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회식자리 기습추행 당시 항의 거부의사 못했어도 강제추행죄
대법원, 회식자리 기습추행 당시 항의 거부의사 못했어도 강제추행죄
  • 신종철 기자
  • 승인 2020.04.0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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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더] 직장 회식자리에서 가맹점 직원의 허벅지를 쓰다듬은 행위에 대해 2심(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미용업체 대표가 대법원에서 강제추행죄를 인정하는 판결을 받고 재판을 다시 받게 됐다.

항소심은 피해자가 즉시 피고인에게 항의하거나 반발하는 등의 거부의사를 밝히는 대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는 점을 중시해 무죄로 봤으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미용업체를 운영하던 A씨는 2016년 2월 노래방 회식 자리에서 가맹점 직원인 B(여)씨를 자신의 옆자리에 앉힌 후 귓속말로 “일하는 것 어렵지 않냐. 힘든 것 있으면 말하라”고 하면서 갑자기 B씨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이에 놀란 B씨가 “하지 마세요”고 했지만, A씨는 “괜찮다. 힘든 것 있으면 말해라. 무슨 일이든 해결해 줄 수 있다”며 B씨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이로 인해 A씨는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인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 형사1단독 이승호 판사는 2019년 1월 A씨의 강제추행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이에 A씨는 사실오인 및 양형부당을 주장하며 항소했고, 검사도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2심인 창원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류기인 부장판사)는 2019년 10월 유죄를 인정한 1심을 뒤집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갑자기 피해자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는 부분에 관한 피해자의 진술은 신빙성이 부족해 그대로 믿기 어렵고, 달리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피해자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는 부분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는 인정된다면서도 강제추행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기습추행’에 해당하더라도,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고 보려면 폭행행위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의 유형력의 행사가 있어야 한다”며 “단지 신체접촉이 있었다고 모두 기습추행으로 보게 되면 형벌법규의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심히 훼손하는 결과가 초래된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또한 재판부는 “당시 회식의 진행과정 및 분위기, 피고인 행동의 유형 및 반복성, 피해자의 반응(허벅지를 만질 때 가만히 있었다는 것), 다른 회식 참석자들의 상황 인식 등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이 피해자의 신체 일부를 만진 행위를 들어 폭행행위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유형력의 행사라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검사가 상고했고, 대법원의 판단은 항소심과 달랐다.

이 사건의 쟁점은 기습추행이 강제추행죄에 해당하기 위한 요건, 그리고 기습추행 당시 피해자가 항의하거나 반발하는 등의 거부의사를 즉각 밝히지 않은 경우 강제추행죄의 성립이 부정되는지 여부다.

대법원 대법정
대법원 대법정

대법원 제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지난 3월 26일 직장회식 자리에서 피고인(A)이 피해자의 허벅지를 손으로 쓰다듬은 행위는 ‘기습추행’으로서 강제추행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며, 이와 달리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창원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강제추행죄는 상대방에 대해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해 항거를 곤란하게 한 뒤에 추행행위를 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폭행행위 자체가 추행행위라고 인정되는 기습추행의 경우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특히 기습추행의 경우 추행행위와 동시에 저질러지는 폭행행위는 반드시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의 것임을 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기만 하면 그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는 것이 일관된 판례의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대법원은, 피해자의 옷 위로 엉덩이나 가슴을 쓰다듬는 행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어깨를 주무르는 행위, 교사가 여중생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면서 비비거나 여중생의 귀를 쓸어 만지는 행위 등에 대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이루어져 기습추행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며 대법원 판례들을 언급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도 피고인이 여성인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부위인 허벅지를 쓰다듬은 행위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이루어진 것인 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유형력의 행사로 추행행위라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은 무죄의 근거로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허벅지를 쓰다듬던 당시 피해자가 즉시 피고인에게 항의하거나 반발하는 등의 거부의사를 밝히는 대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는 점을 중시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성범죄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원심이 들고 있는 사정만으로는 강제추행죄의 성립이 부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오히려 피고인의 신체접촉에 대해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동의한 바도 없었음이 분명하고, 피고인의 신체접촉에 대해 피해자가 묵시적으로 동의했다거나 그 의사에 반하지 않았다고 볼 만한 근거 역시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사건 당시 피고인의 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항의하지 않은 이유에 관해, 피해자는 경찰 조사시 “수치스러웠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고 진술했다. 도 검찰 조사시 “짜증이 나고 성적으로 수치심이 들었다. 피고인은 회사 대표이고 피해자는 그 밑에서 일하는 직원이라서 적극적으로 항의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이처럼 당시는 다른 직원들도 함께 회식을 하고 나서 노래방에서 여흥을 즐기던 분위기였기에 피해자가 즉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하여, 피고인의 행위에 동의했다거나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았다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원심은 공소사실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봤으니, 원심의 판단에는 기습추행 내지 강제추행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직장회식 자리에서 이루어진 신체접촉을 강제추행이 아니라고 본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한 사례로서, 기습추행이 강제추행죄에 해당하기 위한 요건 및 강제추행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그 자리에서 즉각 거부의사를 밝혀야 하는지 여부 등에 관한 종전의 법리를 재차 확인하고 이를 명확히 했다”고 설명했다.

[로리더 신종철 기자 sky@lawlea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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