한다. 모든 수험생이 합격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불합격자가 조금이라도 덜 고통 받을 방법이 있다면, 그러한 방법을 택하는 것이 약자를 배려하는 방법이자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이 아닐까. 여러모로 이번 헌재 결정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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