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더] 동거인에게 결별을 요구하다가 화가 나서 자신이 동거 전에 구입한 물건을 부순 사건에서 검찰은 재물손괴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처분을 내렸으나, 헌법재판소는 범죄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검찰의 판단을 취소했다.

기소유예처분은 범죄 혐의는 인정되지만 경미한 사안인 경우 피의자의 연령이나 성행,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나 수단,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참작해 검사가 재판에 넘기지 않는 것이다. 보통은 선처의 의미다.

그러나 기소유예처분도 어쨌든 범죄 혐의로 판단하는 것이어서,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당사자들은 헌법재판소에 기소유예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을 청구한다.

3일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A씨는 2018년 8월경부터 결혼을 전제로 피해자 B씨와 동거해 왔다.

그런데 A씨는 2019년 6월 B씨에게 결별을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자 화가 나 집에 있던 이불, 카페트, 수건, 슬리퍼를 가위로 자르고 밥통을 던져 깨뜨렸다. 또한 피해자와 다투다 옷걸이를 발로 밟아 부수고 그 과정에서 장판에 긁힌 흔적이 생겼다.

A씨가 당시 손괴한 물건 중 이불, 카페트 등은 피해자와의 사실혼 이전에 자신의 비용으로 구입하거나 증여받은 것이고, 장판은 A씨가 피해자와의 동거를 위해 구입한 것으로, 모두 피해자와 함께 일상생활에서 사용해 온 것이다.

검찰은 A씨의 재물손괴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처분을 했다. 이에 A씨는 기소유예처분이 자신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면서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26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검찰의 청구인에 대한 기소유예 처분은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이를 취소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청구인에게 재물손괴의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청구인이 타인의 재물을 손괴했다는 전제로 검찰이 청구인에 대한 기소유예처분이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로서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청구인이 손괴한 물건이 타인의 소유인지에 대해 헌재는 “재물손괴죄의 객체는 타인의 소유에 속해야 하고, 공동소유는 형법상 타인의 소유로 해석된다”며 “청구인이 사실혼 이전에 구입한 이불, 카페트 등은 단독으로 소유권을 취득한 것으로, 그 이후 피해자와 함께 사용했다 하더라도 사실혼 기간이 약 10개월 정도로 짧았던 점, 청구인과 피해자 간에 소유권 귀속에 대한 특별한 논의는 없었던 점 등에 비추어 위 물건에 대한 청구인의 단독소유가 청구인과 피해자의 공동소유로 변경됐다고 볼 수 없어 타인의 재물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재물손괴죄의 객체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장판의 흠집이 손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 헌재는 “재물손괴죄는 재물의 효용을 해하는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로, 재물의 효용을 해한다는 것은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그 물건의 본래 목적에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 사건에서는 장판 표면에 흠집이 생긴 것에 불과하고, 교체나 수리를 요할 정도의 손상이 아니고 장판으로서의 효용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므로, 장판이 손괴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결정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은, 타인과 함께 사용하던 재물을 부수거나 망가뜨렸다 하더라도 그 재물이 타인의 소유인지, 그 재물의 효용이 실질적으로 해하여진 것인지 등을 면밀히 검토해 재물손괴죄 성립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서, 관련 증거와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청구인에게 재물손괴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검찰의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저작권자 © 로리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